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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에게 "신던 양말 벗어줘"···대학 교직원 '수상한 실험'

중앙일보 2020.05.04 05:00
대학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A씨 제공

대학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A씨 제공

“학생, 신고 있는 양말 좀 벗어줄 수 있나요?”

 
지난달 22일 서울의 한 대학에서 학생 A씨(22)에게 교직원 B씨가 다가가 물었다. 교내 부서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로 함께 일을 한 지 3일째 된 날이었다. 교직원 B씨는 “모 대학교에서 섬유 관련 실험을 하고있다”며 “양말을 벗어주면 새 양말을 주겠다”고 했다. “10시간 이상 신던 양말이 필요하니 퇴근 후에 달라”고도 했다.
 
어떤 연구인지 묻자 B씨는 ‘모 대학의 연구’라 하다 ‘지인의 개인사업’이라며 말을 바꿨다.불안해진  A씨는 같은 경험을 한 학생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SNS에 글을 올렸다. A씨는 “여학생의 양말을 뺏거나 사들여 변태 행위를 벌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불안했다”고 했다.
 
A씨가 SNS에 글을 올리자 제보가 쏟아졌다.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여학생은 총 12명. 같은 대학에서 단정한 차림의 남성이 연구 목적으로 흰 양말을 요구했다는 점이 동일했다.
 

2015년부터 ‘양말 연구’…과방 찾아와 요구하기도

이 대학 익명 커뮤니티에선 교내·외에서 양말을 이용한 성희롱·추행 당사자를 찾는다는 글이 인기글로 올라왔다. 제보에 따르면 신원 미상의 남성이 2015년경부터 교내에서 여학생들에게 양말을 요구했다.
 
12명의 제보자들은 교내 열람실, 자료실과 과방 등 학교 곳곳에서 양말을 요구하는 남성을 만났다고 주장한다. 해당 교직원의 인상착의와 같다고 진술한 사람은 5명이다. 나머지는 마스크를 쓰고 있거나 생김새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 제보자는 “남성이 과방으로까지 따라 들어와서 양말을 돈 주고 사겠다고 말했다”며 “방에 혼자 있는 상황이라 해코지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벗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사업계획서엔 ‘고품질의 오래가는 양말’

B씨가 보낸 양말 사업계획서. 대표이름과 회사명은 삭제했다. 회사명이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B씨는 "임시로 만들어 둔 것이라 검색해도 뜨지 않는다"고 답했다. A씨 제공

B씨가 보낸 양말 사업계획서. 대표이름과 회사명은 삭제했다. 회사명이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B씨는 "임시로 만들어 둔 것이라 검색해도 뜨지 않는다"고 답했다. A씨 제공

학생 A씨가 어떤 연구인지 계속 묻자 B씨는 A4용지 한장 분량의 사업계획서를 보냈다. 여기엔 ‘고품질의 오래가는 양말’이라고 적힌 사업목표와 함께 ‘잘 닳는 곳을 두텁게 만들면?, 친환경 소재로 냄새를 줄여주는 제품 생산’이라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A씨는 “양말 사업을 준비한다던 B씨의 지인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구에 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며 “연구에 대한 내용을 아느냐는 질문엔 대답을 회피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B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말부터 지인과 함께 양말사업 구상을 했고 교내 학생들 5명 내외에게 양말을 받았다. 억지로 뺏은 것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지 않냐”고 답했다. 또 “사업계획에 대해 지인이 대답을 회피한 것은 교직원의 신분으로 겸직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난처해질까 봐 그랬던 것”이라며 “해당 학생에 대해선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생각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변호사, “법적 처벌 대상 아냐” 

A씨는 B씨와의 통화녹음본과 증언들을 모아 경찰을 찾아갔지만 법적 처벌이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경찰관계자는 “몇 년 전 양말을 이용한 비슷한 사건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어 경범죄를 적용해 과태료 정도는 물 수 있다. 하지만 성범죄로 처리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성범죄 전문 채다은 변호사도 “어디에 침입해서 양말을 훔쳤다면 모르지만 해당 사건은 성범죄로 보기 어려워 처벌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2년 전 여학생의 양말을 빼앗거나 구입해 변태행각을 벌인 남성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지만 이번 사건은 그와 다르다는 것이다. 한편 이 대학 관계자는 "해당 사건이 학생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며 "확인 후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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