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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무관객 개막 선언한 전주영화제 "칸도 궁금해할 것"

중앙일보 2020.05.04 19:11
올해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제작자 이준동 대표를 지난달 29일 만났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올해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제작자 이준동 대표를 지난달 29일 만났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행사예요. 평소에는 한국의 독특한 영화제로만 알려져 왔지만, 올해는 어떻게 치러질지 칸영화제 관계자들도 궁금해할 겁니다. 한국 총선을 전 세계가 궁금해한 것처럼요.”

 
올해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오는 28일 무관객 개막한다고 선언한 이준동(63)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국제영화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무관객 개막하는 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최초다.  

28일 개막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영화제작자 이준동 집행위원장

세계 최초 무관객 영화제 개최
"온라인 플랫폼 등 코로나에 최적화
한국 총선 이어 전 세계 궁금해할 것"

 
당초 지난달 30일 개막을 예정했다가 코로나19 여파로 이달 28일로 일정을 미뤘지만 팬데믹 상황이 계속되자, 지난달 28일 “경쟁부문 중심의 비공개 영화제로 전환,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원래라면 오늘이 개막 전야였죠.”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 위원장의 말이다. 
 

형 이창동 영화 등 27년 제작 베테랑 

그는 27년차 영화제작자다. 영화사 나우필름‧파인하우스필름을 이끌며 형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시’ ‘버닝’에 더해 ‘인어공주’ ‘도희야’ ‘생일’ 등 상업영화를 제작해왔다.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남북영화교류특별위원회 위원, 영화나눔협동조합 이사장 등 영화계 대소사에 참여해왔지만,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년처럼만 해도 선방이다 할 판에 이런 강적(코로나19)이 등장했죠. 아쉽지만 코로나에 최적화된 영화제 플랫폼을 준비했다고 자부합니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 포스터 속 이미지는 올해 전주영화제가 예정대로 특별전시와 상영을 진행하는 퍼펫애니메이션 거장 퀘이 형제 감독의 '악어의 거리' 한 장면이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 포스터 속 이미지는 올해 전주영화제가 예정대로 특별전시와 상영을 진행하는 퍼펫애니메이션 거장 퀘이 형제 감독의 '악어의 거리' 한 장면이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올해 전주영화제가 제시한 방식은 파격적이다. 우선 선정을 마친 국제경쟁‧한국경쟁‧한국단편경쟁 등 경쟁 부문 진출작은 28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열흘간 영화제 기간 전주 시내 극장에서 심사위원, 영화감독 및 관계자 등 최소한의 인원이 모여 1회씩 관람하고, 심사를 거쳐 시상한다. 또 상영작 중 제작사 및 감독이 허락한 일부는 일반 관객에게 온라인을 통해 상영 및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한다. 코로나19 안정화 이후엔 올해 초청작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장기 상영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K방역 모범 총선, 영화제로 잇는다

세계 최고 권위 프랑스 칸영화제가 5월 예정이던 개최를 무한정 미루고,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는 아예 취소되는 등의 혼란 속에 표본이 될 만한 방식이다. 이 위원장은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사회가 몇 가지 성공사례를 쌓아가고 있다”면서 “영화제까지 뭘 만들 수 있겠어, 하는 시선 속에 영화와 영화인을 발굴‧지지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총선 이후 한국에 쏠린 관심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을까.
“100%  느낀다. 전주 이후로 예정된 부천‧여성‧부산영화제 등 국고지원 영화제들도 수시로 연락 온다. 지자체와의 협상부터 우리가 어떤 표본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국내 7개 영화제 집행위원장 회의가 두 차례 있었는데 전주가 어떻게 할지 다들 궁금해하더라.”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된 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난 2월 중순부터다. 영화제 측은 “정부가 요구하는 방역 수준보다 더 엄격하게 준비해서 하자”는 쪽이었다. 그러나 전주시 재난 안전대책본부가 반대했다. 이 위원장은 “영화제에 온 외지인들이 영화를 본 뒤 식당, 주점에 가는 과정에서 감염을 걱정하더라”면서 “결국 4월 27일 지금의 형태로 최종 타협을 보고 전주영화제조직위 이사회 논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했다.  
 

관객행사·상영, 온라인 플랫폼 개발

1년 전 전주영화제 모습. 어린이날인 5월 5일 오후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전북 전주시 고사동 영화의 거리가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뉴스1]

1년 전 전주영화제 모습. 어린이날인 5월 5일 오후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전북 전주시 고사동 영화의 거리가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뉴스1]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특히 주목되는 건 온라인 플랫폼이다. 해외 게스트 행사의 온라인 전환은 입국 경로가 제한될 무렵부터 고심해왔다.  
 
어떤 방식의 온라인 플랫폼을 구상 중인가.  
“넓게 봐선 OTT(온라인 스트리밍)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건 양방향 주문형 플랫폼이다. 전 세계 모든 국제영화제가 코로나19 상황에서 온라인을 고려하고 있다. 자존심 높고 고고한 칸영화제조차 생각 안할 수 없다. 그걸 어떻게 설계할지는 누구도 답이 없다. 유럽 쪽 영화 마켓에서 많이 쓰는 ‘페스티벌스코프’(온라인 주문형 영화제 플랫폼)가 있지만 속도가 느리고 접속이 원활하지 않다. 우린 그것조차 없다. IT 강국이지만 이런 경험 자체가 없으니 몇 명까지 동시 접속할지, 접속지역, 과금은 어떻게 할지, 보안 관리까지 해결할 문제가 굉장히 많다. 국내 플랫폼 사업자 등 전문가들과 논의 중이다.”
 
온라인 상영에 대한 창작자들 반응은.  
“올해 선정작이 장‧단편 합쳐 200편 정도 되는데 우리는 한 10% 전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동의한 작품이 상당수 된다. 나머지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전주에 대한 신뢰를 느꼈다. 이렇게라도 상영하게 돼서 고맙다는 감독도 있고.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국내 영화 관계자들에 심사위원(내주 중 공개)을 부탁했는데 기꺼이 동참해줬다.”
 

영진위 제 역할 못해…비상기금 더 풀어야

지난해 제20회 전주영화제에서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가 개최한 '2019 스타워즈 데이' 행진이다. 사진은 '2019 스타워즈 데이'에서 스타워즈 공식 팬클럽인 501군단이 전주한옥마을의 군중 속을 지나가는 모습.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지난해 제20회 전주영화제에서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가 개최한 '2019 스타워즈 데이' 행진이다. 사진은 '2019 스타워즈 데이'에서 스타워즈 공식 팬클럽인 501군단이 전주한옥마을의 군중 속을 지나가는 모습.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예산 압박도 있다. 한 달여 연기된 일정에 대한 인건비, 온라인 전환 비용 등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올해 예산 약 52억원 중 전주시비 30억원은 다 사용했다”면서 “나머지는 영진위 영화발전기금 지원과 협찬사, 티켓 판매인데 행사가 이렇게 되면서 협찬이나 티켓팅은 불가능해졌다. 영화계가 어려울 때 쓰려고 모은 영화발전기금(영화관 티켓값의 3%)을 이럴 때 더 풀어야 하는데 영진위가 그런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답답함도 드러냈다.  
 
올해 전주영화제는 영화계 거장의 경험과 철학을 관객과 나누는 ‘마스터클래스’ 부문에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 감독을 내정했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더 차일드’(2005) 등 유럽의 사회파 영화 거장이다. 이번에 내한했다면 역대 최초다. 그러나 나란히 60대 고령인 이들의 행로를 코로나19가 가로막았다. 이 위원장은 “당연히 아쉽다”면서 다만 “마스터클래스는 영화제를 준비하며 조금 더 챙겨보려 한다”고 여지를 남겼다. “다르덴 형제 같은 거장들을 온라인으로 모시는 게 과연 좋을지, 여러 방식을 고심하고 있다”면서 “영화제 세부 사항에 대해 곧 발표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벨기에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이 지난해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 아메드'로 감독상 수상 당시 모습. 오른쪽부터 형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이다. [AFP=연합뉴스]

벨기에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이 지난해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 아메드'로 감독상 수상 당시 모습. 오른쪽부터 형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이다. [AFP=연합뉴스]

선배 제작자들이 좋은 역할 해야 

“한국영화판이 좋은 전통이 있어요. 자기 영화에 대한 욕심도 공고하지만, 한국사회,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이 기본적으로 다 있죠. 우리 같은 선배 제작자들이 자질구레한 것까지 좋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죠.”

 
그는 이번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자리를 어려운 시점에 맡았다. 지난해 영화제 측이 새 집행위원장에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를 추천했지만 대다수 지역 인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이를 거부했고, 그에 반발해 김 수석 프로그래머 등 7년간 일해온 프로그래머 3인이 전원 사퇴해 영화제에 공백이 생겼었다.   
 

상황 수습하러 집행위원장 맡았죠 

이 위원장은 “정치 압박이면 같이 싸워야 하는데 김 수석 프로그래머한테 직접 들어보니 그건 아니었다”면서 “전주영화제가 재단법인이어서 이사회에 모든 결정권이 있다. 프로그래머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게 베스트지만 영화제가 그 카드를 놓친 것”이라 돌이켰다. “어찌 됐건 전주영화제가 한국영화계와 전주시 자산인데 살려야 하지 않겠나. 상황을 수습하러 들어왔다”고 했다.  
 
영화제의 의미를 묻자 그는 “나는 시네필이 아니고 상업영화 하는 사람”이라고 운을 뗐다. “영화는 모르는 인간이지만 영화제는 좀 안다”며 사무실 벽에 붙은 형의 영화 ‘밀양’ ‘시’ 등 포스터를 가리켰다. 칸영화제에 초청돼 각각 여우주연상‧각본상을 받은 작품이다.

 

칸, 할리우드 스타 버선발 쫓아오는 비결…  

2004년 제5회 전주영화제 단편 '인플루엔자' Q&A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그의 단편 일부를 골목 상영할 계획도 세웠다고 귀띔했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2004년 제5회 전주영화제 단편 '인플루엔자' Q&A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그의 단편 일부를 골목 상영할 계획도 세웠다고 귀띔했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영화제란 두 가지 기능이 있어요. 좋은 영화 발굴하고 지지하는 기능, 또 축제죠. 초대한 손님이 정말 잘 환대 받았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해요. 그게 영화제를 키우기도 하죠.” 
 
그는 “3대 영화제 중 칸영화제가 압도적 1강이 된” 이유로 “초대손님이 레드카펫‧행사에서 진짜 큰 환대를 받는 느낌을 준 것. 할리우드 스타들이 칸에서 불러주면 버선발로 쫓아오게 만든 것”이라 꼽았다. 
 

'시네마천국' 같은 골목 상영 구상하죠 

전주영화제에선 “지역 시민들과 잔치하듯 레드카펫 행사를 하고 싶다”면서 “대안 영화, 새로운 영화, 질문하는 영화를 발굴하다 보니 영화제 성격이 대중적이진 않은” 데 대해선 깜짝 골목 상영으로 장벽을 허물고 싶다고 했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작은 광장에서 영화를 틀 듯이요. 옛날 봉준호 감독 단편 등 우리가 판권을 가지고 있거나 판권 상관없는 영화들을 바깥에서 무료로 틀어놓으려 해요. 극장에서 보면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지만 골목에선 무장해제 상태로 즐길 수 있잖아요. 전주 시민들도 좀 더 우리 동네 영화제라고 느끼도록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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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온라인 상영에 대해 “이미 동의한 작품이 100편 가량”이란 표기를 “이미 동의한 작품이 상당수”로 5월 6일 바로잡습니다. 영화제 측은 '100편 가량'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영화 편수라며 여전히 해당 감독 및 제작사와 세부 사항을 협의 중이고 아직 완전히 동의 받은 작품 편수라고 특정하기 어렵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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