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 “안녕, 좋았던 시절들이여!”

중앙일보 2020.05.05 00:14 종합 24면 지면보기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마침내 오월입니다. 올 오월은 그동안 우리를 짓누르던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에서 한발 물러나게 돼 한층 더 푸르릅니다. 그동안 고생들 많았습니다. 모처럼 정부와 국민이 하나가 돼 치르고 있는 역병과의 싸움입니다. 덕분에 올라간 K 메디컬과 한국의 국격이 자랑스럽습니다.
 

폐허에서 10대 강국 만든 세대
‘꼰대들이 자식에게 주는 충고’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의 몫

그러나 우리는 이 눈부신 오월을 슬프게 맞고 있습니다. 세계 노동절을 앞두고 이천 물류센터에서 참혹하게 숨져간 근로자들. 이들은 대부분 일용노동자들입니다. 이 사고도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에 따른 인재(人災)라는 점에서 또 다른 우리의 민낯을 봅니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 서른여덟 우주의 소멸은 무엇으로도 회복할 길이 없습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살아 있는 자들의 의무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계를 단숨에 성곽시대로 후퇴시켰습니다.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발칸반도에서 성곽시대의 전형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관광지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에 면해 있는데 도시 전체를 마치 거북처럼 두터운 돌로 꽁꽁 둘러쌌습니다. 또한 ‘검은 산’이란 뜻의 험준한 산악 나라 몬테 네그로에는 칼날같이 날카로운 산등성을 따라 성벽들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올라가기도 어려울 듯한 산꼭대기에 어떻게 그토록 거대한 성을 쌓을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그런 예에 속합니다. 그런 성곽을 쌓기 위해 왕조시대 주민들의 숱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토록 두터운 성곽으로 둘러싼 이유는 외적의 침입에 대한 공포가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이러스의 침공을 막으려고 인류는 국경 봉쇄라는 성벽을 쌓고 있습니다. 사람 만나기를 꺼리게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나라 간의 이동이 극도로 억제되는 새로운 세상, 집안으로 숨어 들어가는 폐쇄적 세상에서 산업구조도 획기적인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진보 여당의 압도적 승리와 보수 야당의 궤멸적 참패로 끝난 21대 총선 결과, 대의 정치의 이상인 견제와 균형이 깨졌습니다. 선출된 권력도 견제 세력이 없으면 독선과 독재의 유혹에 빠지기 쉬워집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60%를 넘는 역대급 고공행진을 이어갑니다. 거대 여권에서는 벌써부터 대통령 중임제와 토지공개념 개헌론이 봇물처럼 터져나옵니다. 그러나 투표 이전에 알려졌으면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과 양정숙 비례대표 당선인의 부동산 의혹 등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또한 사전 투표 부정 행위설도 진실이 밝혀져야 합니다. 통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문이 끊이지 않는만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규명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환심을 사려는 퍼주기식 포퓰리즘으로 파산 상태에 빠진 남미의 몇 나라들이 떠오릅니다.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게됐지만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주무 장관도 반대한 것을 밀어붙이고는 ‘자발적 기부’를 받겠다고 합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기부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주고는 달라고 하니, ‘관제 기부’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정부가 국민의 도덕성을 시험하는 듯 합니다.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는 187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의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이 나옵니다. 이 시기의 유럽은 순조로운 경제적·기술적 발전과 함께 팽창, 무사태평, 쾌활의 기운이 넘쳐났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항공산업의 발달로 세계는 여행의 일상화라는 인류 사상 초유의 꿈같은 시절을 누렸습니다. 이 시기는 폐허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이끈 한국인에게 특히 좋은 시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좋은 시절을 만들었던 세대들은 이제 좋든 싫든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부모를 봉양한 마지막 세대. 자식에 대한 무한 사랑. 70대 이상의 세대들이 겪었던 전쟁과 가난과 고통을 내 자식은 겪게 하지 않으려 고투했건만, 그들은 우리를 이방인처럼 본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습니다. 그들이 흘겨보는 꼰대들도 60년 전, 목숨을 바쳐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정의감과 가치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에 따라 내려놓으려 하니 물려준 것들을 부디 잘 지켜주기 바랍니다. 제 아버지가 저를 따라주셨듯이 저도 자식을 따르고자 합니다. 도전이 거센 시대, 살기 어렵지요. 그러나 이제 푸념해서는 안됩니다. 응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니까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똑똑한, 똑똑해야만 하는 사랑하는 아들 딸이여.
 
유자효 시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