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 읽기] 공포와 지루함 사이에서

중앙일보 2020.05.06 00:32 종합 28면 지면보기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홍해가 갈라지듯 세상이 두 쪽으로 갈라진 듯하다. 한쪽 세상은 감염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집요할 정도로 검사와 격리를 진행한 덕에 점차 삶의 기운을 되찾아가고 있다. 다른 한쪽 세상은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에 사태를 수습할 타이밍을 놓친 채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다.
 

지금은 실패 최소화가 성공 보장
곧 성공 극대화 필요한 시기 도래
재밌다면 과감하게 슛을 날리는
창의로 무장된 공격수들 키워야

코로나가 둘로 갈라놓은 건 국가만이 아니다. 개인들도 두 부류로 나뉘었다. 감염과 죽음에 대한 공포, 자신의 동선이 공개되는 것에 대한 당혹감으로 인해 자신의 세계를 자발적으로 수축시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의 마음 역시 두 진영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지루함 따위는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는 마음을 품었다가도, 지겨워도 너무 지겹다는 마음을 품기도 한다.
 
결국 개인이든 국가든 공포로 인해 삶을 축소하는 진영과 지루함이 지겨워서 삶을 확장하려는 진영으로 나뉘었다. 계층으로 나뉘는 세상인 줄로 만 알았는데, 진보와 보수로 나뉘는 세상인 줄로 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의 세상은 감정으로도 나뉘고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세상이 얼마나 개인의 마음에 의해서 움직이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다른 위기와는 달리 지금의 위기는 결국 개인들이 움직이지 않고, 개인들이 소비하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세상의 다양한 구조적 한계들이 드러났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개인의 마음이다. “개인들이 먹는 것 외에는 일체의 돈을 쓰지 않는 것이 대공황”이라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스티글리츠 교수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개인의 마음에 대한 분석을 절실하게 요구한다.
 
우리 마음속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단조로운 삶에 대한 지루함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공포로 균형추가 쏠린 마음은 생존에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삶의 공간적·관계적 지경이 급속하게 축소되고 개인의 개성을 표출하려는 시도는 제한된다. 여행이 줄고, 옷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사라진다. 문화생활의 축소도 불가피하다.
 
반면에 지루함을 지겨워하는 쪽으로 균형추가 기운 마음은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것들에 대한 추동으로 가득하다. 그 마음에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인정하는 여유가 있다. “재밌잖아!”이 한마디면 어떤 행위도 충분히 정당화된다.
 
지금은 지루함보다 공포에 의해 움직이는 국가와 개인의 완승으로 보인다. 마땅히 공포를 느껴야 할 때 공포를 느끼지 못한 개인과 국가가 치르는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지루함의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세다. 한 연구에서 사람들을 아무런 자극이 없는 공간에 15분간 머무르게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간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원하면 자신의 허벅지에 전기 충격을 주는 것이었다. 지루함을 참지 못해 자신에게 스스로 위해를 가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었을까? 놀랍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랬다. 그러니 지루함을 삶의 최대의 적으로 삼아온 개인과 문화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란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일 수 있다.
 
반면에 공포에 의해 움직여 온 개인과 국가에는 지금의 상황이 불편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행위, 전체를 위해 국가가 개입하는 행위, 수치를 면하기 위해 스스로 조심하는 행위가 익숙한 행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포가 승리할 것인가? 결코 아니다. 지금 우리의 성과는 우리의 문화적 특성과 상황이 잘 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은 실패를 최소화하는 것이 성공이 되는 상황이고, 그 상황은 우리의 정서에 잘 부합한다. 공포로 움직이는 개인과 문화는 공격수보다는 수비수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점을 최소화하는 일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의 최소화가 아니라 성공의 극대화를 요하는 상황은 반드시 다시 오게 되어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재미와 창의다. 딱 필요한 것만 하겠다는 태도가 지속되면 지루함에 대한 인내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져서 공격력이 저하될 수 있다. 쓸모없는 것들이라도 재미있다면 과감하게 슛을 날려야 한다.
 
탁월한 수비가 필요한 상황에서 우리의 수비수들이 정말 잘 해내고 있다. 탄탄한 수비가 확인됐으니 이제 공격을 꿈꿔야 한다. 재미와 창의로 무장된, 지루함을 죽도록 지겨워하는 공격수들을 키워야 한다.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