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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독거예비군반을 '요섹남 교실'로 바꿨더니…

중앙일보 2020.05.08 15:00

[더,오래]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3)

 
“독거노인 예비군 클래스는 어떨까요?”
“어, 그거 괜찮네요. 독신 남성의 노후라고 하면 좀 서글픈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아주 현실적이고 좋은 것 같아요. 독거노인 예비군 클래스로 결정!”
 
별생각 없이 요리교실의 오랜 수강생인 윤 교수와 남성 구성원으로만 이뤄진 ‘남자 요리교실’을 열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의 일이다. 윤 교수가 제안한 이름으로 시작한 남자 요리교실은 이제는 취소 대기자가 나와야 수강할 수 있을 만큼 인기 클래스가 되었다.
 
윤 교수는 오십 대 중반의 남자 수강생으로 연희동 아틀리에를 다닌 지는 어느덧 6년이나 됐다. 6년이라는 세월이면 수강생이라기보다 거의 제자나 직원 수준인데, 6년이 지난 지금도 열심히 다닌다. 매달 한 번 수업이 있는 저녁이면 일의 특성 탓인지 노트북과 몇 권의 책이 들어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와인이 담긴 종이봉투를 손에 들고 나타난다. 늘 일찍 도착하는 윤 선생님은 서둘러 앞치마를 두르고, 손을 닦고, 주방에 오늘의 추천 와인을 가져와선 와인 설명을 시작한다.
 
“오늘 메뉴는 도미 카르파초라 거기에 잘 어울리는 프랑스의 상세르라는 화이트와인을 가져왔어요! 이 와인은….”
 
윤 교수는 혼자 와인 삼매경에 빠져 이야기를 꽃피운다. 7시부터 시작인 수업 준비에 여념이 없는 내 머릿속엔 계속해서 허브를 씻고, 양파 껍질을 벗기고, 감자를 삶아야지 하며 재료 손질 생각으로 가득하다. 윤 교수 이야기는 BGM처럼 들릴 뿐이다.
 
윤 교수는 한바탕 와인 설명을 마치고 ‘일단 뭐부터 도와드릴까요’하며 셔츠 소매를 걷어붙였다. 나는 ‘거기 이베리코 돼지고기 갈빗살을 잘라 달라’고 부탁한다. 윤 교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육류용 도마와 부엌칼을 꺼내 손질에 들어간다. 이럭저럭 하는 사이에 정장 차림의 다른 남자 수강생들이 한 명씩 들어오는데, 모두 앞치마를 두르고 손을 씻고 준비된 테이블 위의 레시피는 보지도 않은 채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사전 준비를 시작한다.
 
별생각 없이 윤 교수의 남성 구성원으로만 이뤄진 ‘남자 요리교실’을 열어보자는 제안이 이제는 취소 대기자가 나올 만큼 인기 클래스가 되었다. [사진 Pixabay]

별생각 없이 윤 교수의 남성 구성원으로만 이뤄진 ‘남자 요리교실’을 열어보자는 제안이 이제는 취소 대기자가 나올 만큼 인기 클래스가 되었다. [사진 Pixabay]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년 전, 윤 교수가 이름 지어준 ‘독거노인 예비군 클래스’가 시작될 때는 지금처럼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연희동 요리교실은 일 년에 걸쳐 2학기로 운영하고 있는데, 다음 학기 수강생을 모집할 때 ‘독거노인 예비군 클래스’란 이름으로 남자 교실을 연다고 알렸더니 윤 교수와 그의 대학 동료 정도밖에 답이 없었다. 나는 남편을 비롯해 다른 수업 멤버들에게 주변에 남자 요리교실에 참여할 사람이 없는지 묻고 다녔다. 아무래도 이름 때문에 거부감이 생기는 듯해서 다시 윤 교수에게 상담했다.
 
“‘독거노인 예비군 클래스’라는 이름을 보고 신청하는 사람이 없어요. 이름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
 
당시 스페인 요리 클래스에 다니고 있던 윤 교수가 다음 달 수업에 온 날 이야기해봤다. 8명 정원에 윤 교수를 포함해 3명밖에 모이지 않은 상황. 자, 어떤 이름으로 해볼까. 윤 교수는 고심 끝에 “맞다. 요즘 인기 있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요섹남’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라는 뜻인 듯했다. 과연 섹시한 남자가 연희동까지 요리를 배우러 올 일이 있을까. 그런 일이 있다면 나는 더 의욕 넘칠 텐데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더니 윤 교수는 내 표정을 슬쩍 본 모양인지 “그럼 ‘요섹남을 위한 요리교실’로 결정이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다음 학기 시간표에 기쁜 마음으로 이름을 바꿔 적고 다시 모집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여기저기서 문의가 이어졌다. 9월 신학기까지 3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직업의 기혼 ‘아저씨’들이 모여들었다. 남자 요리교실이 시작되고 나서 가끔 다른 수업을 듣는 묘령의 여인들이 남자 요리교실에 조수로 살짝 참여하면 안 되냐며 농담 반 진담 반 부탁해오지만, 지금까지 독신 요섹남은 수업에 들어온 적이 없다. 조수를 부탁하고 싶어도 소개해줄 만한 남자가 없다는 걸 떠올리며 곤란한 표정으로 눈을 연신 끔벅거릴 수밖에.
 
“그거야 그렇죠. 남자만 참여하는 수업에 섹시한 독신 남자가 올 리 없잖아요.” 다른 수강생이 쐐기를 박는다.
 
2년 전 파일을 열어 보니 첫 번째 ‘요섹남을 위한 요리교실’의 메뉴는 테마키즈시(손말이 김초밥), 대합 맑은국, 알타리무 아사즈케(소금 절임), 가지와 고추 아게비타시(튀김 절임)으로 완벽한 일식이었다. 일식 기술 중에서도 중요한 요소가 돋보이는 요리뿐이었다. 초밥용 밥의 단촛물 비율, 맑은국에 필요한 육수 내는 법, 절임의 소금 간, 튀김 절임의 국물과 튀김옷 없이 튀기는 요령. 남자가 집에서 솜씨를 발휘할 메뉴는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아저씨들의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나는 의욕만 앞섰다.
 
'요섹남을 위한 요리교실'이 시작되고 나서 가끔 다른 수업을 듣는 묘령의 여인들이 남자 요리교실에 선생님 조수로 살짝 참여하면 안 되냐며 농담 반 진담 반 부탁해오지만, 지금까지 독신 요섹남은 수업에 들어온 적이 없다. [사진 Pixabay]

'요섹남을 위한 요리교실'이 시작되고 나서 가끔 다른 수업을 듣는 묘령의 여인들이 남자 요리교실에 선생님 조수로 살짝 참여하면 안 되냐며 농담 반 진담 반 부탁해오지만, 지금까지 독신 요섹남은 수업에 들어온 적이 없다. [사진 Pixabay]

 
물론 요리교실을 처음 다니는 수강생이 대부분이어서 첫날에는 나도 꽤 긴장했다. 이미 연희동 요리교실에 다니고 있던 윤 교수와 그의 동료는 평소처럼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아아, 오늘 저녁은 김으로 만 초밥이군요. 참치 덩어리를 잘라야겠네요”라며 수업의 흐름도 꿰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는 7시가 가까워지면 조금은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한 사람, 두 사람 1층 아틀리에로 들어온다. 평일 저녁이라 모두 넥타이에 정장 차림이다. 정장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풀고, 앞치마를 두르라고 말하자 그들은 뭐가 뭔지도 모른 채, 내 말에 따라 아일랜드 식탁을 둘러싸고 선다. “손은 씻으셨나요?” 하며 마치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기분으로 확인한 뒤, 우선 요리교실에 등록한 이유와 평소 요리를 하는지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그러고 나서 오늘의 메뉴와 흰쌀밥 짓는 법, 가다랑어포로 육수 내는 법 등 일식의 기본에 관해 설명했다.
 
“자, 여러분. 그쪽에 안경 쓰신 분. 이쪽으로 오셔서 이걸 잘라주세요.”
평소에는 회사 임원이나 대학교수처럼 전문직에 종사하는 아저씨들이 일제히 나에게 집중한다. 아니, 아니다. 집중은 하는데, 다들 무척 긴장하고 있다. 긴장감 탓인지 나까지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나에게 지명받은 수강생은 허둥지둥 아일랜드 식탁으로 와서 총각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아이고. 와이셔츠 소매를 안 걷으셨네요. 제대로 걷으세요.”
모국어가 아니라 그런지 꽤 직접적으로 지적하면 늘 주위에서 농담 섞인 말투로 주의를 받는데,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수자어록에서 마구 튀어나온다. 그런 와중에 메뉴가 하나씩 완성되고, 마침내 향미 야채와 회를 김에 싸서 먹는 손 말이 김초밥의 회를 썰 차례가 됐다. 한순간의 침묵.
 
“선생님, 제가 자를게요.”
다른 수업도 듣고 있던 윤 교수는 이 수업의 설립 멤버라 고문으로서 활약해주길 기대했던 나는 윤 교수의 한 마디에 그때까지의 긴장감이 한 번에 풀렸다. 윤 교수에게 생선용 도마와 부엌칼을 건네자, 다른 수강생들은 모두 윤 교수를 둘러싸고 그의 칼질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봤다. 나는 그날 시식회의 맛이나 대화 내용 등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난달 수업은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맨손으로 회를 잘랐고, 자른 분은 그 전에 손을 씻지 않았습니다. 먹고 난 뒤 설거지를 할 때 같은 고무장갑을 쓰는 것도 비위생적입니다. (생략) 문제가 되기 전에 선생님도 위생적인 면을 충분히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일 수업에는 제 고무장갑을 지참하겠습니다.”
 
두 번째 ‘요섹남을 위한 요리교실’ 전날 밤 열 시에 IT 분야에서 오래 종사해온 오십 대 중반의 수강생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보건소에 신고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요리교실의 재료 손질과 뒷정리는 수강생과 다 같이 함께해도 모두가 돌아가고 난 뒤, 홀로 주방부터 아일랜드 식탁을 알코올로 소독하고 아틀리에는 늘 청소기와 스팀기로 반짝반짝한 상태를 유지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최선을 다해 위생에 신경 쓰고 있다.
 
즉, 그 수강생과 내가 추구하는 ‘음식’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판단했고, 그런 일로 오히려 심리적인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 싫어서 남은 수업료는 환불해드리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날, 수업을 진행하다 회를 잘라줬던 윤 교수가 그 수강생이 오지 않은 것을 눈치채고 물어보기에 그 메시지에 관해 이야기해줬다.
 
자신을 위한 자유로운 시간을 추구하고 자신이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연희동 요리교실에 다니기 시작한 아저씨들. 여기에 오는 이유가 분명한 윤 교수도 예의 수강생 건으로 조금 놀랐지만, 그런 일은 아무 상관이 없는 듯하다. 윤 교수는 코로나 여파로 2개월이나 쉬고 있는 요리교실이 다시 열리길 무척 기대하고 있다.
 
“나다워질 수 있어서 요리교실에 다닙니다.”
인생의 제2 라운드에 선 사람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나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서 아직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대합탕. [중앙포토]

대합탕. [중앙포토]

대합 맑은 국(스이모노) 레시피
재료(1인분)

- 이치반 다시(아주 맑은 가다랑어포 국물) 1과1/2 컵
- 백합 인원수 만큼
- 연한간장 1큰술
- 사케 1작은술
- 쪽파(참나물)
 
만들기

이치반 다시에 백합을 넣고 끓기 시작하면 사케와 간장을 넣고 간한다. 먹기 직전에 그릇에 참나물을 장식한다.

 
〈이치반 다시 만들기〉
다시마 조각 5cm 2장, 카쯔오브시 1컵, 물 5컵
 
1. 다시마 담그기 30분이상
2. 끓이다가 70~80도에서 10분간 끓이기

3. 다시마 건져내고 가다랑어포를 넣고 한소끔 끓이다가 바로 건져낸다.

4. 냉장고에서 3일, 냉동실에서 10일 보관가능
 
 
키친 크리에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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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와 히데코 나카가와 히데코 키친 크리에이터 필진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 요리교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고 소통한 이야기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제가 주인공이 되어 '음식이 왜 삶인가'를 쓰려고 합니다. 요리를 배우러 오는 수강생들부터 가족, 친구, 연희동 동네주민들, 식재료 거래처 사람들까지, 아주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와 저의 삶, 생각, 느낌을 문장 속에 녹여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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