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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28화. 금성

중앙일보 2020.05.04 09:22
때로는 희망을, 때로는 재앙을 부르는 별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며 희망과 때로는 불길한 재앙을 전하는 금성.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며 희망과 때로는 불길한 재앙을 전하는 금성.

지구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밝아지며 모양은 초승달처럼 보인다.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지구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밝아지며 모양은 초승달처럼 보인다.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오랜 옛날, 한 여신이 저승으로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옷에 빛나는 광채를 걸치고 저승의 문을 들어섰죠. 하지만 저승에는 신성한 계율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저승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었죠. 저승의 문을 하나 들어설 때마다 그는 자신의 몸에 걸친 물건을 빼앗깁니다. 신의 광채를, 아름다운 옷을….
 
여신은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마지막 문을 들어설 때는 타고난 미모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남게 되었죠. 저승의 신과 마주한 여신. 저승의 신은 아무것도 가져와서는 안 되는 저승의 계율을 생각하지 않고, 온갖 물건으로 꾸미고 온 것을 비난했습니다. 신의 힘을 잃은 채 심판을 받은 여신은 죽어 저승에 남게 되었죠. 여신의 이름은 인안나. 바빌론에서는 이슈타르라고 불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미의 여신이자 금성, 샛별의 여신이었습니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신비한 질서를 떠올렸습니다. 세상에는 태양과 달, 그 밖에도 무수한 별이 존재했죠. 대다수 별은 정해진 형태로 움직였지만, 이따금 그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별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금성은 특이한 별이었죠. 태양이 뜨기 전, 또는 태양이 진 직후에야 나타나는 신비한 별이었고, 한편으론 태양과 달 다음으로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었죠. 새벽을 밝히며 아침을 칭송하는 듯한 별. 고대인들이 ‘미의 여신’의 상징으로 삼은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동시에 금성은 신비하고도 불길한 별이었습니다. 달처럼 차고 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여느 별과는 다르게 움직였던 것이죠. 사람들은 하늘에서 금성이 떠오르는 위치를 그려보았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5개의 모서리를 가진 별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금성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오망성, 또는 오각성이라 불리는 이 그림을 마술의 상징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묘한 움직임 때문이었을까요? 기독교에선 금성을 타락 천사인 루시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태양보다 먼저, 어떤 때는 태양 다음에 나타나면서 그 밝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양에 도전하는 듯한 별. 그리고 하늘의 질서를 거부하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별이었기 때문이겠지요. 동양에선 태백이란 이름을 가진 금성은 항상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전후하여 나타났지만, 이따금 낮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불길한 징후라고 생각했죠.
 
『한서 천문지』에는 “태백성이 낮에 하늘을 지나가면 천하에 혁명이 일어나서 백성이 왕을 바꾼다. 이에 기강이 흩어지고 백성들이 흩어져 유랑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래 해를 따르며 저녁이나 새벽에 나타나야 할 금성이 낮에 나오는 것은 태양에 도전하는 것이며, 왕의 권위가 위험하다는 말이죠. 나아가 살벌(殺伐·죽고 벌하는 것)을 주관하는 금성이 낮에 당당하게 나타난 것은 천하에 변란이 일어나는 징조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조선에선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을 앞두고 금성이 낮에 나타났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역병의 전조로 나타난 일도 적지 않았죠.
 
금성이 불길한 존재이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 성경 속에서 금성은 때때로 대천사 미카엘이나 구세주인 예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니까요.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인안나는 금성이자 미의 여신이었지만, 동시에 세상에 탄생을 가져오는 출산의 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인안나가 저승에 갔을 때 세상에는 죽음만이 존재했다고 하죠.
 
금성이 새벽에 나타날 때는 계명성(啓明星)이라 불립니다. ‘밝음을 알리는 별’, 우리말로는 샛별이라 불리는 그 이름에는 희망이 함께 담겨 있죠. 때문에『반지의 제왕』을 쓴 J R R 톨킨은 금성이 고대의 신비한 보석 실마릴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하늘로 올라간 보석이 사람들에게 빛을 내려준다는 뜻에서 말이죠. 아름답고 신비로운 금성.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며 때로는 희망을, 때로는 불길한 재앙을 전하는 별. 어쩌면 이 별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반영하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4월 말부터 5월 초에는 밤하늘 높이 매우 밝게 빛나는 금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재앙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지금 금성은 여러분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어떤 때에도 금성은 밝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지켜주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금성이 또렷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밤하늘을 바라보며 신비한 전설을 즐겨보라는 얘기일지도 모릅니다.
 
 
 
 
 
글=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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