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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퍼스펙티브] 잘 쓰면 위기 극복의 약, 못 쓰면 나라 망칠 독 180석

중앙일보 2020.05.07 00:42 종합 28면 지면보기

민주당 공룡 정권, 취할 것과 피할 것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은 대륙 인구의 3분의 1을 희생시킬 정도로 비극적이었다. 하지만 좋은 일도 있었다. 흑사병은 사회적 차단 조치를 취하는 도시국가의 행정기술적 권한을 증대시켜 교황 중심의 신권 질서가 무너지는 배경이 되었다. 아시아의 흑사병이 유럽에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였다. 이 도시국가는 흑사병과 싸우면서 자유와 창의가 자라났다. 르네상스라는 문명사적 전환이 베네치아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루스벨트, 정부 개입 뉴딜 정책으로
리버럴리즘 정착과 국민통합 이뤄
히틀러, 내각에 입법권 모두 건네
궁핍한 대중의 환호로 괴물 권력 돼

코로나바이러스의 습격 속에 치러진 한국의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단독으로 국회 과반을 훨씬 뛰어넘는 5분의 3 의석을 확보하였다. 창궐하는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사회적 차단 조치의 성공과 화끈한 경제적 보상의 약속으로 민주당 정권은 대한민국의 70년 정치 체제를 뒤바꿀 신흥 권력으로 떠올랐다.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 시대에 잘 대응해 흑사병 뒤 르네상스가 만개한 이탈리아 같은 세상을 만드리라는 꿈을 꾼다. 사람들도 문 대통령한테 60%의 지지율을 보냄으로써 정권의 꿈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진정으로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와 희망을 잃는 것”(4월 14일 청와대 국무회의)이라는 대공황 시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과 비슷한 말을 했다. 말만 그렇게 할 뿐 아니라 “끝을 알 수 없는 경제 전시 상황에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한국판 뉴딜을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해야 한다”(4월 28일)는 정책 비전을 제시했다. 루스벨트의 뉴딜은 수정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적 색채가 가미된 정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3년간 소득주도성장·탈원전 등 급진적 사회·경제 정책 추진으로 논란과 갈등을 불렀던 문 대통령이 총선 압승에 자신감을 얻어 대놓고 사회주의적 정책을 실시할 것 같다.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원래 19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자본주의 과잉 생산의 모순에 직면해 미국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 위로부터 취해진 긴급 조치였다. 광범위한 실업과 파산 상태에서 유효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시장과 사적 영역에 정부가 깊숙이 개입하는 등 당시 기준으로 극히 비미국적인 정책을 루스벨트가 대담하게 집행했다. 돌이켜 보면 루스벨트 반독점 개혁의 성공으로 민주당 정권의 기반이 확대되었을 뿐 아니라 미국식 리버럴리즘과 자본주의에 대한 국민 신뢰가 저변 깊숙이 뿌리내렸다. (『미국의 정치 문명』, 권용립, 삼인)
 
이로써 남북전쟁 이후 찢어지고 갈라졌던 국민 분열이 국민 통합으로 전환되었으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루스벨트 시대와 그 이후의 정권들이 나치 전체주의와 소련 공산주의 정권과 싸워 승리하는 데 뉴딜식 체제 개혁 정책이 끼친 효과는 컸다. 다만 체제를 개혁한다고 해서 미국 민주주의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승화한 개인과 사유재산, 법치와 3권분립과 정당 정치, 양심·표현 및 언론의 자유가 후퇴하지는 않았다.
 
장밋빛 미래와 정반대의 시나리오도 있다. 경제 침체가 정부의 컨트롤 능력을 넘어서고, 문재인 정권이 거대 권력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자유민주주의의 궤도를 이탈하는 경우다. 역사 속에서 전형적인 케이스는 1930년 전후 독일에서 시작된 나치 전체주의다. 자유로운 공화국에서 전체주의 일당 독재로 변형은 일순간에 이뤄졌다. 대중이 그것을 원했다.
 
경제 대공황 때 천국과 지옥은 문턱 하나 차이였다. 끝까지 버텨서 자유의 문턱을 지켜내면 천국이었다. 굶주림과 공포에 못 이겨 자유를 포기하면 지옥이 되었다. 전자가 미국이라면 후자는 독일일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이 덮친 뒤 의석 3% 미만의 군소 정당인 히틀러의 나치당(NSDAP·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이 의석 18%의 원내 2당으로 부상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대공황이 발발하기 전 4년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은 자유롭고 안정되고 번영이 넘치는 나라로 보였다.
 
대공황으로 미국의 원조와 대출이 끊기자 독일 경제는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순식간에 무너진다. 실업자가 3년 만에 600만명으로 늘어났다. 히틀러는 대공황 이전부터 “정부가 일부러 경제를 망치고 있다. 대실업이 닥칠 것이다. 나는 가난과 싸우겠다”라고 예언하고 다짐했는데 그게 맞아 떨어졌다. 거리에서 실업자 대중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히틀러,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나치당은 대중을 유혹하는 데 필요한 모든 언어를 다 동원했다. 당 이름부터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 같은 매력적인 단어들을 섞어놨다. 히틀러는 전체주의 일당 독재 체제를 불법 쿠데타로 구축하지 않았다. 그는 경제 침체와 대량 실업의 구원자로 대중 앞에 등장했다. 그는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경제 위기를 타개하는 지도급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1932년 선거에서 나치당은 득표율 37%로 제1당에 올랐다. 히틀러가 총리에 취임했다.
 
문제는 합법적인 선거 뒤의 수순이었다. 나치당이 주도하는 의회는 입법권을 내각에 모두 위임하는 수권법을 통과시켰다. 의회가 자기를 부정하고 내각에 무릎을 꿇었다. 히틀러는 친위부대와 비밀경찰(히믈러가 주도)이라는 맹견의 공포, 여론조작과 선전전(괴벨스가 주도)이라는 양떼들의 찬양을 자양분으로 괴물 권력이 되었다. 대중은 정권의 발표와 다른 소리를 내는 세력들을 공격했다. 종교와 문화 권력도 가세했다. 반대파는 숨을 죽였다. 유대인 같은 인종주의적 희생양들은 공개적으로 처형되었다.
 
히틀러 시대를 겪었던 작가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나치당의 성공 요인으로 ①경제 공황 ②강해진 민족주의 ③히틀러라는 특별한 존재 세 가지를 들었다.(『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안인희 옮김, 돌베개)
 
4·15 총선에서 의회 권력을 확고하게 쥐게 된 민주당 정권도 대공황 이상의 코로나 경제 위기와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반일 민족주의 감정, 문 대통령과 정서적 일체감을 갖고 있는 팬덤 대중을 갖고 있다. 세 가지 요소를 위기 극복에 잘 쓰면 약이지만 독일처럼 잘 못 쓰면 권력과 나라를 망치는 독이 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정치의 진행은 한쪽 끝에 르네상스가 꽃피는 장밋빛 미래와 다른 끝에 개인의 자유가 파괴되는 잿빛 전망 사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식의 압도적인 1.5당 체제도 양극단 사이의 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일본식 1.5당 체제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수십년간 일당 집권이 확립된 정당 정치를 말한다. 4·15 총선으로 형성된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은 외형상 일본식 1.5당 체제와 가깝다.
 
이헌재 “거대 정부 등장할 것…권력 자제 안 하면 재앙 불가피”
최장집

최장집

국회 180석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 정권은 한국 정치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그들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거대 권력의 무게를 감당해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앞으로 눈여겨 볼 포인트는 두 가지이다. ①대통령 권력이 얼마만큼 강화되는가 ②정부가 민간 영역 즉,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활동에 얼마나 개입하는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등장을 한국 민주주의가 맞이할 가장 큰 적으로 지목했다. 대통령이 입법부·사법부·검찰·경찰을 수사하는 ‘수퍼 검찰총장’을 지배하게 됨으로써 3권분립의 헌법 가치와 정치중립적이어야 할 형사사법 체계가 깨질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대통령이 공수처장 임명권을 갖는 게 가장 위험하다. 이미 대통령 권력이 과도하게 확장돼 있고, 지금도 권한 행사를 자제하는 규범이 없다. 대통령의 권력 초(超)집중화가 한국 민주주의의 각종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4월 24일, 국회방송)고 말했다.
 
이헌재

이헌재

민간에 대한 정부의 참견은 코로나 국난과 싸우는 과정에서 불가피하다. 1997년 외환위기의 해결사였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초연결, 초대규모 정부가 등장할 것이다. 거대 정부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국민의 사생활을 감시하거나 간섭하려는 경향이 있다”(5월 3일 한 사적 모임)고 우려했다. 이 전 부총리는 “정부가 정파적 이익이나 이념적 목표에 몰입할 때 재앙적 수준의 정치 위기가 올 수 있다. 정권이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권력의 절제가 가능하겠느냐는 점이다. 재난 기본소득을 맛본 대중이 강화된 권력을 문제 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야당이나 언론, 여론이 정권을 지속적으로 터프하게 견제하는 풍토도 구시대의 유물이 될지 모른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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