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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구 생활치료센터서 치른 2개월 ‘코로나 사투’

중앙일보 2020.05.05 00:17 종합 25면 지면보기
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 전 생활치료센터장

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 전 생활치료센터장

대구시가 코로나19 경증 환자 격리 치료를 위해 3월 초에 도입했던 생활치료센터 운영을 4월 30일 종료했다. 이 소식을 들으면서 대구의 두 생활치료센터 의료지원단에 자원해 센터장으로 근무한 필자는 만감이 교차했다.
 

16개 센터, 경증환자 수용해 치료
의료인·봉사자 혼연일체로 헌신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감염자가 나오면 진단되는 순서대로 음압 병실에 입원시켜 치료했다. 하지만 2월 하순에 확진자가 급증하자 치료 병상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환자는 집에서 스스로 격리하며 입원을 기다려야 했는데 이들 중 갑자기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2월 말 당시 확진자 5378명 중 병실 부족으로 2200명 이상이 자가격리 상태였고 이들의 불안감은 극도에 달했다.
 
당시 당국의 대응은 위험이 높은 중증 환자를 빨리 분류하고 이들에게 치료 역량을 집중해 사망률을 낮추는 쪽으로 바뀌어야 했다. 일부 확진자는 격리를 거부하고 도심을 활보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들을 격리해 지역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절실해졌다.
 
결국 확진자 중 경증 환자를 격리해 생활과 의료 지원을 해줄 생활치료센터가 필요해졌다. 고위험군이나 증상이 심한 환자는 병원으로 후송하고, 이미 병원에 입원 중이던 경증 환자도 이 센터로 재이송한다는 개념이었다.
 
정부의 방침 발표 하루 만인 3월 2일 교육부 산하 대구 중앙교육연수원에 첫 생활치료센터가 설치됐다. 이후 대구·경북 환자를 위해 모두 16곳에 센터를 설치해 운영했다. 센터로 쓸 장소가 부족하자 경북대 학생들은 기꺼이 기숙사 600실을 비워줘 참 고마웠다.
 
센터가 속속 문을 열자 필요 인력과 물자가 도착하기도 전에 전국에서 파견된 119 소방차들은 끊임없이 환자를 실어 날랐다. 대부분의 환자는 집에서 대기하다 입소했다. 집에서 극도의 공포감에 시달리던 경증 환자들은 피난민 차림에 큰 가방을 들고 입소했다. 필자는 3월 초 어두운 밤에 대학 기숙사로 한꺼번에 몰려들던 300명 이상의 입소자 행렬을 잊을 수 없다. 수용소가 연상됐다.
 
봉사자들의 방역 교육과 함께 환자 진료를 동시에 해야 했다. 경북대병원과 전국 종합병원 의료진들이 진료 전반을 책임졌다. 의료진은 이들의 응급처치와 건강 상태를 재평가했다.
 
경증으로 입소한 환자 중 일부는 심각한 질환이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었다.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은 환자는 조금만 늦었다면 생명을 잃었을 텐데 센터가 진가를 발휘한 경우다. 환자들은 의사를 만나니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대구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은 하나같이 전쟁터로 향하는 비장함으로 가족들과 눈물의 이별을 했다고 한다. 필자는 환자 중에 신천지 신도 비율이 높은 점에 착안해 “편견을 갖지 말고 환자로 친절하게 대하자”고 당부했다. 의료진·자원봉사자·공무원·군인 모두는 혼연일체로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센터는 빠르게 안정됐다.
 
입소 이후 일주일 동안 증상이 없고 바이러스 검사에서 2회 연속 음성이 나오면 집으로 갈 수 있었다. 3주 만에 75%를 귀가시켰다. 두 달간 16개 생활치료센터에서 3025명이 치료받았고 2957명이 퇴소했다. 남은 경증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다.
 
치료받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시민들의 뒷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 그들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평생을 살며 내 뒤에 국가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느꼈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 주부는 “남겨진 가족들이 격리돼 라면으로 세끼를 때운다”며 자신보다 가족을 보살펴 달라고 사정했다.
 
코로나19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극복 못 할 어려움은 없다는 자신감이 든다. 환자를 돌보면서 필자가 더 위로받았고 감동했다. 어려울 때 대구로 달려와 준 전국의 의료인과 성원해준 국민이 눈물 나게 고맙다.
 
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 전 생활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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