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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국가서 사망 더 많다" 코로나에 당한 유럽 '황당 변명'

중앙일보 2020.05.06 11:52
이탈리아 밀라노 남동부 크레모나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지난 3월 세워진 야전병원의 텐트들. AFP=연합뉴스

이탈리아 밀라노 남동부 크레모나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지난 3월 세워진 야전병원의 텐트들. AFP=연합뉴스

스페인·이탈리아·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20만 명 안팎까지 증가한 가운데 유럽 지역이 코로나19에 취약한 원인을 설명하는 학술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 논문 중에는 원인 분석에서 타당성이 다소 떨어지는 논문도 있다.
 
높은 감염률과 치명률에 놀라고 체면이 깎인 유럽인들이 엉뚱한 이유를 늘어놓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민주적인 나라 코로나19 확산 거세다"

이탈리아 로마 가바텔라 지역 주민들이 국가 봉쇄령이 내려진 가운데 지난달 25일 창문과 발코니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 가바텔라 지역 주민들이 국가 봉쇄령이 내려진 가운데 지난달 25일 창문과 발코니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표적인 것이 5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에 발표된 프랑스 부르고뉴 대학과 몽펠리에 대학 연구팀의 "국가별 코로나19 치명률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이란 논문이다.
 
연구팀은 통계 분석을 통해 국가 수준에서는 기저 질환과 치명률 사이의 상관관계가 없었고, 병상수당 인구와 치명률은 반비례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치명률이 정치체제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독재 체제 국가에서보다 민주적인 국가에서 사망자가 더 많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결론 마지막 부분에서 "많은 국가가 코로나19 때문에 집단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 포기해야 하느냐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팀은 각국의 민주화 수준을 관련 국제 정보 사이트(Our World in Data)의 자료를 인용했다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분석 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6일 오전 10시 현재(한국 시각) 벨기에는 확진자 5만509명에 사망자 8016명으로 치명률이 15.9%에 이르고, 영국·프랑스 15%, 이탈리아 13.8%, 스페인 11.7%, 스위스 6%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평균 7%나 미국 5.9%를 웃돌고 있고, 한국의 2.35%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독일의 치명률이 4.2%라는 점에서 정치 체제, 민주화 정도로 치명률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독일이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덜 민주적이어서 코로나19가 덜 확산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 간 전체 확진자수(가로축)과 전체 사망자수(세로축) 비교. 대각선 점선은 각국의 치명률을 나타낸다. . 자료:Our World in Data

국가 간 전체 확진자수(가로축)과 전체 사망자수(세로축) 비교. 대각선 점선은 각국의 치명률을 나타낸다. . 자료:Our World in Data

더욱이 유럽 이외의 국가로 확대할 경우 정치 체제로 치명률을 설명하기는 더욱 곤란해 보인다.
 
논문이 인용한 "Our World in Data"의 그래프도 연구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기 정체 탓에 감염률 높아져"

지난 2월 유럽 지역의 기압배치. 붉은 곳은 평소에 비해 기압이 높은 지역을, 보라색 지역은 기압이 낮은 지역을 표시한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코로나19가 빠르게 전파된 것은 고기압의 정체 탓이라고 주장하는 논문도 나왔다.

지난 2월 유럽 지역의 기압배치. 붉은 곳은 평소에 비해 기압이 높은 지역을, 보라색 지역은 기압이 낮은 지역을 표시한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코로나19가 빠르게 전파된 것은 고기압의 정체 탓이라고 주장하는 논문도 나왔다.

스페인과 스위스 물리·기상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은 지난 1일 "비정상적인 대기 순환 탓에 유럽에 코로나19이 더 많이 퍼졌다"는 내용의 논문을 공개했다.
 
이들은 논문에서 "유럽의 코로나19 대발생(pandemic)은 2월 말부터 강하게 발달하기 시작해 3월에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유럽 대륙 전체로 확산했다"며 "특히 북부 이탈리아와 스페인 내륙에서 높은 감염률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지난 2월 유럽 남서부에서는 비정상적인 고기압(anticyclone)이 폭넓게 자리 잡았고, 이로 인해 기온과 습도가 바이러스가 전파되기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며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유럽 다른 지역보다 더 빨리 전파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대기가 매우 안정되고 건조한 조건이 유지되면서 긴 거리까지 에어로졸(미세한 입자)은 물론 짧은 거리의 비말(침방울) 이동으로 바이러스 전파가 잘 이뤄졌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이다.
 
하지만 최근 영국·프랑스·독일도 이탈리아와 스페인만큼 확진자 숫자가 늘어났는데, 이들 국가의 감염자 증가를 2월의 대기 정체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또, 대부분의 에어로졸·비말 전파가 실내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대한 지역에 걸친 대기 안정이나 습도로 설명할 수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O형은 코로나19에 덜 걸려"

혈액 내 세포들 사진. 붉은색은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주황색은 면역 T 세포, 녹색은 혈액 응고를 담당하는 혈소판이다. 중앙포토

혈액 내 세포들 사진. 붉은색은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주황색은 면역 T 세포, 녹색은 혈액 응고를 담당하는 혈소판이다. 중앙포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팀은 혈액형과 코로나19 감염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뉴욕에서 682명의 확진자를 대상으로 ABO 혈액형(Rh+)을 분석했는데, 전체 인구를 고려했을 때 A형과 B형의 감염 확률이 높았고 O형은 낮았다는 것이다.
사망률과 혈액형 사이의 상관관계는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논문의 결론에서 "혈액형과 코로나19가 관련이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BO 혈액형은 적혈구 세포 표면에 노출된 탄수화물의 차이, 또 그로 인한 항원의 차이 때문인데, 그 차이로 코로나19 감염을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적은 숫자를 대상으로 한 통계에서는 특정 혈액형이 코로나19 잘 감염되는 것으로 나타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과학적 인과 관계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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