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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중화시킨 항체 주인은 4살 '라마'였다"

중앙일보 2020.05.07 10:30
남미 등지에 주로 서식하는 동물인 라마의 항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예방 치료제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라마의 항체가 코로나 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중화시킬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주장이다.   
 

벨기에 겐트대학 연구진 '셀'지에 기고
HIV 등 바이러스 연구에 라마 항체 쓰여
상어도 항체 있지만 길들이기 힘들어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라마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벨기에 겐트대학 연구진은 대학에서 라마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기르는 4살짜리 초콜릿 빛깔의 라마인 '윈터'의 항체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중화시킨 것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뉴욕타임스는 "윈터는 연구진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 19등 일련의 바이러스 연구를 하기 위해 선택한 '행운의 라마'였다"고 보도했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라마 항체가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중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생물학 분야 과학저널인 셀(Cell)지에 지난 5일 발표했다. 
 
벨기에 연구진이 연구에 사용하고 있는 라마 '윈터'의 모습 [유튜브]

벨기에 연구진이 연구에 사용하고 있는 라마 '윈터'의 모습 [유튜브]

 
원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은 Y자 모양을 형성하는 두 종류의 단백질 체인으로 이뤄진 항체를 한 종류만 생산한다. 반면 라마는 두 종류의 항체를 생산한다. 두 종류의 항체 중 하나는 인간 항체와 크기·성질이 비슷하다. 나머지 하나는 인간 항체 크기의 25%에 불과한 '작은 항체'다. 
 
남미 등지에 주로 사는 동물인 라마의 항체가 코로나 19 예방 치료제에 활용될 것이란 기대가 높다. 사진은 지난 2월 안데스 산맥 근처에 거주하는 에콰도르의 아이가 라마 등에 올라탄 모습 [AP=연합뉴스]

남미 등지에 주로 사는 동물인 라마의 항체가 코로나 19 예방 치료제에 활용될 것이란 기대가 높다. 사진은 지난 2월 안데스 산맥 근처에 거주하는 에콰도르의 아이가 라마 등에 올라탄 모습 [AP=연합뉴스]

 
중요한 건 이 '작은 항체'다. 코로나 19 등 바이러스가 인체를 감염시키려 들어올 때 라마의 작은 항체가 바이러스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갖고 있지 않은 작은 항체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 보다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라마에 2012~2013년 유행했던 메르스와 2002~2003년 사스를 일으킨 바이러스를 주입한 후 혈액 샘플을 검사했다. 이 결과, 두 바이러스 모두에 효과가 있는 라마 항체는 없었지만, 메르스와 사스에 대해 각각 대항하는 두 개의 강력한 항체는 찾아냈다. 
 
연구진은 사스를 중화시킬 수 있는 더 작은 라마 항체가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인식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실제로 세포 배양에서 라마 항체가 코로나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억제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뉴욕타임스는 "연구원들은 이 항체가 결국 코로나 19 예방 치료제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벨기에 겐트 대학의 분자 바이러스학자이자 이번 논문의 저자인 자비에 사에렌스 박사는 "라마 항체는 인간 항체를 포함한 다른 항체와 쉽게 연결되거나 융합될 수 있으며, 이렇게 조작을 해도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자들은 항체 연구를 위해 오랫동안 라마를 주목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0년간 과학자들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인플루엔자 연구에 라마의 항체를 사용했고, 두 바이러스에 대한 유망한 치료법을 찾아냈다"고 보도했다.  
 
상어도 라마처럼 유효한 항체를 갖고는 있지만 길들이기 쉽지 않아 좋은 실험 대상은 못 된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상어도 라마처럼 유효한 항체를 갖고는 있지만 길들이기 쉽지 않아 좋은 실험 대상은 못 된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른 동물의 항체도 거론되지만, 라마에는 못 미칠 것으로 나타났다. 다트머스 대학과 텍사스 대학의 공동 연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번 논문의 공동 저자인 다니엘 래프 박사는 "상어 역시 이런 작은 항체를 가지고 있지만 훌륭한 실험 모델은 아니다"라면서 "라마보다 다루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라마는 상대적으로 길들여서 다루기 쉽다"면서 "다만 라마는 상대를 좋아하지 않을 경우 침을 뱉는 정도"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실제 의료현장에서 쓰이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아직 많다"면서도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라마 '윈터'의 공은 상당하다"라고 덧붙였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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