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 영화 이 장면] 찬실이는 복도 많지

중앙일보 2020.05.08 00:11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최근 한국영화 중 가장 기교가 적다. 기승전결의 극적 구조와도 거리를 두고, 살짝 로맨스 요소가 있지만 장르 관습에도 별 관심 없다. 음악이 과하지도 않고, 편집과 촬영 스타일도 절제돼 있다.
 
이 영화의 유일한 장치라면 판타지다. 프로듀서인 찬실이(강말금)는, 크랭크인을 앞두고 감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멘붕’에 빠진다. 이때부터다. 그의 눈엔 장국영(김영민)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 장국영은 ‘자칭 장국영’이지만 말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곤경에 빠진 마흔 살 여성 프로듀서가, 자신의 삶과 영화를 뒤돌아보는 이야기다. 불혹의 나이지만, 그는 매우 흔들린다. 여기서 장국영은 찬실이의 초심을 일깨우며 다잡아준다.
 
그영화이장면용 사진

그영화이장면용 사진

그러나 판타지는 사라지기 마련. 4분 20초 정도의 롱 테이크로 촬영된 장면 속에서 찬실이와 장국영은 헤어진다.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삶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말한 후 찬실이는 아코디언으로 ‘희망가’를 연주하고, 장국영은 멀리 우주에서도 응원하겠다며 찬실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떠난다. 절박했던 삶의 대가가 장국영의 키스라면 찬실이는 정말 복 많은 사람 아닐까? 아마도 한국영화 이별 명장면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아코디언 신. 여기서 사족 하나. 연주는 강말금 배우가 직접 한 것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