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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직선 브릭으로 곡선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

중앙일보 2020.05.06 12:00

[더,오래] 장현기의 헬로우! 브릭(10) 

브릭 아티스트 인터뷰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분은 현재 브릭캠퍼스 내 작업실에서 다음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는 김학진 작가입니다. 김학진 작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브릭 아티스트로 명확한 주제의식을 지닌 독특한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합니다. 김 작가의 작품에는 인체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는 사각의 브릭만으로 인체의 유려한 곡선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표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직선만으로 이루어진 브릭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깊은 관찰력과 예술적인 감각이 더해져야만 가능한 작업이죠. 그는 브릭 본래의 모양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대상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한편, 묘사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징성을 지닌 작품을 만들어내고는 합니다. 브릭으로 이야기를 쌓는 아티스트 김학진 작가를 만나보겠습니다.

 
브릭 아티스트 김학진. [사진 브릭캠퍼스]

브릭 아티스트 김학진. [사진 브릭캠퍼스]

브릭캠퍼스 내에 위치한 김학진 작가의 작업실.

브릭캠퍼스 내에 위치한 김학진 작가의 작업실.

 

브릭 아티스트로의 길을 열어준 아버지의 선물

김학진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80년대는 중동 지역에 건설업 붐이 일던 시기였습니다. 건설업에 종사하시던 김 작가의 아버지는 쿠웨이트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길에 공항에서 레고 두 박스를 선물로 사 오셨습니다. 여러 가지 건물이나 자동차, 배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시스템 브릭 세트였는데, 김 작가는 어린 시절 내내 그 레고와 함께했습니다. 처음에는 설명서를 보고 따라 하다가 나중에는 그림만 보고 창작을 하고는 했죠. 성인이 된 후 어렴풋이 기억나는 상자 속 이미지를 떠올려, 오랜 검색 끝에 그 제품이 ‘No. 400 유니버설 빌딩 세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브릭 링크〉에서 전 세계에 2개밖에 남지 않은 상품을 구해서 소장 중이라고 하는데요, 김 작가는 그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인생 최초의 선물이자,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이니까요. 어찌 보면 아버지의 선물이 김학진 작가를 브릭 아티스트의 길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건축가를 꿈꾸던 게임 개발자에서 브릭 아티스트로

대부분의 브릭 아티스트들처럼 김학진 작가도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레고는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레고의 영향이었는지 어린 시절부터 건축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게 되었죠. 설계 수업 시간에 모형 건축물을 만들어보다가 문득 레고를 재료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레고 조각들과 친구들에게 수소문해서 모은 레고들로 과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어린 시절의 기억이 소환되며 다시 레고에 빠지게 되었답니다.
 
졸업 후 지원하고자 했던 건축 회사가 IMF 영향으로 채용하지 않자, 시선을 바꿔 그 당시 좋아하던 게임을 만들던 회사에 지원했습니다. 게임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프로세스가 건축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첫 월급의 반을 레고를 사는 데 썼고 그 후로도 월급의 일정 부분은 늘 ‘레고비’로 책정해 두었을 정도였죠. 그렇게 그는 아마추어 브릭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취미’를 ‘직업’으로 바꾸는 것이 ‘취미’

즉흥적인 호기심으로 지원했던 게임 업계에서 무려 13년을 일하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게임을 기획, 개발하고 출시하며 즐겁게 일했지만 어느 순간 이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동시에 PC 기반이던 세상이 모바일 시장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고, 짧은 주기의 게임들을 빠르게 뽑아내는 방식들이 재미없게 느껴졌죠. 더구나 게임 속 가상의 공간을 만들다 보니 늘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창조하는 것에서 오는 성취감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김학진 작가는 그즈음 브릭 아트 창작품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있었는데, 2014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스팀펑크아트전 측에서 함께 전시를 해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살바도르 달리의 코끼리를 스팀펑크 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었죠. 그 전시를 통해 레고로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서의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영감을 받았고, 그때부터 전업 브릭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는 ‘최애’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현재 브릭 아티스트로서의 방향을 제시해 준 이 작품을 꼽았습니다.

 
제주 브릭캠퍼스에 전시 중인 김학진 작가의 작품 〈나이브〉.

제주 브릭캠퍼스에 전시 중인 김학진 작가의 작품 〈나이브〉.

제주브릭캠퍼스에 전시 중인 김학진 작가의 작품 〈코뿔소〉.

제주브릭캠퍼스에 전시 중인 김학진 작가의 작품 〈코뿔소〉.



테크닉에 대한 집중보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를 담는 작품

김학진 작가는 만들고자 하는 작품에 따라 다른 작업 방식을 선택합니다. 요즘엔 인체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고 있는데 인체의 아름다운 곡선을 강조하기 위해 명확한 비율이 필요한 경우에는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설계를 하죠. 하지만 작품의 외형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강조하기 위해서 브릭을 바로 쌓아 올려 만드는 작품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릴레사’는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은메달리스트 ‘페이사 릴레사’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 작품으로, 그는 리우 올림픽 당시 국민을 탄압하는 정부를 세상에 고발하는 엑스(X) 자 세리머니로 화제가 된 인물입니다. 김 작가는 그의 용기에 감명을 받아 작품을 제작하였고, 평화를 갈망하는 외침을 표현하기 위해, 유려함과는 거리가 먼 거친 느낌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또한 작가는 밀렵에 의해 멸종 위기에 처한 코뿔소 사진을 보고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코뿔소’라는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사라짐’과 ‘복구’의 경계에 서 있는 모습을 투명 브릭으로 나타낸 놀라운 표현력이 보이시나요? 이처럼 김학진 작가의 작품은 단순한 브릭 창작품을 넘어서 세상을 향해 커다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놀라운 예술 작품들입니다.

 
서울 브릭캠퍼스에 전시 중인 김학진 작가의 작품 〈다이브〉.

서울 브릭캠퍼스에 전시 중인 김학진 작가의 작품 〈다이브〉.

제주 브릭캠퍼스에 전시 중인 김학진 작가의 작품 〈릴레사〉.

제주 브릭캠퍼스에 전시 중인 김학진 작가의 작품 〈릴레사〉.



세계로 뻗어가는 K-브릭 아트

김학진 작가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그야말로 K-브릭 아트의 위상을 높이고 있기도 합니다. 2017년에는 태국 방콕의 한류 콘셉트 대형 쇼핑몰에 BTS 초대형 모자이크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죠. 현재 상해 한국 문화원에 전시 중인 백범 김구 선생님의 모자이크 작품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개인적으로 기념하고자 자신의 집 한쪽 벽에 전시하기 위해 작업 중이던 작품이었습니다.
 
제작을 마무리한 후 상해로 작품을 옮긴 뒤 ‘이제 내 것을 다시 만들어야지’ 하던 중에 3.1 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회에서 연락이 와서 두 번째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게 되었죠. 브릭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로 청와대 오찬에 초청되어 전시를 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최근에는 레고 코리아와 보그 코리아의 협업을 통해 최초로 패션과 브릭 아트의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김학진 작가 브릭 아트로 표현할 수 있는 것에는 그야말로 한계가 없습니다.

 
청와대에 전시된 백범 김구 브릭 모자이크.

청와대에 전시된 백범 김구 브릭 모자이크.

방콕 Show DC Mall에 전시한 BTS 브릭 아트월.

방콕 Show DC Mall에 전시한 BTS 브릭 아트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 

김학진 작가는 앞으로도 자신의 작품을 매개로 보는 사람들과 직,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브릭이라는 장난감을 소재로 사용함으로부터 오는 장점을 활용하여, 어렵고 관념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경탄을 일으킬 수 있는 예술 작품, 그 자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브릭 아티스트로서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예술가로서 만들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아 그것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대답하더군요. 앞으로 만나게 될 김학진 작가의 수많은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을 기대하겠습니다.

 
(주)브릭캠퍼스 대표이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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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기 장현기 (주)브릭캠퍼스 대표이사 필진

[장현기의 헬로우! 브릭] 전시, 콘서트, 뮤지컬 등 라이브 콘텐츠의 프로듀서이자 연출가. 20여년간 수백 편의 라이브 콘서트, 쇼, 뮤지컬, 전시 등을 제작 연출했다. 2014년부터 전시 기획자로 변신하여 활동하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브릭 아트에 매료되어 4년간의 준비 끝에 세계 최초의 브릭 아트 테마파크 ‘브릭캠퍼스’를 오픈, 현재 제주와 서울에서 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있다. 장난감으로 여겨지던 브릭이 최고의 예술 소재가 될 수 있고, 무한한 잠재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재미있고도 놀라운 사실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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