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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이천 방문에 "매번 사고···내 아들 살려내" 소리친 유족

중앙일보 2020.05.03 14:57
3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 조문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 조문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여길 왜 왔냐.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사고가 났는데 인제 와서! 내 아들 살려내라!”  

 
3일 오전 10시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천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 조문을 오자 유가족 대기실에 있던 한 여성이 오열하며 주저앉았다. 여성은 대기실에서 나와 정 총리를 만나려 했지만, 가족들의 만류로 대면하진 못했다.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서희 청소년문화센터에는 정 총리를 비롯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송석준 미래통합당 의원(경기 이천), 엄태준 이천시장 등이 조문을 왔다. 정 총리는 방명록에 ‘무거운 책임을 느낍니다. 안전한 대한민국 꼭 만들겠습니다’라고 적고 헌화를 이어갔다.
 

정부가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쳐 

정세균 국무총리가 3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를 작성한 추모 글귀.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가 3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를 작성한 추모 글귀. 뉴스1

정 총리는 분향소 한쪽에 마련된 유가족 대기실을 찾아 위로의 말을 전했다. 한 유가족은 “젊은 사람들이 먹고 살겠다고 일했는데 어떡할거냐”며 “매번 큰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정부가 다짐하지만 실제로는 (사고 방지를) 못했다. 정부는 항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쓴소리를 했다.
 
정 총리는 유가족 대기실에 있던 20여명과 3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 대화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지만 중간중간 유족들의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유가족 대표인 박종필씨는 “엊그제 이천 병원에 (사망자) 신원 확인을 하러 갔는데 60년 평생 볼 수 없는 형상이었다”며 “그 모습을 봤을 때 여기 있는 유가족이 얼마나 가슴 아팠겠냐. 정부가 정말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 층에 한명씩만 안전관리자가 있었어도 이런 대형 사고가 안 났다. 매년 사고가 나오는데 정부가 관리 감독을 왜 못하냐”며 “분명 책임을 져야 한다”고 소리쳤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3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조문을 하고 있다.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가 3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조문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씨는 유가족과 충분한 소통 없이 부검을 진행했던 절차적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영장을 발부받았더라도 사전에 부검한다는 걸 유가족한테 예고를 해야지,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부검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유가족 측은 ▶화재 원인 규명 ▶건축주 한익스프레스 위법성 진상 조사 ▶책임자 엄벌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정 총리는 “철저히 진상규명을 해서 책임을 묻겠다. 앞으로 비용을 더 들이더라도 안전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법 제도도 정비하겠다”고 답했다.
 

중국인이 담배꽁초 버려 화재?…가짜뉴스 엄벌해달라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중국인 사망자 오모(46)씨의 가족은 정 총리에게 가짜뉴스 유포자를 엄벌해달라며 오열했다. 유족 측은 “동생을 잃은 것도 가슴 아픈데 인터넷에 ‘중국 사람이 담배꽁초를 버려서 불이 났다’는 댓글이 달린다”며 “너무 억울하다. 동생은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화재가 발생한 지하층이 아닌 지상 4층에서 일하다 죽었다”고 했다. 유족은 “아무리 외국인이라도 이렇게 댓글을 다냐. 철저히 잡아내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오후 5시에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박 대표는 "유족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있다. 법을 강화해서라도 절대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 유가족은 노 실장에게 "내가 처형인데 제부는 죽고 조카는 불이 난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척추가 다쳐 꼼짝을 못한다. (동생이)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며 "세월호나 이번 사건이나 인원수만 틀리지 같은 사건이다. 세월호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에 노 실장은 "당장 생계가 어려운 유가족에게 긴급 생계 지원, 맞춤형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3일 오전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이 아직 수습되지 않은 유해와 유류품 등을 찾기 위한 2차 정밀수색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3일 오전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이 아직 수습되지 않은 유해와 유류품 등을 찾기 위한 2차 정밀수색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대형 화재 예방을 위해 정부에서도 매우 많은 대책을 발표하고 추진했다. 이런 대책들이 현장에서 이행됐는지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화재 이후 유해위험방지계획서의 심사ㆍ확인 제도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고 국토교통부는 건축물 화재 안전 성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이런 대책들로는 근본적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만 바라보고 정책을 펼치니 이런 참사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공 교수는 “원ㆍ하청 관계에서 최저가 낙찰을 받기 때문에 정상적인 표준 공사금액이 아닌 최저가로 공사가 이뤄진다. 이렇게 되면 싼 자재를 써야 하고 함께 하면 안 되는 공정을 동시에 작업하는 등의 일이 벌어진다”며 “이런 것부터 바로잡아야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천=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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