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정은 건재' 딱 맞힌 정부···방위비 협상은 더 불리해졌다, 왜

중앙일보 2020.05.05 05: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취를 감춘 뒤 미국이 한반도에 출격 시킨 RC-12X 정찰기. 통신 감청에 특화돼 북한 지역 움직임을 살피는 임무를 맡는다. [사진 노스롭 그루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취를 감춘 뒤 미국이 한반도에 출격 시킨 RC-12X 정찰기. 통신 감청에 특화돼 북한 지역 움직임을 살피는 임무를 맡는다. [사진 노스롭 그루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0일간의 잠적과 3일 중부전선 감시초소(GP)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이 한·미 방위비분담협정(SMA) 협상 과정에서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한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미국에 대한 한국의 정보 의존도가 다시 한번 확인되면서 미국의 분담금 증액 압박이 거세질 수 있어서다.  
 
김 위원장 신병 이상설로 세계가 들썩이던 지난 20일 동안 정부는 일관되게 "특이 동향이 없다"며 신중하게 대응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김 위원장이 북한 군사력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논란 초기부터 김 위원장이 원산에 머물고 있다는 구체적 위치 정보까지 공개했다.  
 
정부의 이런 정확한 판단은 상당 부분 미국의 위성 정보 및 전략 자산에 의존하고 있다. 실제 정보 당국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당시에도 국가정보원은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도움을 받아 사태를 파악했다고 한다. 
 
2008년 당시 국가정보원 고위 관계자는 "휴민트(인적 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정보의 소스는 아무래도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김정은 잠적 사태 당시 (김 위원장 전용 열차로 추정되는) 기차의 정차 등 영상 정보나 통신량 등 신호 정보는 대부분 미국에 의존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더 많은 비용을 내기로 합의했다"며 또 한 번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더 많은 비용을 내기로 합의했다"며 또 한 번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AP=뉴시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4일 중앙일보에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여러 군사 능력 중 하나가 군사 정보"라며 "이번에 정부가 김 위원장의 동태에 대한 정보를 종합할 때 정찰위성 정보 등 핵심 정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미국이 이를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도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은 미국에 대한 한국의 정보 및 군사 의존도를 보여준 안보 이슈"라며 "때문에 할 말이 더 많아질 것이고 향후 협상 과정에서 한국에 양보할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고 우려했다.
 
미국 공군 정찰기 RC-135W가 지난 1일 수도권 상공을 비행했다. 미 공군의 주력 통신감청 정찰기인 RC-135W는 미사일 발사 전 지상 원격 계측장비에서 발신하는 텔레메트리 신호를 포착하고, 탄두 궤적 등을 분석하는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미군이 RC-135W를 출격시킨 것은 최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둘러싸고 북한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에어크래프트 스폿 트위터 캡처]

미국 공군 정찰기 RC-135W가 지난 1일 수도권 상공을 비행했다. 미 공군의 주력 통신감청 정찰기인 RC-135W는 미사일 발사 전 지상 원격 계측장비에서 발신하는 텔레메트리 신호를 포착하고, 탄두 궤적 등을 분석하는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미군이 RC-135W를 출격시킨 것은 최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둘러싸고 북한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에어크래프트 스폿 트위터 캡처]

 
이미 공개석상에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수차례 기정사실화 하는 전략을 써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한창 잠행 중이던 지난달 30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더 많은 비용을 내기로 합의했다"며 또 한 번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조너선 호프먼 미 국방부 대변인도 김 위원장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인 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이 한국은 미국의 방위 활동에 대해 좀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할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고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우회 압박했다. '13% 수준의 증액이 최상'이라는 한국에 추가 증액을 요구한 것이다.
 
특히 이번 김 위원장 잠행 과정에서 미국이 집중적으로 투입한 각종 정보 자산 전개비용은 미국이 이번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에 부담을 요구하기 시작한 새로운 항목이다. 미국 측은 지난해 제11차 SMA 협상부터 전통적인 3개 항목(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 외에 한반도 순환배치 비용 등 역외부담 요구와 한국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첨단 장비 등 보완전력 관련 기여를 요구했다. 미국으로선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할 명분이 생긴 셈이다.
 
김기호 경기대 정치학과 교수도 "이번 김정은 잠적 사태 당시 미국은 최신 전략자산을 모두 전개하는 등 관련 정보 수집에 많은 힘을 쏟았다"며 "국제정세는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만큼 미국이 (비용 분담 등) 이에 대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