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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6000억” 송현동 땅, 이번에도 ‘눈물의 땅’ 되나

중앙일보 2020.05.04 00:03 종합 15면 지면보기
대한항공이 매물로 내놓은 서울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 과거 7성급 한옥 호텔을 지으려고 했지만 각종 규제에 묶여 무산됐다. 서울 한복판 금싸라기 땅이 12년 만에 매물로 나올 예정이다. [중앙포토]

대한항공이 매물로 내놓은 서울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 과거 7성급 한옥 호텔을 지으려고 했지만 각종 규제에 묶여 무산됐다. 서울 한복판 금싸라기 땅이 12년 만에 매물로 나올 예정이다. [중앙포토]

올해 부동산시장 대어(大魚)로 꼽히는 송현동 부지가 매각 흥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한항공이 보유한 서울 경복궁 옆 3만6642㎡ 이르는 금싸라기 땅 얘기다. 12년 만에 매물로 나오지만, 개발 규제와 서울시 ‘공원화’ 움직임에 매수자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 이어 대한항공도 규제 묶여
중순께 이사회서 부지 매각 논의
서울시의 공원화 추진까지 겹쳐
제때 못 팔고 제값 못 받을 수도

땅 주인인 대한항공은 지난달 삼정 KPMG·삼성증권 컨소시엄을 매각 주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입찰 작업에 들어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항공노선이 대거 멈추면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2000억원을 수혈받는다. 대신 이달 중순께 이사회를 열어 최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 등 추가 자구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여기엔 알짜 부동산으로 꼽히는 송현동 부지 매각도 우선순위에 올라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송현동 부지 몸값이 5000억원(3.3㎡당 4500만원)은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익명을 요구한 감정평가사는 “대한항공이 금융위기 때 2800억원에 사들였고, 현재 서울 종로구 주변 땅값이 오른 것을 고려하면 최소 2배인 6000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토지·건물 정보플랫폼 밸류맵에 따르면 인근 덕성여자중학교 뒤편 부지 199㎡가 2017년 42억7000만원에 팔렸다. 현재 경복궁 인근 땅값은 3.3㎡당 7000만원을 넘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상당수 부동산개발(디벨로퍼) 업체는 매각 전망에 부정적이다. 입지는 뛰어나지만, 사업성이 담보되지 않아 값어치를 매기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이 부지는 과거 대한항공이 서울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7성급 한옥 호텔을 지으려다 포기한 곳이다. 학교 주변에 호텔 설립을 금지하는 학교보건법에 막혔다. 대한항공에 매각되기 전까지 땅 주인이었던 삼성생명 역시 미술관을 세우겠다는 목표를 실현하지 못했다. 사실상 송현동 땅은 23년째 공터다.
 
대한항공 송현동 땅 매각 일지

대한항공 송현동 땅 매각 일지

대기업들이 첫 삽을 뜨지 못한 데는 개발 규제 탓이 크다. 송현동 일대는 북촌지구 단위계획구역에 포함된다. 건축물 높이는 12m 이하로 제한된다. 또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건폐율)은 60% 이하, 용적률은 100~200%로 묶인다. 학교보건법도 바뀌지 않았다. 사실상 사업 수익성이 크지 않은 단독주택이나 편의점, 슈퍼마켓 등 1종 근린생활시설만 들어갈 수 있다.
 
최근에는 변수가 하나 더 생겼다. 서울시가 이곳을 ‘공원화’하겠다고 나섰다. 서울시 공공개발기획단 관계자는 “(대한항공 측에) 공개입찰 대신 서울시와 매입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며 “예상 매입가는 인수 협의가 되면 법에 따라 감정평가를 받아서 진행한다”고 했다. 또 “공개입찰로 민간에 팔리더라도 다시 도시계획시설(공원)로 지정해 수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에 공을 들이는 건 ‘땅의 역사성’ 때문이다. 해당 부지는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인 윤택영 사택이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이후에는 수탈의 상징인 조선식산은행 사택으로, 광복 후에는 미국 대사관 숙소로 이용됐다.
 
대한항공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입찰로 (송현동 땅이) 제값에 팔고 제때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데 (서울시 움직임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현재로서는 값어치를 매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혹시라도 공원으로 지정되면 개발이익이 반영된 공개입찰보다 몸값은 낮아질 수 있다”고 했다.
 
염지현·곽재민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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