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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는 왜 투기債 마구 사나···Fed가 불러낸 '좀비기업 망령'

중앙일보 2020.05.07 05:00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달 회사채 매입을 발표했다. [A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달 회사채 매입을 발표했다. [AP=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도움을 받을 ‘절호의 투자’ 기회일까. 아니면 좀비기업과 투자 거품을 양산해 미국 경제를 망가트리는 ‘세기의 실책(失策)’이 될까.  
 

월가 고금리 회사채 투자 열기 뜨거워
美 자동차·항공업계에 뭉칫돈 몰려
"싼값에 사서 Fed에 되팔려는 전략"
"좀비기업이 미국 경제 갉아먹을수도"

Fed가 5일(현지 시간)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을 이달 초부터 본격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전방위 자산 매입 계획을 발표한 지 한 달 만이다. 일단 상장지수펀드(ETF) 매입을 시작으로 직접 회사채를 사들일 계획이다.  
 
지난 한 달간 월스트리트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고금리 채권(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을 사들이는 펀드와 ETF로 자금이 몰렸고, 관련 채권에 대한 매수 열기도 뜨거웠다. Fed에 물량을 넘기려는 계산에 발 빠른 매수자가 먼저 몰린 것이다. 미국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공식 발표한 후부터 4월 말까지 회사채 발행액은 2650억 달러(324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두 배 늘어난 수치다.  
 
뉴욕멜론은행의 마뉴엘헤이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코로나19 충격에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가 상승했지만, 고금리 채권이 주식과 비슷한 수익률을 내고 있다”며 “투기 등급으로 떨어진 회사채를 매입하려는 열기가 뜨겁다”며 투자 분위기를 전했다.  
월가는 크게 들뜬 모습이다. 줄도산 위기에 빠진 항공업계를 중심으로 투기등급 회사채 발행에 뭉칫돈이 몰린 것은 연준의 회사채 매입 발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AP=연합뉴스]

월가는 크게 들뜬 모습이다. 줄도산 위기에 빠진 항공업계를 중심으로 투기등급 회사채 발행에 뭉칫돈이 몰린 것은 연준의 회사채 매입 발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AP=연합뉴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줄도산 위기에 빠진 자동차·항공업계 회사채 발행에 뭉칫돈이 몰렸다. 이들 업체 중 올해 투기등급으로 강등된 회사채 물량은 1500억 달러(183조원)에 달한다. 투기등급인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은 최근 250억 달러(31조원) 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했고, 델타 에어라인도 채권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확보했다.  
 
‘채권왕’ 제프리 건드라크 더블라인 캐피탈 최고경영자(CEO)는 “투자자들이 싼값에 회사채를 매입해 Fed에 비싸게 되팔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Fed가 투자등급 최하위인 ‘BBB’에서 투기등급으로 강등된 회사채까지 매입 프로그램에 포함한다고 밝힌 데 따른 시장의 반응이다. Fed가 채권시장의 ‘큰 손’으로 등판한 만큼 손실 리스크가 확연히 줄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Fed의 매입에 따른 가격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부작용에 대한 경계감도 나온다. 기업의 실제 가치와 회사채 가격의 괴리가 생기는 것뿐 아니라 좀비 기업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Fed가 채권시장의 '큰 손'으로 등판한 만큼 회사채 투자에 대한 손실 리스크는 확연히 줄었다. [AP=연합뉴스]

Fed가 채권시장의 '큰 손'으로 등판한 만큼 회사채 투자에 대한 손실 리스크는 확연히 줄었다. [AP=연합뉴스]

세계 최대 채권펀드 운용사 핌코의 CEO(최고경영자)를 지낸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자문은 4일 “내 생각에 Fed는 고수익 채권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한 것 같다”며 “이는 좀비기업의 망령을 불러 미국 경제를 갉아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회사채 매입이 단기적으로 신용시장 패닉을 진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미국 기업 가치를 깎아내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Fed의 행동이 장기적으로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일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투자설명회에서 “Fed가 저금리를 제공하면서 경제 셧다운에도 기업들이 도산하지 않게 해주고 있는데 빚이 지나치게 늘고 있다”며 “이러한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다간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Fed가 기업의 신용 경색을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향후 제로금리 정책을 장기간 유지해야 하는 압박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회사 구겐하임 인베스트먼트의 스콧 마이너드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는 “Fed가 불량 채권을 우량 채권으로 바꿔 놓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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