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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30년 전만도 못한 북한 급변 사태 대비

중앙일보 2020.05.09 00:06 종합 29면 지면보기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지난 몇 주 동안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사망했거나 중태라는 주장이 잇따랐다. 북한 매체가 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김 위원장 사진을 공개해 억측은 중단됐다. 그런데 만약 김 위원장이 사망해 한반도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불어닥쳤다면 한국과 미국이 과연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을지를 생각해 보자.
 

중국이 개입하면 대응책 막막하고
한·미·일 공동 보조도 어려운 상황

김일성이 사망한 1990년대에는 한·미 양국이 북한 정권 붕괴에 대비한 군사적 연합 대응 시나리오를 갖고 있지 않았다. 미 국방부는 김영삼 정부가 독자적으로 먼저 사태에 개입해 미국과 한국 간에 충돌이 일어나는 상황을 염려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군과 미군이 원활하게 협력하며 합동 작전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1990년대보다도 오히려 준비가 덜 돼 있는 게 현실이다. 북한 붕괴 뒤 한·미 양국이 어떤 조처를 할지에 대한 정치적 합의는 불투명하다. 1990년대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너무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미국이 염려했고, 진보 성향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부시 정부가 북한 붕괴에 대해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우려했다. 보수적인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미국과 한층 성공적으로 협력했지만 현재 트럼프 정부와 문재인 정부 사이에는 다시 이념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북한과의 외교적 협상을 원하지만, 문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과 유사한 장기적인 통일관을 가진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오로지 ‘거래의 기술’을 통한 급격한 변화를 원한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김 위원장의 두문불출에 대한 두 정부의 상반된 답변에서 역력하게 드러났다. 다수의 미국 전문가들과 관료들은 북한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암시를 주었지만 한국 측은 아무 문제도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려고 애썼다. 현실은 그 중간 어디쯤일 것이고, 미국과 한국의 입장차는 상당히 큰 문제로 보인다.
 
준비가 미흡한 둘째 영역은 중국과의 대화이다. 중국은 남북한이 미국과의 동맹을 배제한 ‘독자적인 통일’을 해야 한다고 한층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강경해진 태도에 대해 미국 군사 전문가들은 ‘3자 개입’, 즉 북한 붕괴 시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널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럴 경우 최소한 지정학적 혼란의 빌미가 될 수밖에 없는데, 현재 한국과 미국은 둘 다 전략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중국과의 소통이 빈약한 상태다. 게다가 최근에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 중국 외교부는 미군이 중국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하기 시작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대선 운동의 일환으로 중국의 주장을 한층 거세게 맞받아치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긴밀한 대화와 협력은 더욱 요원해졌다.
 
준비가 안 된 셋째 영역은 한·미·일 3자 협력이다. 북한이 붕괴하고 군사적인 조치가 필요해진 경우에 미국과 한미연합군사령부는 일본의 물자 공급 없이 작전을 펼치기가 어렵다. 약 10년 전 한·미·일 3자 관계에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지만, 한국과 일본의 관계 악화로 인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대화마저 중단됐다.
 
이 문제들을 빨리 정비해야 한다. 김정일은 사망하기 전에 이번 김 위원장의 행보와 유사하게 모호한 방식으로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김정은 위원장은 젊기는 하지만 비정상적 과체중에, 흡연을 하고, 고위 인사 접견 등을 위해 움직일 때마다 숨을 헐떡거린다. 김 위원장이 태양절 참배까지 불참하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정치적 책략이 아니라 심각한 건강 문제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의 뒤를 이어 김여정 제1부부장이 권력을 계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네 차례나 권력이 세습된 사례가 현대사에는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돌아왔지만 급변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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