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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부족? 기회 포착?…대기업 대출 두달 만에 14조 급증

중앙일보 2020.05.05 08:00
대기업들이 ‘실탄’ 확보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서 확산한 지난 두 달 간 대기업이 은행에서 대출 받은 금액 규모는 약 14조원 증가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대기업 대출 잔액이 급증했다. 셔터스톡

코로나19 여파로 대기업 대출 잔액이 급증했다. 셔터스톡

 
4일 5대 시중은행(국민‧농협‧신한‧우리‧하나)의 여‧수신 현황에 따르면 지난 달 말 기준 대기업의 총 대출 잔액은 88조507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월(3월) 대비 5조8052억원 늘어난 수치다. 코로나19가 국내에서 확산하기 시작한 2월(74조6073억원)과 비교하면 2달 동안 13조9001억원 급증했다.  
 
금융권에선 최근 대기업의 대출 규모 증가폭이 이례적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최근 1~2년 간 5대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70조원 전후로 움직여왔다. 지난 해 12월만 해도 72조791억원으로 70조원대 초반을 유지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대기업 대출 잔액이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증가폭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4일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지난 달 말 대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 2월과 비교해 약 14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5대 시중은행 자료를 토대로 만든 표.

4일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지난 달 말 대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 2월과 비교해 약 14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5대 시중은행 자료를 토대로 만든 표.

이 대출 규모 증가는 최근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이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영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지난 달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달 회사채 발행 규모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월 대비 7.4% 감소한 15조6463억원에 그쳤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서비스‧유통 등 코로나19 여파로 업황이 어두운 기업의 경우 금융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어려웠기 때문에 금리가 더 높더라도 은행 대출을 늘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일부 대기업의 경우, 코로나19로 발생할 업계 구조조정 등에 대비한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 대출을 늘렸다는 분석도 나왔다. 조 수석연구위원은 “일부 기간산업은 실제 현금이 부족한 경우도 있지만, 다른 대기업의 경우 ‘잔인한 기회’를 노리고 현금을 확보한 것”이라며 “향후 코로나19 여파로 업계 구조조정이나 M&A(인수합병)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 미리 현금 유동성을 확보해 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도 “신용도가 좋은 대기업은 유동성 확보가 필요할 때 대출을 받기 유리한 위치에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향후 시장 변동에 대비해)일단 현금을 많이 확보해 놓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늘어난 대출 규모에 향후 연체나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 교수는 “기업의 매출이 V자 형으로 금방 회복이 되면 단순히 유동성 문제로 끝나겠지만 매출 부진이 장기간 지속되면 (기초가)약한 기업들은 금융부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당장은 정부나 국책은행이 나서서 보증도 해주고 여러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 상태가 지속되면 연말에는 대출에서 발생한 손실을 누가 부담하느냐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소상공인‧자영업자)의 은행 대출 잔액도 함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지난 달 말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대출은 전월 대비 8조4379억원 증가해 463조9291억원에 달했다. 2월 말과 비교하면 13조7998억원 늘어난 규모다. 이와 더불어 가계대출 규모도 코로나19 여파가 확산하기 전인 2월(613조3080억원) 대비 11조3296억원 늘어난 624조6376억원을 기록하며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대출 지원)정책과 맞물려 곳곳에서 급증한 대출이 향후 금융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며 “정책 지원을 위해 대출을 늘려 온 시중은행 입장에선 불안감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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