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인 담배로 불""결국 보상금"···이천 유족들, 댓글에 운다

중앙일보 2020.05.04 14:24
3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긴 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3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긴 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고인들 명예, 명예를 꼭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한 유가족은 4일 입술을 꾹 깨물고 이렇게 말했다. 화재 사건이 발생한지 엿새째 되는 4일에도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이천 서희청소년문화센터 곳곳에서는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족들의 심리 지원을 맡은 한 상담사는 한숨을 쉬며 “가족의 비통한 죽음만큼이나 이분들을 힘들게 하는 건 악성 댓글과 가짜뉴스”라며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중국인 탓' 비하 댓글…"너무 억울" 

전날(3일) 정세균 국무총리·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정부 측 인사의 방문에 유족들은 “추측성 댓글, 비하 댓글로 너무 상처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화재 사고로 사망한 중국인 유족은 “우리는 동생 잃은 것도 가슴이 아픈데 댓글이 어떻게 올라오는지 아나”라며 “중국 사람이 담배꽁초(를 버려서) 그렇다고 하는, 가슴 타들어 가는 나쁜 말을 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중국인 유족은 “담배 피우지도 않은 동생이 담배꽁초 버려서 불났다고들 한다”며 “이렇게 너무 억울하게 돌아간(사망한) 것도 억울한데,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왜 그렇게(까지) 하나”라고 결국 흐느껴 울었다.  
 
4일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 등이 방문한 자리에서도 한 유족은 “사망자들을 모두 기술도 없는 일용직처럼 묘사하며 비하하는 경우도 많더라”라며 억울해했다. 그는 “(사고로 사망한) 오빠는 20살 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64살까지, 장장 40년 이상을 공사 현장 기술자로 일했던 사람”이라며 “자식이 아직 결혼도 안 하고 돈을 더 벌어야 해서 열심히 일만 했던 사람인데, 마치 아무런 능력도 없는 사람처럼 (비하)하는 말들이 억울하다”고 울먹였다.  
 

근거 없는 화재 원인 가짜뉴스도

3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긴 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3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긴 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이 외에도 유족 대표단을 깎아내리거나 ‘정치적 집단’으로만 몰고 가는 댓글들이 많다.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며 유족 대표단을 헐뜯거나, 결국 보상금 때문이라고 조롱하는 식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유족은 “인터넷을 볼 때마다 너무 무섭고 소름이 끼친다”라며 “하나하나 다 만나서 ‘아니다’라고 밝히고 싶을 정도로 억울하고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비하·조롱 댓글뿐 아니라 화재 원인과 관련한 근거 없는 가짜뉴스들도 유족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한 관계자는 “이런 뉴스를 믿은 유족들은 분노하다 힘이 빠지고, 반복되다 보면 진짜 중요한 화재 원인은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될 수 있다”며 “지금 유족들은 소문 하나하나에 예민한데, 제대로 확인된 내용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찰은 희생자 등을 향한 사이버상 악성 게시물에 대해 엄정 수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피해자나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악성 댓글·게시글은 삭제 조치하고, 사이버수사대에서 직접 지휘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경찰, 공사 업체 추가 압수수색  

3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과학수사 요원들이 유해와 유류물을 찾기 위한 2차 정밀 수색을 하고 있다. 뉴스1

3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과학수사 요원들이 유해와 유류물을 찾기 위한 2차 정밀 수색을 하고 있다. 뉴스1

한편 이날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이천 화재 수사본부는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의 시공사 현장사무소와 공사 관련 업체 사무실을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공사 설계와 시공 관련 자료를 확보, 관련법 위반 사항은 없는지 정밀하게 살필 예정이다.
 
아직 정확한 사고 원인은 정밀 감식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 중이다. 다만 소방당국은 지하 2층 화물용 엘리베이터 부근에서 우레탄폼 작업을 하던 중 원인 미상의 발화가 생겨 폭발, 불이 번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천=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