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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이 간다] 검찰 내부 주류 변화…또 다른 정치판으로 번질 우려

중앙일보 2020.05.04 00:34 종합 23면 지면보기

선거사범 수사 어떻게 되나

지난주 있었던 고기영 법무부 차관의 발탁은 단순히 고위급 인사라는 의미를 넘어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검찰권 행사와 운용을 둘러싼 내부의 세력 다툼이 본격화됐다는 관측이 가능해진 것이다. 광주가 고향인 그의 등장은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에서 정치권력의 신임을 독차지해오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견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출신의 한 인사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이 중앙지검장에겐 다소 부담스런 인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임 법무차관이 수사 조율 가능성
당선자 120~130명 조사대상 될 듯
여당 의원 많아 정치적 갈등 우려도
사전투표 조작설 “통상 절차 처리”

물론 전임인 김오수 차관도 호남 출신의 친문세력으로 분류되지만 오랜 보직 기간에 따른 피로감이 쌓여 있었다. 법무·검찰 조직 내에서 그의 리더십 손상으로 인해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비판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비판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고 차관의 임명은 법무·검찰의 핵심 보직인 이 중앙지검장(전북 고창)-조남관 법무부 검찰국장(전북 남원)-심재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전북 완주)-배용원 대검 공공수사부장(전남 순천) 등 ‘빅 4’ 자리에 이어 검찰 내부의 주류변화가 완성단계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윤 총장, 이 중앙지검장, 고 차관 모두 사법시험 동기여서 권력 분점을 향한 세 사람 간의 견제와 갈등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정부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수사관행 변화 등의 검찰 개혁 방향을 놓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는 청와대의 울산사건과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감찰 무마, 권력형 비리의혹으로 번질 소지가 큰 신라젠과 라임자산운용사 주가 조작 및 횡령 사건 수사 방향을 놓고도 대립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번 인사가 21대 총선이 끝난 뒤 ‘원 포인트’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향후 총선 사범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개표에 문제가 있다며 투표함 등에 대한 증거보전을 신청한 뒤 지난달 29일 직접 투표 용지 일부를 옮기고 있다. 민 의원은 또 ’연수구 선관위가 비례대표 투표지 등의 증거제출에 응하지 않았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연합뉴스]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개표에 문제가 있다며 투표함 등에 대한 증거보전을 신청한 뒤 지난달 29일 직접 투표 용지 일부를 옮기고 있다. 민 의원은 또 ’연수구 선관위가 비례대표 투표지 등의 증거제출에 응하지 않았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연합뉴스]

대검 공공수사부는 총선일(4월 15일 24시) 기준으로 입건된 1270명의 선거사범 중 16명(9명 구속)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당선자는 94명이 입건돼 90명을 수사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선거일 이후 총 선거사범의 절반 이상이 추가로 입건됐던 과거의 사례를 감안할 때 이번에도 100명 전후, 많게는 120~130명의 당선자가 검찰 수사망에 포함된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당선자 3명 중 한 명꼴로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청와대와 여권의 눈길이 윤 총장에게 다시 향할 수밖에 없게 됐다. 20대의 경우 33명의 당선자가, 19대는 30명의 국회의원이 기소됐었다.
 
공안수사를 주로 했던 한 변호사의 말부터 들어보자. “지금까지 선거사범 수사는 기계적으로 해왔다고 보면 된다. 선거 과정에서 돈거래 행위와 상대방에 대한 흑색선전, 자신의 경력 허위 기재 등이 주요 대상이었다. 대검찰청에서 혐의의 경중에 따라 여야와 지역을 맞춰 기소 대상을 정해 온 것이 관례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를 하고 협의를 했지만 검찰의 권한이 절대적으로 컸다고 한다.
 
선거사범

선거사범

하지만 이번의 경우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여권 압승과 청와대와 검찰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는 점에서 검찰과 정치권이 또다시 대립할 것이 우려된다.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대표적이다. 여권 내부의 진정과 제보에 따라 수사가 시작됐는데도 ‘검찰 개혁’ 프레임으로 당사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당원 명부 불법 유출과 활용은 민주당 내부에서 나온 얘기”라며 “여당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때마다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선거사범 수사의 특징 중 하나는 일반인들의 고발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검찰 측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오프라인 선거운동이 줄고, 후보자와 유권자의 대면 접촉이 감소하면서 제3자의 고발이 20대 때 600명에서 이번에는 424명으로 축소됐다”고 전했다. 그만큼 ‘내부의 총질’이 많다는 의미다.
 
고기영

고기영

문제는 접전 지역이 많았던 서울과 경기도 등에 선거법 위반 의혹을 받는 당선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여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상대적으로 많음을 뜻한다. 이번의 경우 흑색선전 사범이 467명(36.8%)으로 금품수수(216명, 17%)나 여론조작(72명, 5.7%)보다 훨씬 많아 수사를 더디게 할 가능성도 크다. 검찰의 해석이 개입할 공간도 커진 셈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윤석열 총장은 선거사범 수사에 대해선 ‘인력을 집중해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행하라’는 원론적 지시만 내릴 뿐 구체적 개입을 꺼리고 있다고 한다. 예비 국회의원 신분이 된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과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의 집중 공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굳이 싸움의 명분을 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검찰이 통합당 일부 인사들이 제기한 사전투표 조작설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당사자의 고발이 있었던 만큼 통상적인 법 절차에 따라 수사를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검찰이 조사에 나선다고 이를 혐의가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사전투표 조작설을 놓고 보수진영 내에서도 논쟁을 벌이고 있듯이 이를 법리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6개월에 불과한 공소시효도 수사의 맥을 빠지게 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모든 선거사범은 검찰이 수사한다”는 윤 총장의 의지와는 달리 이 중앙지검장은 최근 “경찰에서 빨리 털어낼 수 있는 것은 털어내고 수사를 하자”며 다소 다른 뉘앙스의 말로 수사팀을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고 차관까지 개입하면서 선거사범 수사를 둘러싼 검찰 고위간부들의 갈등이 또 다른 정치판으로 번질 것을 예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소시효가 끝나는 10월 15일까지 검찰이 바람 잘 날 없는 조직이 될지는 세 사람의 기세 싸움과 함께 할 것으로 전망된다.
 
6개월 선거법 공소시효 개정 논의 있어야
이번에도 선거법 위반 사범에 대한 공소시효를 놓고 법적 논란이 일고 있다. 다른 형사 범죄와는 달리 별도의 규정을 통해 6개월의 공소시효를 둔 것이 형평성과 비례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선거법은 1947년 법 제정 당시 공소시효가 1년이었지만 1950년 법 개정과 함께 3개월로 단축됐다가 1990년대 들어 6개월로 연장됐다.
 
공소시효가 이처럼 짧은 것은 선거사범에 대한 수사를 신속히 진행해 선거 결과를 안정시키자는 취지였다. 국민들의 뜻과는 달리 검찰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수사를 끌 경우 민의(民意)가 왜곡될 수 있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짧은 공소시효는 부실수사와 축소수사를 초래했고 이로 인해 당사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또 다른 정치적 논란을 부추겼다. 정치인들에겐 “무조건 버티면 된다”는 그릇된 법의식도 심어줬다. 살인의 경우 공소시효가 없어졌고, 성폭력 사범은 대거 늘어나는 게 요즘의 추세이다. 검찰은 “과거의 군부 독재정권 때와는 정치적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공소시효 연장 문제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는 입장이다. 일본 등 많은 국가에선 별도로 공소시효 규정을 두지 않고 형법에 근거해 각각의 시효가 정해진다.
 
이와 함께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될 경우 의원직을 상실토록 한 법 규정도 좀 더 조밀하게 개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법원의 자의적 잣대로 인해 들쑥날쑥한 판결이 나오고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지출이 커졌다는 얘기다. 1심 6개월, 2, 3심 각각 3개월의 재판 준수 기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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