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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코로나 사망 1위 英···"”70세 이상만 막자" 봉쇄 완화 논란

중앙일보 2020.05.07 05:0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봉쇄 완화 조치를 준비 중인 영국에서 ‘2단계 전략’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2단계 전략’은 70세 이상 노인 등 감염 취약집단은 봉쇄 조치를 유지하고, 나머지는 봉쇄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염 가능성이 높은 집단을 집중적으로 보호하는 동시에 나머지 수백만 명에게 상대적으로 자유를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다른 쪽에선 노인을 취약 계층으로 낙인 찍는 ‘차별’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영국 노스 웨일즈주 브로턴의 한 의료기기 생산업체 직원들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의료용 인공호흡기를 만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노스 웨일즈주 브로턴의 한 의료기기 생산업체 직원들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의료용 인공호흡기를 만들고 있다. [AP=연합뉴스]

“70세 이상 봉쇄하면 코로나19 사망률 감소”

5일(현지시간) 일간 가디언·BBC 등에 따르면 영국 에든버러대·런던대 연구진은 최근 영국 정부에 ‘분할과 차폐’(Segmenting and Shielding)라는 이름의 ‘2단계 전략’ 보고서를 제출했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환자와 의료진 등 감염 가능성이 큰 사람은 보호를 강화하고, 개인 관리가 가능한 일반인은 봉쇄 완화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별다른 계획 없이 이동 제한과 봉쇄 조치를 풀어버리면 오히려 감염 취약 집단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연구팀은 영국 정부기관인 ‘응급상황 대응을 위한 과학자문단(SAGE)’의 연구를 발전시켜 몇 가지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앞서 과학자문단은 감염 취약집단을 65세 이상·70세 이상·80세 이상 등 세 집단으로 나누고 집단별로 17주 동안 봉쇄 조치를 적용했을 경우 코로나19 확산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70세 이상 집단을 장기 봉쇄할 때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이 35% 감소하는 등 봉쇄 조치 효과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증상이 있는 사람을 격리하는 등 다른 조치를 함께 취하면 사망률이 최대 50%까지 줄어든다고 밝혔다. 
 
스코틀랜드 왕립연대의 한 병사가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코틀랜드 왕립연대의 한 병사가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연구팀은 이같은 과학자문단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그 결과 연령과 의료 기록 등을 기준으로 집단을 두 개로 나누고, 각 집단의 특성에 따라 봉쇄 조치를 달리하면 효과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70세 이상 노인을 감염 취약계층으로 규정하되 의료진·간병인·가족 등도 관리 집단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염 취약집단이 의료종사자를 만날 확률이 일반인보다 20% 더 높기 때문이다. 
 
연구에 참여한 마크 울하우스 에든버러대 감염병학과 교수는 “모든 사람의 이동을 막는 것보다 보호가 필요한 집단 20%에만 집중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라며 “감염 취약자를 선별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봉쇄가 풀린 사람들도 손 씻기와 사회적 거리 유지, 자가 격리, 접촉자 추적 등 방역 생활 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감염취약자’ 사회적 낙인” 

연구팀과 달리 일각에선 노인을 감염자로 분류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영국 보수당은 “70세 이상도 건강을 유지해 왔다”며 감염 취약집단을 연령으로 분류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평소 건강을 유지하며 활동적으로 생활하던 70대 노인들은 오히려 (운동 부족 등으로) 새로운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사라 하퍼 옥스퍼드대 노인학 교수는 “연령과 면역력 사이에 연관성은 있지만 70세 이상을 모두 감염 취약집단으로 간주할만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라며 “감염 취약집단 분류는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노인을 격리할 경우 신체 활동을 감소시켜 정신 건강까지 침해하는 등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하퍼 교수는 “노인들이 정부의 봉쇄 조치를 제대로 지킬 가능성도 작다”면서 “감염 취약집단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위험군에 속하는 경우 스스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공중보건 관점에서 지원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유럽 내 최대 사망자…봉쇄 조치 완화?

도미니크 라브 영국 외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영국이 유럽 내 최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미니크 라브 영국 외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영국이 유럽 내 최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영국 정부는 오는 10일 봉쇄 완화 조치 전략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에 따르면 맷 핸콕 영국 보건장관 등 보건 당국은 연구팀의 보고서를 긍정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부 대변인은 “연령이 높을수록 코로나19가 미치는 위험이 더 컸다”면서 “연령에 따라 차별화된 봉쇄 조치를 적용할지는 과학적 근거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세계 통계 사이트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이날 영국 내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2만9427명으로, 이탈리아 2만9315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유럽 내 최다 사망자 수다. 영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9만4990명으로, 미국·스페인·이탈리아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사태 초기 사회적 거리 두기 등에 소극적이었던 영국은 지난 3월 23일 전국에 봉쇄령을 내리며 뒤늦게 강도 높은 전략을 썼다. 하지만 4월 중순 사망자 수가 1만명으로 급증하는 등 일일 사망자 수와 신규 확진자 수가 크게 줄지 않고 있다. 결국 감염자 추적 관리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힌 상태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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