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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文 대통령, 재난지원금 '1호 기부자' 대신 소비자돼야

중앙일보 2020.05.03 16:02
지난달 7일 대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임시 휴점에 들어갔던 신발점 주인이 다시 점포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지난달 7일 대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임시 휴점에 들어갔던 신발점 주인이 다시 점포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재난지원금 기부가 착한 일? 

국회와 관가를 중심으로 긴급 재난지원금 기부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송영길·백혜련·이수진 등 여당 의원들이 기부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세종시·충청북도·서울 서초구 등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의 동참도 이어졌다. 정부·여당 일각에선 재난지원금 '1호 기부자'로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는 방안도 내놓는다. 이런 행위들을 '착한 기부'라고 추켜세운다.
 
물론 재난지원금 기부가 선의에서 나왔다는 점을 의심하진 않는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기부가 당장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코로나 경제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은 나랏빚(외채)을 갚는 효과라도 있었지만, 재난지원금은 모아봐야 자영업자 매출만 감소한다"고 지적했다.
 

재난지원금 기부, 경제학적 의미 

국가 경제는 민간소비와 투자·정부구매·순수출(수출-수입)이 증가했을 때만 성장한다. '총생산(Y)=소비(C)+투자(I)+정부구매(G)+순수출(NX)'라는 공식은 경제학부 1학년생이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거시경제학 기본 원리다. 재난지원금은 이 수식 어디에도 없다. 이는 정부가 가계의 소득을 지원하는 '이전지출'의 일종이다. 이것이 소비(C)로 이어져야만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재난지원금을 기부하면 재래시장·식당·미용실 등 생활 영역으로 당장 갈 수도 있었던 돈이 사라진다. 기부금은 실업급여(구직급여) 재원이 되는 고용보험기금에 편입돼 미래 실업 지원에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실업급여는 기부금이 는다고 같이 늘지도 않는다. 실업급여는 실업률 등 거시 경제지표에 맞물려 돌아가는 경제의 자동 안정화 장치이기 때문이다. 기부금이 당장 생계가 막막한 실업자의 호주머니로 들어가지도 않기 때문에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도 없다.
[자료 행정안전부]

[자료 행정안전부]

'금 모으기 운동' 비유, 적절한가  

재난지원금 기부를 외환위기 당시의 금 모으기로 비유하는 것은 '너무 나간' 생각이다. 기부가 는다고 해서 나랏빚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 가구에 대한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한 이상, 3조4000억원 규모의 돈은 적자국채를 발행해 마련할 수밖에 없다. 재정적자가 늘면, 민간에선 '구축효과'가 일어난다. 구축효과란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려고 세금을 늘릴 것으로 예상하는 상황에서 가계·기업 등이 투자·소비를 줄이는 선택을 말한다. 재난지원금 기부가 는다고 나랏빚을 줄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구축효과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굳이 기부의 장점을 꼽자면 지난해 말 현재 2조2000억원 규모로 늘어난 고용보험기금 적자를 줄일 수 있는 점이다. 고용보험 적자는 결국 국민이 보험료를 올려 메워야 할 돈이다. 기부자들은 이 같은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데 기여할 수는 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나라사랑 금모으기'운동이 주택은행 본점 및 전국 각 지점에서 전개되고 있다. [중앙포토]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나라사랑 금모으기'운동이 주택은행 본점 및 전국 각 지점에서 전개되고 있다. [중앙포토]

기부보다 소비가 '착한 일'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했던 '초심'을 다시 생각해 보자. 영세 자영업자·일용직 등 취약계층 소득 보전과 경기 부양이란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면, 재난지원금을 기부하는 것보다 소비하는 것이 더 '착한 일'이다. 고용보험 적자를 줄이는 일은 나중에 고민해도 되지만, 당장 생계 곤란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것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4일부터 취약계층을 시작으로 1차 재난지원금이 풀린다. 문 대통령은 재난지원금 '1호 기부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돼야 한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정부가 진정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면, 일단 소비를 살리는 일부터 나서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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