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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 레시피 수두룩한데…굳이 이 요리책이 갖고 싶은 이유

중앙일보 2020.05.05 11:02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과 상세한 레시피는 요리책의 기본이다. 그런데 요즘 서점가에선 음식 사진 대신 그림을 넣은 요리책이 눈에 띈다.  
 
지난 1월 출간된 『소금, 지방, 산, 열』은 요리사이자 저술가인 사민 노스랏이 훌륭한 요리를 만드는 네 가지 요소에 관해 쓴 책이다. 요리의 기본 원리를 알려주는 책으로 적당히 잘 넣은 소금과 요리에 풍미와 질감을 주는 지방, 음식의 균형을 잡는 산, 음식에 맛있는 화학반응을 선사하는 열. 이 네 가지 요소가 제대로 작동하면 레시피 없이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다.  
사민 노스랏의 '소금, 지방, 산, 열' 사진 세미콜론

사민 노스랏의 '소금, 지방, 산, 열' 사진 세미콜론

약 460여 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양장본 책으로 수많은 요긴한 정보가 들어있어 요리 백과사전 같지만 한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바로 책 전체에 사진이 단 한 장도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양파 하나, 풀 포기 하나, 고기 한 덩이 등 음식을 구성하는 모든 재료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세계의 신맛’‘세계의 맛’ 등 식재료 도표도 비슷한 그림체의 인포그래픽으로 대신했다. 손글씨(캘리그래피)로 된 정보들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알기 쉽고 친절할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특별하다. 이 책의 그림은 미국 뉴욕타임스의 삽화가로 유명한 웬디 맥노튼의 솜씨다.  
유명삽화가 웬디 맥노튼의 그림이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사진 세미콜론

유명삽화가 웬디 맥노튼의 그림이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사진 세미콜론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책을 멋지게 꾸미는 수단으로 일부러 일러스트를 선택했다”며 “독자가 요리마다 완벽한 모습이 딱 하나뿐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좀 더 자유롭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출판사 세미콜론의 김수연 대리는 “워낙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인 웬디 맥노튼의 그림이 책의 매력을 살렸다”며 “왕성된 요리의 모습을 상상하며 충분히 시도하고 실패를 거듭해 보기를 원하는 저자의 메시지”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도 사진보다 일러스트를 쓴 덕분에 오히려 완성도가 올라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파스타 그림이 책의 매력을 더한다. 사진 포엣츠앤펑크스

상상력을 자극하는 파스타 그림이 책의 매력을 더한다. 사진 포엣츠앤펑크스

독립출판사 포엣츠앤펑크스가 지난해 10월 출간한 『에딧 파스타 쿡북 』에는 뮤지션 김C, 식당 ‘이꼬이’의 정지원 셰프, 영국에서 활동 중인 패션 디자이너 레지나 표 등 패션‧문화계 인사 30인의 특별한 파스타 레시피가 담겨있다. 각각의 파스타는 역시나 일러스트레이터 박형진의 멋스러운 그림으로 표현됐다. 가방 브랜드 ‘바이에딧’의 대표이자 출판사 포엣츠앤펑크스의 대표인 오선희씨는 “전문가들의 정교한 요리법이 아니라 비전문가들의 쉬운 요리법을 담은 책으로 독자들에게 가볍게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에 일러스트를 선택했다”며 “같은 재료를 사용했어도 사람마다 스타의 맛은 다 다르다"며 "그림을 보며 각각의 다른 그 맛들을 상상하길 바란다”고 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에 책 사이사이 소담히 그려진 파스타 그림이 인상적인 이 책은 벌써 2쇄에 돌입했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  
 
어렵게 느껴지는 스페인 요리를 일러스트로 쉽게 소개한다. 사진 교보문고

어렵게 느껴지는 스페인 요리를 일러스트로 쉽게 소개한다. 사진 교보문고

아예 일러스트레이터가 출간한 요리책도 있다. 지난 3월 출간된 『일러스트로 더 알기 쉬운, 스페인 가정식 레시피』다. 작가가 스페인 유학 시절 맛보았던 소박한 스페인 가정식 요리를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했다. 재밌는 것은 요리법을 알려주는 사이사이에 ‘무늬가 있는 접시 그리기’‘커피잔과 추로스 그리기’ 등 음식 그림을 그리는 방법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수정 작가는 “어렵게 느껴지는 스페인 요리를 비전문가가 쉽게 소개하는 요리책”이라며 “사진이 더 정확한 정보가 될 수 있지만, 일러스트만의 특별한 매력을 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 이 책을 산 한 독자는 작가에게 “요리에 큰 관심은 없는데 그림으로 된 레시피를 보고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구입했다”며 “실제 따라서 요리하지 않아도 사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이 된다”는 소감을 전했다고 한다.  
 
드립 커피 입문서, 'abc drip' 사진 인덱스

드립 커피 입문서, 'abc drip' 사진 인덱스

드립 커피 안내서인 『abc drip』은 ‘멜리사’라는 주인공과 그의 개 ‘원두’가 등장하는 만화(그림 김정연)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중간중간 사진도 등장하지만 두 만화 속 주인공이 커피를 내리는 법을 알아가는 과정이 중심이다. 출판사 인덱스의 유주연 저자는 “드립 커피 입문서인 만큼 커피를 만드는 과정이 쉽고, 즐겁고, 간편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은 책”이라며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이야기를 해 나가기 위해 일러스트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두 주인공이 드립 커피에 알아가는 과정을 친근하게 담았다. 사진 인덱스

두 주인공이 드립 커피에 알아가는 과정을 친근하게 담았다. 사진 인덱스

 
음식 평론가 이용재씨와 만화가 정이용씨가 펴낸 『조리 도구의 세계(반비)』는 계량컵부터 장갑, 에어프라이어와 식기세척기에 이르기까지 행복하고 효율적인 요리 생활에 필요한 조리 도구를 꽤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담아냈다. 사진보다 감각적인 느낌의 삽화 덕분에 책 전체의 일관적 완성도가 돋보인다. 
세밀한 일러스트로 감각을 더한 '조리 도구의 세계' 사진 반비

세밀한 일러스트로 감각을 더한 '조리 도구의 세계' 사진 반비

 
지난해 9월 재출간된 『할머니의 요리책』은 손녀가 자신의 할머니의 요리법을 정감 있는 손 글씨와 그림으로 소개한 책이다. 최윤건 할머니가 직접 쓴 메모와 육성 녹음을 토대로 손녀 박린씨가 펴냈다. 특이하게도 요리책이 아닌 에세이로 분류된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김문주씨는 “단순히 요리법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음식을 문화적 관점으로 해석해 다양한 콘텐트로 확장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할머니의 요리책' 사진 위즈덤하우스

'할머니의 요리책' 사진 위즈덤하우스

인터넷 교보문고 이주호 요리책 담당 MD는 “쿡방‧먹방 등 사회 전반적으로 요리·음식을 다룬 콘텐트에 관심도가 높다 보니 요리책 역시 한층 다양한 방식으로 출간되고 있다”며 “일러스트나 손글씨 등 책에 감각적인 요소를 더하고 편집의 묘를 살려 경쟁력을 갖추는 요리책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의 정감있는 요리법을 사진 대신 그림과 손글씨로 담았다. 책 '할머니의 요리책' 사진 위즈덤하우스

할머니의 정감있는 요리법을 사진 대신 그림과 손글씨로 담았다. 책 '할머니의 요리책' 사진 위즈덤하우스

 
블로그에, 유튜브에 자세한 요리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실용적인 요리책보다 그림과 손 글씨로 매력도를 높여 내 서가 한켠에 자리를 내어주고 싶은, 소장가치 높은 요리책이 돋보이는 이유다. 실용서에서 라이프스타일 안내서로 요리책이 진화하고 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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