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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180석 가진 대통령이 야당 무시하면 독재자 된다

중앙일보 2020.05.04 00:38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문재인 대통령은 참 운이 좋은 정치인이다. 3년 전 대선 때는 탄핵된 전직 대통령, 이번 총선에서는 탄핵 정권의 총리와 대결했다. 어떤 가치도 제시하지 못한 유령집단 야당과의 싸움이었다. 나의 실력과 무관하게 질래야 질 수 없었다. 집권 후반기의 정해진 경로인 레임덕 대신 강력한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했다.
 

집권 3년 이념 치중…정책 무리수
민생 빈사 상태, 기업 제자리걸음
능력 부족 인정, 야당 협조 구해야
위기 속 한국 소프트 파워 키우길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힘들어도 나의 실체와 직면해야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있다. 나의 능력, 지지자의 열광이 한바탕의 꿈일 수 있다고 의심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진리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한 데카르트의 구도적 자세가 요구된다. 180석은 제발 야당 탓하지 말고 성과를 내달라는 국민의 청구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달리는 아마추어리즘을 수정하지 않으면 나라도, 정권도 주저앉는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3년 동안 비현실적 이념에 치우쳐 좌충우돌한 돈키호테였다. 선의에서 출발한 소득주도 성장과 과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민생을 빈사상태로 몰아넣었다. 탈원전 정책은 비현실적 몽상임이 드러났다.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뒷받침해야 할 규제개혁은 작동하지 않았다. 공정의 가치를 희화화한 조국을 검찰 개혁의 전위에 세웠고, 공수처는 3권분립을 위협하고 있다. 공감능력과 이타성이 부족한 갈라파고스 야당을 만나 총선에서 이겼을 뿐이다.
 
펄럭이는 혁명의 깃발을 들고 아스팔트 위에서 청춘을 보냈던 정권 핵심 586 부대는 살아 꿈틀거리는 현실의 세계에서 실사구시의 능력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다. 잘못한 게 없다면 고쳐서 새로 시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최초의 근대인’ 데카르트는 가장 확실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를 찾아 나선 인물이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악령에 사로잡힌 환각의 결과일 수 있다는 극단적 의심까지 했다. 현대 신경생리학은 이 ‘의심의 끝판왕’에게 명쾌한 팩트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뇌에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각각의 신경세포는 1000개가 넘는 다른 신경세포들과 관계를 맺어 100조 개가 넘는 신경접속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감각경험은 이렇게 만들어진 신경회로 안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사건’에 불과하다.
 
이젠 ‘나의 의심’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는 신(神)이라고 선언한 데카르트의 권위조차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전기적 사건’에 의존해 감각경험을 할 수 밖에 없는 위태로운 인간이 “나만 정의롭고, 나만 옳다”는 비타협적 확신을 갖는 것은 위험한 상태가 아닐까. 나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타인과 연결돼 그들의 판단을 경청하는 열린 행위는 서로에게 이롭고, 합리적인 것이다. 압도적 승리로 자기확신이 몇 배로 강해졌을 집권세력이 가져야 할 통합적 자세다.
 
그런데 통합의 중심이 돼야 할 문 대통령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인물은 바로 문재인 자신이다. 막스 웨버의 분류법을 적용하면 그는 신념윤리가 예외적으로 강한 사람이다. 선의(善意)와 원칙을 중시한다. 그는 3년 전 방송사의 대선주자 국민면접 때 “착함을 평생 동안 하나의 원칙처럼 유지하면서 성공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대단히 강한 것이죠”라고 한 사람이다.
 
반면에 어떻게든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정치력을 발휘하는 책임윤리는 약하다. 성직자나 시민운동가라면 몰라도 정치인으로서는 자격미달이다. 하지만 탄핵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국민은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고, 가장 비정치적인 문재인을 리더십의 정점에 세웠다. 최소한 의도적인 악행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이 결정이 또 다른 비극의 출발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남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는 폭력성은 권력 작용의 본질이다. 그래서 권력을 도구로 사용하는 정치인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야만 용서받을 수 있다. 때론 거룩한 원칙을 접고 악마와도 거래해야 한다. 미국 노예해방을 이끈 링컨이 걸었던 길이다.
 
문재인은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독점한 정의는 나만의 감각경험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 있다. 거친  반대가 거슬리더라도 끈질기게 야당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내 진영의 집단사고에 가려 볼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국정운영은 보수적 해법과 진보적 해법을 모두 필요로 한다. 안보와 경제는 보수가 경험도 많고 신중하게 대처할 수 있다. 180석을 가진 대통령이 이걸 무시하면 독재자가 된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영원한 모델이었던 서구가 거꾸로 우리를 배우고 있다. 진정한 선진국이 될 기회다. 집권세력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야당·보수와 손잡아야 한다.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과감한 조치, 사회적 약자의 보호가 절실하다. ‘기후깡패’의 오명을 벗고 녹생성장으로 기후대응에 앞장서야 한다. 전 세계의 인재와 기술, 자본이 몰려오는 매력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그러려면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한 통합의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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