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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지성호, 정보위 배제? "그들은 선출된 사람, 제한 안돼"

중앙일보 2020.05.06 00:03 종합 6면 지면보기
태영호(左), 지성호(右)

태영호(左), 지성호(右)

‘영혼까지 털린다’는 게 이런 것일까. 북한 이탈 주민 출신인 국회의원 당선인 두 사람이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태영호(미래통합당)·지성호(미래한국당) 당선인 얘기다. 지난달 중순 각각 ‘김정은 건강·신변 이상설’을 제기했던 두 사람은, 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활동 사진과 영상이 공개되자 “허위 정보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정치권과 언론에서 난타당했다. 두 사람은 “말의 무게를 실감했다”며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비난은 현재진행형이다.
 

[현장에서]
전문가들, 특정 상임위 배제론 비판
“예측 잘못 이유로 배척은 지나쳐”
야당 “사망설 CNN엔 왜 항의 않나”

과거 색깔론 피해자였던 여권서
당선인에게 스파이 프레임 씌워

급기야 여권에선 이들에 대해 안보 관련 상임위 보임 불가론까지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에선 4일 “안보상의 심각한 위해를 가했다. 국방위나 정보위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김부겸 의원), “1급 정보들을 취급하게 될 텐데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윤건영 당선인)이라고 했다. 5일엔 “민감한 상임위 배정은 국민적 신뢰가 깨져서 이미 어렵게 됐다”(민병두 의원)며 보임 불가를 기정사실화했다.
 
국회 정보위·국방위 배제 주장에 대한 반응

국회 정보위·국방위 배제 주장에 대한 반응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예측 실패’를 이유로 상임위 보임 불가까지 거론하는 건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인 ‘38노스’ 제니 타운 편집장은  “그들은 선출된 사람들이다. 일부 직무만 할 수 있다는 경고(caveat)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정치외교학과)도 “잘못 예측했다고 사과? 학계와 언론계, 특히나 북한 연구자 모두에 해당되는데 (배제 주장은) 기이하다(bizarre)”고 꼬집었다.
 
실제로 1986년 11월 ‘김일성 사망설’, 2013년 8월 ‘현송월 총살설’, 2015년 5월 ‘김경희 피살설’ 오보 등 북한 관련 정보가 틀린 건 부지기수다. 2016년 2월엔 국가정보원이 처형됐다고 보고한 이영길 인민군 총참모장이 석 달 뒤 중앙군사위원에 선임된 일도 있다. 이번엔 친여 성향의 매체(통일뉴스)조차 ‘김정은 서거’ 속보를 냈다.
 
두 당선인에 대해 “오버하지 말자”(3일)고 견제구를 날렸던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4일 “조리돌림하는 건 더 악랄하다. 정보위·국방위 배척 주장은 의외이자 충격”이라고 비판했다. 통합당의 한 의원은 “여당은 최초 사망설을 보도한 CNN에 대해선 왜 항의 방문을 하지 않냐”고 따졌다.
 
태영호·지성호 두 당선인을 동렬에 놓고 비난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지 당선인은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사망 99% 확실”(1일)이라고 단정했지만, 태 당선인은 지난달 15일 김 위원장이 태양절 행사에 불참한 걸 근거로 “김정은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4월 28일)라고 추론한 정도다. 당시에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가 어땠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태 당선인을 향해 “스파이”(김병기 의원)란 표현까지 쓰며 비난하고 있다. “북한 고위직 출신 스피커(태 당선인)를 흠집 내려는 의도 아니냐”는 반발이 야당에서 나오는 이유다.
 
혐오와 차별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친여 성향 네티즌들은 태 당선인의 지역구(서울 강남갑)를 겨냥해 ‘력삼동’ ‘내래미안’ 등 조롱성 게시글을 올리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 이탈 주민을 영구적인 하층 계급으로 만드는 나쁜 메시지를 이보다 더 확실하게 줄 수는 없을 것”(크리스토퍼 그린 인터내셔널 크라이시스 그룹 연구원)이란 반응이 나왔다.
 
과거 수십 년간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색깔론의 피해자에 가까웠다. 그랬던 그들이 역으로 ‘빨갱이’ ‘스파이’ 프레임을 씌우는 건 기괴한 풍경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대한민국의 주류가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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