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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저항하다 옥살이···56년 걸린 74세 할머니의 '위대한 미투'

중앙일보 2020.05.04 16:39
부산지법 301호 법정 내부모습. 중앙포토

부산지법 301호 법정 내부모습. 중앙포토

성폭력을 시도하려던 가해자 혀를 깨물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여성이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한다. 성폭력 피해자를 가해자로 규정해 온 한국 사회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고발하려는 취지다.  
 

74세 최말자 씨 “미투 운동 보면서 재심 결심”
1964년 성폭력 시도한 남성 혀 깨물어 1.5㎝ 절단
중상해죄로 6개월간 옥살이…가해자는 집행유예
“가부장적 사회에서 피해입은 여성에게 용기 주고파”

4일 부산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최말자(74)씨는 오는 6일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한다. 최씨와 변호인단, 부산여성의전화는 이날 오후 1시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도 갖는다. 부산여성의전화 관계자는 “피해자인데 가해자로 오해받고 살아왔던 56년간의 삶의 소회를 밝히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재심청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최씨는 18살이던 1964년 5월 성폭행을 시도하던 당시 21살 노모 씨 혀를 깨물어 1.5㎝가량 자른 혐의(중상해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이 진행되던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최씨는 당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에서도 2차 피해가 이어졌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최 씨에게 “처음부터 피고에게 호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 “피고와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는가”라고 되묻는 등 심각한 2차 가해를 했다. 당시 학계에서도 법원의 판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반면 성폭력을 시도한 노씨는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성폭력을 시도한 죗값은 받지 않았다.  
 
최씨는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가 시작한 미투 운동에 용기를 얻어 그해 12월 부산여성의전화의 문을 두드렸다. 2년 넘게 상담을 한 끝에 최씨는 올해 재심 청구를 결심했다. 부산여성의전화 관계자는 “초졸이었던 최씨가 만학도의 길을 걸어 지난해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를 졸업했다”며 “공부를 하면서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미투 운동을 보면서 재심 청구를 결심했다.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큰 피해를 입고 살아온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최씨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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