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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국적 떠나 인재 모셔, 나보다 중요한 위치 일하게 할 것”

중앙일보 2020.05.07 00:43 종합 3면 지면보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서초동 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논란과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서초동 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논란과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내놓은 대국민 사과문의 핵심은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의 변화’다. 특히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선언이 눈길을 끈다. 주요 대기업 집단 가운데 자식 세대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사실상 처음 공식적으로 약속한 것이어서 다른 대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 부회장은 스스로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삼성의 오늘, 과거엔 꿈 못꾼 미래
국격에 맞는 새 삼성 만들겠다”

무노조 원칙도 82년 만에 폐기
신사업 발굴, 과감한 투자 나설 듯

“회사 가치 높이는 일에만 집중”
 
이 부회장이 삼성의 경영 전면에 나선 건 이건희 회장이 와병에 들어간 2014년 5월부터다. 올해로 사실상 삼성 총수에 오른 지 7년째다. 이 부회장은 경영에 나선 직후 전자·금융·물산 중심의 사업 재편을 추진했다. 잘할 수 있는 사업에 몰두하고 이외의 사업은 매각한다는 실용주의 경영을 표방했다. 그래서 나온 게 한화그룹과의 방산 부문 계열사(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 ‘빅딜’이다. 또 삼성케미칼 등을 롯데에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뉴 삼성호는 경영권 승계 작업에서 발목이 잡혔다. 삼성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했다. 하지만 이 합병으로 이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을 늘리기 위해 두 회사의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주주인 국민연금의 찬성을 받기 위해 뇌물을 줬다는 혐의다. 이 부회장은 이 사건으로 현재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사과문에서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 많은 질책을 받아 왔다”며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에버랜드까지 직접 거론했다는 점에 주목해 달라”고 했다. 대법원에서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은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은 무죄로 최종 판결이 났다.
 
이재용 부회장 대국민 사과 관련 일지

이재용 부회장 대국민 사과 관련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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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이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을 상속받아야 한다. 이 부회장이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지만, 자신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어떻게 마무리할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지분 4.18%와 삼성생명 주식 20.76%, 삼성물산 주식 2.84%를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0.7%에 불과하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합법적으로 부친의 지분을 상속받으려면 약 12조~13조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이 그동안 강조해 온 이사회 중심 경영체제를 강화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삼성은 2018년 3월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사외이사인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이사회 의장에 선임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경영인의 책임경영과 경영인을 감시·견제하는 이사회 강화를 계속 주장해 왔다”며 “이사회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은 사과문에서 “삼성전자는 기업 규모로 보나 IT업의 특성으로 보나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며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 와야 하고, 이들이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 준법위, 감시자 역할 할 듯
 
지난 2월 열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한 김지형 위원장(왼쪽). [연합뉴스]

지난 2월 열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한 김지형 위원장(왼쪽). [연합뉴스]

삼성에서 82년간 이어온 무노조 경영은 완전히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1960년 제일모직 노조, 77년 제일제당 미풍공장 노조 등을 강제 해산하는 등 철저히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혐의로 구속된 후 변화가 시작됐다. 당시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공식 사과문을 내고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삼성의 준법경영 노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끌어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삼성 준법위)가 감시자 역할을 떠맡을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가 삼성 측에 준법경영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요구한 직후인 지난해 2월 출범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 준법감시위와 관련해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면서 “저와 관련된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 준법감시위는 독립적 위치에서 계속 활동하고 중단 없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삼성 준법위는 7일 정례회의를 열고 이 부회장 사과에 대한 입장을 내놓는다.
 
이 부회장은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며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새로운 삼성’을 거론했다. 삼성의 오늘은 과거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미래’라면서 임직원의 헌신과 노력, 국민의 성원 덕분이라고 했다.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삼성은 회사 가치를 높이는 주주 자본주의와 임직원·노조·지역사회·국민을 중시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모두 지향하고 있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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