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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거리두기 온라인 대국 ‘AI 훈수’가 복병

중앙일보 2020.05.06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LG배 세계대회 예선전이 열리는 한국기원 2층 대국장. 프로기사들이 노트북을 들고 와 띄엄띄엄 자리를 잡는다. 누구는 마스크를 쓰고 누구는 벗었다. 내 상대는 몇 미터 앞에 앉아있다. 서로 고개를 꾸벅하고 대국이 시작된다. 어색하다. 이런 시합은 처음이다. 인터넷 대국은 수없이 해봤지만 공식 기전은 처음이다. 코로나가 만든 풍경이다.
 

코로나에도 시합 이어온 한국
중국은 준비중, 일본은 기약없어

이날 TV 스튜디오에선 이창호 9단 대 나현 9단의 예선 준결승전이 생중계됐다. TV 대국은 거리두기가 불가능하다. 이창호는 마스크를 썼고 나현은 벗었다. 모든 스포츠와 공연이 멈춘 가운데서도 바둑은 이런 식으로 대회를 이어왔다. 여자바둑리그도 21일 개막한다. 중단된 대회는 없고 연기된 대회가 하나 있을 뿐이다.
 
중국과 일본은 딴 세상이다. 시합은 모두 멈춰섰다. 중국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기지개는 켜고 있지만 아직 어떤 대회도 재개되었다는 소식은 없다. 베이징의 국가대표 숙소가 폐쇄되고 기사들은 전국으로 흩어졌다. 우한에 사는 구쯔하오 9단(중국랭킹 4위)이 70일 동안 집 밖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는 정도다. 한국 상위랭커들도 대거 참가하는 지구촌 최대의 바둑축제라 할 ‘중국리그’도 아직 감감하다. 재개되더라도 올해 한국기사들의 참가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일본 역시 7대 기전 등 모든 시합이 중단됐고 온라인 시합도 고려되지 않고 있다. 가장 힘든 곳은 주간 바둑신문인 ‘슈칸 고’라는 얘기도 들린다. 새 기보가 나오지 않아 신문 제작을 중단해야 할 상황이란 것이다. 한국은 ‘시합중’이고 중국은 ‘준비중’이라면 일본은 ‘기약없음’이라 요약할 수 있다.
 
올해 7개가 예정된 세계대회는 제각각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세계대회는 국경을 넘나들어야 하는데 비행기 편도 사라졌고 설사 비행기를 탄다 해도 선수들이 2주간의 격리를 감당할 수 없다. 바둑올림픽이라 불리는 대만의 응씨배는 도쿄 올림픽에 맞춰 일본에서 열고자 했으나 무기 연기됐다. 얼마 전 중국의 몽백합배가 8강전 중 딱 한판, 중국 셰커 7단과 일본 이치리키 료 8단의 대국을 온라인으로 치렀다. 그리고는 다시 연기 모드로 들어갔다.
 
이런 와중에 한국이 주최하는 LG배가 이목을 모으고 있다. 전에 200명 이상이 한데 모여 치르던 통합예선은 사라졌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에 TO가 부여되고 나라별로 각각 형편에 맞게 선수를 뽑았다. 문제는 6월 1일로 예정된 본선 32강전이다. 비행기도 뜨지 않는 지금 결론은 정해져 있다. 온라인 대국 아니면 연기,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삼성화재배는 동아시아 외에 미국과 유럽도 출전하기 때문에 더 복잡하다. 예년의 경우 6월 말에 통합예선을 치렀지만 올해는 사태를 주시하며 기다리는 중이다.
 
코로나가 불러온 언택트(untact) 시대에 온라인 대국은 어떤 봉쇄도 뚫을 수 있는 유용한 대체수단이다. 그러나 온라인 대국엔 골치 아픈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인간보다 훨씬 강한 AI(인공지능)란 존재다. AI의 훈수는 프로기사들의 신사도에만 맡기기엔 너무도 유혹적이고 치명적이다. 따라서 온라인 대회는 AI의 차단이 필수 과제다.
 
앞서 언급한 몽백합배 중일전은 주최측 요청으로 ‘예후’라는 프로그램에서 대국했는데 굳이 예후가 선택된 배경이 주목된다. 예후가 AI 사용 여부를 가려내는데 출중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 고비에서 딱 한 수만 훈수를 받는다면?
 
이런 얘기는 비감하다. ‘장막 안에서 천 리를 내다본다’던 인간의 바둑이 어느덧 기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처음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바둑과 인터넷은 천생연분이라 했는데 이 연분은 어디로 흘러갈까. 코로나가 별 생각을 다 하게 만든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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