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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따뜻하지만 때론 냉정한, 팔색조 의사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2020.05.05 07:00

[더,오래] 유재욱의 심야병원(70)

 
이번 연주곡은 2003년 드라마 ‘천국의 계단’ OST 중에서 김범수의 ‘보고싶다’다. 아이스링크에서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절규하며 부메랑을 던지던 배우 권상우의 모습이 떠오른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대 99학번 동기 5명 교수의 의사생활을 그린 드라마다. 등장하는 의대교수 5명은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모여 그룹사운드를 결성할 정도로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왼쪽부터 배우 김대명, 유연석, 전미도, 정경호, 조정석. [사진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왼쪽부터 배우 김대명, 유연석, 전미도, 정경호, 조정석. [사진 tvN]

 
소아외과 안정원 교수(유연석 분)
별명은 ‘부처’. 의사라기보다는 성직자에 가깝다. 아이 배에 가져다 대는 청진기를 차갑게 느낄까봐 따뜻한 입김으로 데우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실 가운을 입고 복도를 걸어가다가 아무 상관 없는 아이 엄마가 “너 말 안 들으면 저 선생님이 주사 놓는다” 하고 아이를 어르는 소리를 들으면 지나가다가 괜히 봉변당하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일 때도 있는데, 안정원 교수는 그마저도 어설픈 연기로 받아준다.
 
안정원 교수를 보면 1999년 개봉했던 영화 ‘패치아담스’의 로빈 윌리엄스를 떠오르게 한다. 세상에 이런 의사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떠나버린 아이들 때문에 슬퍼하며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은 의사로서 걱정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연민을 가져야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본인의 감정까지 흔들려버리면 환자를 치료하면서 냉철한 판단을 하는 데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흉부외과 김준완 교수(정경호 분)
별명은 ‘악마’. 흉부외과 레지던트는 물론 환자들에게도 악마로 불리는 의사다. 완벽주의자이고 실력은 최고, 하지만 성격은 왕재수다. 실수한 레지던트에게 심하게 나무라는 장면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의료인은 환자의 건강이 걸린 일에는 어느 정도의 강압적이 부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격훈련장에서 유난히 군기를 잡는 것이 혹시 모를 총기사고를 예방하려는 목적인 것처럼, 의사에게 한 번의 실수는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
 
진료 과정에서 실수를 통해 배운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으므로 항상 긴장해야 한다. 특히 흉부외과처럼 조금의 실수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과에서는 완벽주의와 까칠함이 오히려 덕목이 될 수 있다. 극중에서 레지던트에게 사회사업실에 전화하라고 시켜놓고, 혹시 애먹을까 봐 자기가 연락을 해서 무심히 핸드폰을 건네주는 김준완 교수의 ‘츤데레’에 많은 사람이 쏙 빠져드는 것 같다.
 
일반외과 이익준 교수(조정석 분)
별명은 깨방정 천재. 못 하는 것이 없는 만능 의사교수. 노는 자리에도 빠짐없이 자리하고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다. 언제나 유쾌해서 주위를 좋은 분위기로 이끄는 분위기 메이커다. 하지만 진료에서는 이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진심으로 환자의 건강을 생각하고, 수술 방 스태프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잊지 않는 모습은 진정한 프로페셔널 모습을 보여준다.
 
환자들은 의사를 만날 때 의사가 어떤 말을 할지 긴장하게 된다. 정기 건강진단검사를 하고 결과를 들을 때도 긴장이 되는데, 간담췌외과 의사 앞에서는 몹시 불안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익준 교수처럼 유머러스하고, 긴장을 풀어주는 의사를 만난 환자는 참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신경외과 채송화 교수 (전미도 분) 
별명은 팔방미인. 작은 체구이지만 뿜어 나오는 카리스마에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능력은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을 만하다. 이 세상에 채송화 교수 같은 의사가 많아진다면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해지겠다 생각이 들었다.
 
산부인과 양석형 교수 (김대명 분)
별명은 마마보이. 전혀 속을 알 수 없는 아웃사이더 외톨이다. 직원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속을 알 수 없는 뚱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환자 앞에서는 그만큼 프로페셔널도 없다. 습관성 유산으로 인해 절망하는 산모에게 “그것은 병이 아니고 산모님의 잘못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치료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의사라기보다 환자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한명의 사람으로 보인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의사 5명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각자의 표현방식으로 환자들에게 진심을 전달하고 있다. 환자의 형편과 성격이 제각각인 것처럼, 의사도 여러 유형이 필요한 것 같다. [사진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의사 5명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각자의 표현방식으로 환자들에게 진심을 전달하고 있다. 환자의 형편과 성격이 제각각인 것처럼, 의사도 여러 유형이 필요한 것 같다. [사진 tvN]

 
드라마에서 의사들의 실력은 모두 출중하다. 환자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도 다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5명의 친구들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각자의 표현방식으로 환자들에게 진심을 전달하고 있다. 만약에 5명 중 한명이 당신의 주치의라면 어떤 의사를 선택하겠는가? 환자의 형편과 성격이 제각각인 것처럼, 의사도 위의 5명이 다 필요한 것 같다. 
 
➀ 마음에 상처받은 환자를 위로하고 감싸주는 의사
➁ 심장이 안 좋은데도 금연을 하지 않는 환자를 따끔하게 충고해서 빨리 낫도록 돕는 의사
➂ 불안해하는 환자를 유머러스한 대화로 긴장을 풀어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의사
➃ 궁금한 것이 많은 환자에게는 단호하고 정확한 의학 정보를 전해주는 의사
➄ 큰 충격에 절망하고 자책하는 환자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해주는 의사
 
환자의 상황에 따라 바로바로 변할 수 있는 팔색조 의사가 필요하다.
 
재활의학과 의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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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욱 유재욱 재활의학과 의사 필진

[유재욱의 심야병원] 작은 간판이 달린 아담한 병원이 있다. 간판이 너무 작아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정도다. 이 병원의 진료는 오후 7시가 되면 모두 끝나지만, 닥터 유의 진료는 이때부터 새롭게 시작된다. 모두가 퇴근한 텅 빈 병원에 홀로 남아 첼로를 켜면서, 오늘 만났던 환자들이 한 명 한 명 떠올린다. ‘내가 과연 그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한 것일까?’ ‘혹시 더 나은 치료법은 없었을까?’ 바둑을 복기하듯 환자에게 했던 진료를 하나하나 복기해 나간다. 셜록 홈스가 미제사건 해결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영감을 얻었던 것처럼, 닥터 유의 심야병원은 첼로 연주와 함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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