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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시선] 비난은 야당에 부담은 국민에게

중앙일보 2020.05.04 00:32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승현 논설위원 겸 정치에디터

김승현 논설위원 겸 정치에디터

‘똥 누러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 총선이 끝나고 난 뒤 이 속담이 입 안에서 맴돈다.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의 행태 때문이다. ‘급할 때는 통사정하며 매달리다가 일을 무사히 다 마치고 나니 모른 체한다’는 속담 풀이와 싱크로율이 높은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민주당 ‘무공천 원칙’ 모른 척
위선 방치하고 손익 계산만 해
국민 ‘위기판단’ 앞에 솔직해야

법무법인 공증까지 받은 채로 세상에 공개된 기이한 성추행 사건도 그중 하나다. 민주당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해찬 민주당 대표)이라며 발 빠르게 사과했지만, 그렇게 끝내도 되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민주당 지도부가 총선 전에 알았는지, 국민의 선택 전까지 감추려 했는지 등의 의심은 유권자의 권리다. 분양받은 새 아파트 붙박이장에 곰팡이가 수북이 쌓였다면 그냥 닦고 말 일인가. 어디서, 왜 습기가 생기는지 따져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총선 전후에 벌어진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은 민주당의 친절한 AS(애프터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터무니없다”며 의혹을 차단한다. 미래통합당의 강변도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이해찬 대표가 선거 며칠 전에 야당이 폭로전으로 나올지 모른다고 선수치고 나왔는데, 오거돈 사건이 터질 것을 알고 미리 ‘쉴드(방어벽)’를 친 게 아닌가”(정진석 의원) “왜 가장 피해야 할 정치색 짙은 법무법인에서 공증했을까”(전여옥 전 의원) 등의 의심은 합리적이다.
 
민주당은 시원하게 ‘볼 일’을 봤으니, 다급하게 화장지 찾던 얘기는 더는 궁금해하지 말라는 식이다. 내년 4월 치르게 되는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해선 ‘화장실 다녀온 뒤’의 태도가 더 확연하다. 이른바 ‘무공천 원칙’에 나 몰라라 한다. 민주당 당헌(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도 당에서는 언급 자체를 피하는 분위기다. 그런 와중에 무공천 뒤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무소속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시키자는 눈치 빠른 계산도 등장했다.
 
손익 계산에만 신경 쓰는 ‘졸부’의 전형성은 언제부터인가 민주당에 고착되고 있다. ‘무공천 원칙’을 주창하던 5, 6년 전의 절박함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2014년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창당 당헌에 무공천 원칙을 넣었다. 기득권과 부정부패에 대한 무관용을 천명한 것이다. 이후 ‘~추천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권고 조항으로 변경됐다가 2015년 6월 김상곤 혁신위원장의 혁신안에서 다시 의무 조항이 됐다. 지금은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에서도 문재인 당 대표를 불신하던 시절, 어떻게든 신뢰를 얻겠다는 몸부림의 우여곡절이 그 원칙에 담겨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실천하지 않는 혁신은 혁신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과거의 신념은 문서로만 남은 것일까. 총선 전후 민주당 대대로 이어진 개혁 취지는 대충 얼버무려도 되는 장식품 신세가 됐다. 야당 핑계를 대며 포기해 버리고 덥석 타협안에 서명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위성정당 사태로 변질됐다. ‘더듬어민주당’이라는 치욕이 재발했는데도 자존심 상해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양정숙 비례대표 당선인의 부동산 의혹을 걸러내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읊는 듯하다.
 
50%에서 70%, 다시 100%로 춤을 추다가 결국 ‘관제 기부’ 논란으로 이어진 긴급재난지원금도 비슷한 패턴이다. 포퓰리즘 비난은 야당 탓, 추가 비용 부담은 국민 돈으로 퉁친다.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강조한 시스템이 이런 ‘위선 구조’는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이런 판국에 ‘토지 공개념’과 ‘대통령 연임제’ 등의 개헌 이슈가 팝콘 터지듯 터져 나온다. 선거법 개정으로 정당 구조를 뒤죽박죽으로 만든 데 이어 헌법 이념마저 엉망진창으로 휘저어 놓을까 두렵기만 하다.
 
승자의 여유를 아직 익히지 못한 민주당에 전염병 전문가 래리 브릴리언트 박사가 제시한 ‘리스크 리터러시(risk literacy·위험 판단능력)’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싶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천연두 박멸 프로젝트를 이끈 그는 “대중이 팬데믹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고 적합하게 해석할 때 팬데믹을 예방할 수 있다”며 국민의 리스크 리터러시가 중요하다고 했다. 바로 우리 국민과 의료진이 코로나19에 맞서며 보여준 그 능력이다.
 
이번 총선 결과도 국민의 ‘리스크 리터러시’에 돌린다면 민주당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질 것 같다. 저간의 정치권 사정을 국민이 다 꿰뚫고 있다고 믿고 더 솔직해지고 겸손해진다면, ‘180석의 힘’을 능가하는 통합의 지혜가 싹트지 않을까.
 
김승현 논설위원 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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