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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매출 반토막 걱정, 부품 청소하며 지낸다”

중앙일보 2020.05.07 00:04 경제 1면 지면보기
경기도 안성에 있는 자동차 부품기업 코리아에프티의 필러넥(연료탱크 파이프) 생산 라인. 생산 현황판에 6개 라인 중 3개 라인만 가동 중이라고 표시돼 있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자동차 부품기업 코리아에프티의 필러넥(연료탱크 파이프) 생산 라인. 생산 현황판에 6개 라인 중 3개 라인만 가동 중이라고 표시돼 있다.

지난달 29일 찾은 경기도 안성의 자동차부품사 코리아에프티 본사 공장. 자동차 연료 탱크에 들어가는 필러넥(연료탱크 파이프)을 생산하는 6개 라인 중 3곳이 멈춰 서 있었다. 이 회사가 독자 개발한 3차원 플라스틱 성형 설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만 해도 하루 22시간 돌던 곳이다.
 

코로나 직격탄 차 부품업체 가보니
점유율 세계 4위인데 가동률 60%
“직원 주4일 근무, 세번째 대출 신청
2·3차 협력사는 상황 훨씬 더 심각”

이날 필러넥 생산 설비 중 절반은 부품 청소 작업 중이었다. 이 회사의 김현기 연료시스템본부 공장장은 “공장 가동률이 평소의 60% 수준으로 떨어져 휴동 시간이 늘었다. 생산 라인을 관리하던 근로자가 지금은 부품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말했다.
 
코리아에프티는 연간 275만개의 필러넥을 생산해 현대·기아차와 르노·GM 등에 공급했지만, 코로나19 이후 절반 이상 납품량이 줄었다. 김 공장장은 “3~4월엔 사실상 재고 비축용으로 공장을 돌렸다. 현재 필러넥 재고가 12만개로 평소의 두배 이상 쌓였다”고 했다.
 
생산공장에는 40억원을 투자한 미국 수출용 제네시스에 들어가는 필러넥 생산 설비가 멈춰 서 있다. 김영주 기자

생산공장에는 40억원을 투자한 미국 수출용 제네시스에 들어가는 필러넥 생산 설비가 멈춰 서 있다. 김영주 기자

공장의 가장 안쪽, 지난해 미국 수출용 제네시스 차량에 들어가는 필러넥을 생산하기 위해 40억원을 투자한 최신 설비도 멈춰 있었다. 제네시스의 수출 선적을 코앞에 두고 코로나19가 터지는 바람에 고가의 이 최신 설비는 아직 마수걸이도 하지 못한 상태다.
 
최근 1년 간 자동차 부품 수출액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최근 1년 간 자동차 부품 수출액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필러넥과 카본 캐니스터(연료탱크 증발 가스를 엔진에서 연소시키는 장치)를 생산하는 코리아에프티는 지난해 올린 매출만 4000억원이 넘는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 부품 기업 중 한 곳이다. 특히 국내 최초로 개발한 카본 캐니스터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4위(약 10%)에 달하는 강소 기업이다. 연료 탱크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활성탄에 흡착해 엔진에서 연소시키는 카본 캐니스터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된 미국·유럽 시장이 주요 타깃이다.
 
본사 공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캐니스터 생산 라인도 3곳 중 2개만 가동 중이었다. 김재산 코리아에프티 대표는 “매출이 지난 3월에는 지난해보다 15~20% 감소했고, 4월엔 35~40% 줄었다. 5월엔 절반으로 떨어질 것 같다”며 “4월은 직원들이 주 4일 근무하고 공장을 유지했지만, 5월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리아에프티는 5월이 되면 운전자금 등 유동성 위기가 올 것으로 보고, 최근 금융권 대출을 신청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두 차례의 금융권 대출 절차를 신청해 진행 중이며, 최근 3차 준비에 들어갔다”며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하면 직원들이 흔들리지 않을까 그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중소기업에 비하면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김 대표는 “완성차 업체의 2·3차 협력사, 특히 직원 20~30명으로 돌아가는 영세 사업장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며 “2·3차 협력사의 사정을 고려해 이들에게 납품 결제대금을 선결제하고 있다”고 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차 협력사가 하루 쉬면 2·3차 협력사는 그 이상 쉴 수밖에 없다”며  “2·3차 협력사는 어려워도 일감이 끊길까 봐 어렵단 말을 못한다. 알려진 것보다 상황이 심각한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산업연합회가 지난달 말 96개 자동차 부품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2.7%가 “지난해보다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또 “유동성 애로를 겪고 있다”는 기업은 그보다 많은 전체의 93.8%로 조사됐다.
 

“업체만 8000곳, 차 부품 생태계 붕괴 막으려면 당장 10조 필요”

 
자동차 부품사 유동성 위기 요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자동차 부품사 유동성 위기 요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유동성 위기 요인으로는 “수요 위축에 따른 매출 손실”(69.5%), “인건비 등 운영자금 불안”(41.1%) 순이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부 교수는 “1·2차 협력사만 해도 영업 이익률이 2~4% 정도 되지만, 3·4차 협력사는 대부분 1% 미만으로 한 달만 사정이 안 좋아져도 직원 월급 못 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부품사 중 현대·기아차 1차 협력사(밴더)는 350여 곳이며, 2·3차를 합치면 8000여 곳에 달한다.
 
정부가 자동차 부품사에 대한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선 “금융권 문턱아 여전히 높다”고 토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완성차 1차 협력사 한곳의 재경 담당자는 “코로나19 이후 금융기관 6곳에 대출 신청을 했지만, 산업은행을 뺀 5곳은 거절당했다. 신용등급(BB 이하) 때문에 신용 한도가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이어 “산은을 통해 진행 중인 대출 5억원도 한 달 운전자금(30억원)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대출 이자율도 6%로 예상한 것보다 훨씬 높았다”고 털어놨다.
  
4월 해외판매 현대차 -70%, 기아 -55%
 
정부는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신규발행 채권을 모아 이를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담보부 증권(P-CBO) 등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자,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20조원 규모의 회사채 매입기구(SPV)를 설치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상·범위는 정해지지 않았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356개 부품사를 대상으로 올해 필요한 운전자금 등을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기아차 계열사를 뺀 자동차 부품산업계가 연말까지 필요한 자금은 “최소 17조원”이라고 추산해 산업통상자원부에 보고했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오는 7월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금이 6조원, 연말까지 전체 부품사가 필요한 운전자금은 약 11조원으로 추산된다”면서 “여름 전까지 만기 연장을 비롯해 약 10조원을 곧바로 지원해야 차 부품 생태계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계도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지난달 현대·기아차 판매는 반 토막이 났다. 현대차는 지난달 15만9079대를 판매해 지난해 4월보다 56.9% 감소했다고 6일 밝혔다. 국내 판매는 7만104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5% 감소했으며, 해외에선 8만8037대를 기록해 70.4% 감소했다. 기아차는 같은 기간 국내 시장에서 5만361대, 해외 판매 8만3855대를 기록했다. 내수 판매는 19.9% 증가했지만, 해외는 54.9% 감소했다. 내수는 선방했지만, 잇따른 해외공장 가동 중단과 수출 물량 감소로 해외 판매가 급감한 것이다.
 
앞으로도 낙관하긴 어렵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최악의 상황에서 선방했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현대·기아차의 특성상 4월이 최저점이라고 하긴 어렵다”며 “코로나19 여파를 먼저 겪은 중국 시장도 현재 V자 반등이 아니라 U자 형태 회복을 보이고 중”이라고 말했다.
 
안성=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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