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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고무통 목욕. 잔반, 연탄가스…가난이 준 소중한 추억

중앙일보 2020.05.06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39)

5월은 젊은 가장에겐 보릿고개의 달이다. 이름표 붙은 날이 많아 지출이 심하다. 특히나 가정의 달이라 하니 더 신경 쓰인다. 며칠 후면 어린이날이다. 나에겐 어린 시절, 시시하지만 소중한 추억의 장면이 있다. 맛있는 반찬에 고봉밥을 먹고, 아버지의 일터에서 목욕하던 시간이다. 나이가 드니 더욱더 생각이 난다.
 
내 나이가 예닐곱 살쯤으로 기억하는데 부모님은 방문만 열면 보이는 공장에서 일하셨다. 방문을 열고 마당을 바라보고 있으면 엄마나 아버지가 수시로 손을 흔들며 지나다니셨다. 너무 심심할 땐 공장 마당에 나가 폴짝거리며 고무줄놀이를 했다. 그러면 두 분 중 한 분이 나타나 눈총을 주며 우리를 후딱 방으로 밀어 넣고 방문을 닫았다.
 
어릴적 우리가 배불리 먹은 음식은 식당에서 공장 사람들이 먹다 남긴 잔반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모아 온 거로 감쪽같이 새것처럼 밥상을 차리셨다. [사진 pxhere]

어릴적 우리가 배불리 먹은 음식은 식당에서 공장 사람들이 먹다 남긴 잔반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모아 온 거로 감쪽같이 새것처럼 밥상을 차리셨다. [사진 pxhere]

 
저녁이 되면 엄마의 두 손엔 음식 보따리가 들려있었는데, 그것을 펼쳐 밥상을 차렸다. 때때마다 고봉밥에 온갖 맛있는 반찬을 먹었다. 그래서 어릴 적엔, 우리 부모님이 그 공장의 대장인 줄 알았다. 조금 더 커서 알고 보니 그곳은 먼 친척이 운영하던 곳이라 가난한 우리 가족에게 특별히 공장 한쪽 모퉁이에 있던 창고를 방으로 개조하여 생활하게 해준 것이다. 아버지는 보일러공으로 일하시고 엄마는 공장 식당에서 주방 일을 하셨다. 우리가 배불리 먹은 음식은 식당에서 공장 사람들이 먹다 남긴 잔반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모아 온 거로 감쪽같이 새것처럼 밥상을 차리셨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아버지는 어린 우리를 보일러실로 데리고 가 목욕을 시켜 주셨다. 아버지는 직원들이 출퇴근할 때 대문을 여닫는 경비 역할도 하셨다. 사람들이 모두 퇴근하면, 아이 셋이 들어가서 물장구칠 만한 커다란 고무통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아 우리를 넣어놓고 야간 일을 하셨다.
 
 
오랜 시간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놀았다. 우리의 손과 발은 쭈글탱이가 되어 누가 더 쭈글쭈글해졌는지 내기하며 킬킬거렸다. 아버지는 우리를 하나씩 건져 비누칠하고 다시 물속에 넣었다가 꺼냈다. 셋이나 되는 어린아이들을 씻기는 일은 늘 아버지가 당번이었다. 가끔은 옛날이야기도 해주시며, 우리의 장난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그 눈길은 지금도 아스라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는다.
 
우리는 그 방에서 사는 몇 년간 겨울이면 차례대로 쓰러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동치미 국물이 약이 되었다. 눈을 뜨면 두 분이 우리를 꼭 안고 바라보는 불안한 눈빛을 보곤 했다. 그것이 연탄가스 때문이었음을 안 것은 생활권이 방에서 집으로 차원이 달라져 이사를 나온 후다. 아버지는 그때의 가난했던 사건을 두고두고 마음 아파하셨지만 나는 행복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딸네 집은 아이들을 위해 홈캉스 중이란다. 궁금해서 들르니 사위가 화장실에서 아이들과 물장난 중이다. 거실 중앙엔 텐트를 쳐서 아이들이 들락날락하며 난리도 아니다. 소박하지만 재밌게 행복을 만들어 간다. [사진 pxhere]

딸네 집은 아이들을 위해 홈캉스 중이란다. 궁금해서 들르니 사위가 화장실에서 아이들과 물장난 중이다. 거실 중앙엔 텐트를 쳐서 아이들이 들락날락하며 난리도 아니다. 소박하지만 재밌게 행복을 만들어 간다. [사진 pxhere]

 
딸네 집이 요란하다. 연휴인데도 여행도 못 가고, 학교도, 유치원도 못 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홈캉스를 하는 중이다. 집에서 여행 분위기를 즐기는 거란다. 첫날은 아파트 야외 주차장 아빠의 트럭 위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더니, 아이들이 신이 났다. 오늘은 거실로 텐트를 옮겨 하룻밤이 될지 며칠 밤이 될지 모른단다.
 
궁금해서 들르니, 사위가 화장실에서 아이들과 물장난 중이다. 거실 중앙엔 텐트를 쳐서 아이들이 들락날락하며 난리도 아니다. 텐트 위엔 사이키 조명도 빙빙 돌아간다. 소박하지만 재밌게 행복을 만들어 간다. 물장구치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씻기며 그윽하게 바라보는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거실에 빨랫거리는 쌓여가지만,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에 부모는 마냥 행복한 표정이다.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은 나이 들어서도 마음 고프지 않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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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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