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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의료환경 비판했던 의사 3명, 잇따른 의문의 추락사

중앙일보 2020.05.05 16:35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의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를 위한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의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를 위한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1만 명에 이르는 등 사태가 악화하는 가운데 보건 당국에 항의했던 러시아 의사들이 잇따라 고층 창문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주간 고층서 추락...2명 사망, 1명 중태
모두 러시아 당국과 갈등 빚던 의사들
주요 외신, '의문이 남는 추락 사고' 보도
장비 부족·의료진 감염…의료 붕괴 오나

 
CNN과 뉴욕타임스(NYT) 등은 4일(현지시간) 최근 2주간 러시아 의사 3명이 창문에서 떨어져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NYT와 CNN에 따르면 추락한 의사 모두 코로나19 대응 방식을 두고 러시아 당국과 갈등을 겪었다.
 
세 건의 추락사고는 4월 24일 시작됐다. 러시아 스타시티에 위치한 우주비행사 훈련소의 응급의료시설원장인 나탈리아 레베데바(여)가 24일 병원 창문에서 떨어져 숨졌다. 훈련소 내 코로나19 확진자 치료에 참여하던 레베데바는 지난달 20일 코로나19 의심 증세를 보였고, 코로나19 치료를 받던 중 창문에서 추락사했다.
 
NYT와 당시 사건을 보도했던 데일리메일에 의하면 레베데바는 동료들과 시설 관리자에게 코로나19 확진을 막지 못하고 되려 감염시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병원 측은 성명을 통해 “참담한 사고가 발생했다”며 “그는 매일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전문가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틀 후인 4월 26일에는 크라스노야르스크에 있는 한 병원의 원장 대행인 엘레나 네포므냐스차야(여)가 창문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추락 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던 그는 지난 1일 사망했다.
 
현지 방송에 따르면 네포므냐스차야는 병원을 코로나19 치료소로 전환하는 사안을 놓고 지역 보건부 직원들과 전화로 논의하는 도중 창문으로 추락했다. 네포므냐스차야는 의료 장비와 병원 직원들의 준비가 부족하다며 병원의 코로나19 치료소 전환을 반대해왔다.
 
러시아 응급의 알렉산더 슐레포브(왼쪽)와 동료 알렉산더 코스야킨(오른쪽)이 SNS에 병원의 의료장비 부족 실태를 비판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브콘탁테 캡처]

러시아 응급의 알렉산더 슐레포브(왼쪽)와 동료 알렉산더 코스야킨(오른쪽)이 SNS에 병원의 의료장비 부족 실태를 비판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브콘탁테 캡처]

 
지난 2일에는 러시아 보로네시에 있는 한 병원의 응급의인 알렉산더 슐레포브가 병원 창문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고 현재 치료 중이다. 현지 방송은 그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전했다.
 
CNN과 NYT 등에 따르면 슐레포브는 동료 의사인 알렉산더 코스야킨과 함께 열악한 의료 환경에 대해 비판하는 동영상을 찍어 올렸다. 슐레포브는 동영상에서 의료장비 부족을 비판하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음에도 계속 일을 하도록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슐레포브가 근무하던 병원은 성명을 통해 “확진 판정을 받자마자 그를 근무에서 제외했고 입원시켰다”며 동영상의 내용을 부인했고, 성명이 있고 난 3일 뒤 슐레포브도 “감정적이었다”며 기존 주장을 철회했다.
 
슐레포브의 동료인 코스야킨은 CNN을 통해 “지난달 30일 마지막 대화를 나눴는데 증세가 나아져 퇴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갑자기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많은 것들이 불명확하다”고 덧붙였다.
 

”의문스러운 추락사고”… 배후 의심도 

이 사건을 보도한 주요 외신은 추락한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러시아 보건 당국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는 데 주목했다. NYT는 “세 명의 러시아 의료진이 당국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을 비판한 뒤 창문에서 추락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정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한 의사들을 경찰이 강력하게 탄압하고 있는 가운데 사건이 발생했다”며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은 의문의 추락사고의 배후에 정부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CNN도 “의문이 남는 사고”라며 세 사건과 관련된 병원과 경찰 측에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으나 모두 응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의료 붕괴 조짐

러시아 의료노동자연합이 SNS에 녹슨 구급차 등 낙후된 의료장비에 대해 도움을 호소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브콘탁테 캡처]

러시아 의료노동자연합이 SNS에 녹슨 구급차 등 낙후된 의료장비에 대해 도움을 호소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브콘탁테 캡처]

 
러시아에서는 의료장비 부족 등을 호소하는 러시아 의료진과 이를 제지하려는 정부 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러시아 의사연합에 따르면 각지의 의료진들이 의료장비 보급 시위를 벌이면 경찰들이 외출금지령을 위반했다며 개입하는 일이 잦아졌다. 의사연합 관계자는 지난달 23일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병원의 궁핍한 사정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엔 나쁜 정보이기 때문에 병원과 관료들이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3명의 의사 중 2명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던 것처럼 러시아 의료진의 코로나19 감염도 문제다. 지난달 28일 NYT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의료진의 코로나19 확진은 매일 발생하고 있고, 일주일 동안 모스크바 인근에서만 200명이 넘는 의사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세묜 갈페린 의사단체 회장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병원에선 의료진 감염 사례가 발생하면 병원 운영을 중단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병원 측에서 감염 사실을 숨기고 있다”며 “보고된 숫자보다 의료진 확진자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코로나19 사태 ‘악화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스크바 중심가에 인적이 거의 없다. [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스크바 중심가에 인적이 거의 없다. [AFP=연합뉴스]

 
현재 러시아 내 코로나19 상황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러시아의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이틀 연속으로 1만 명이 넘었다. 이로써 누적 확진자 수가 약 14만 5천 명으로, 독일에 이어 세계 7위가 됐다. 사망자는 1356명이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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