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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몸 움직이며 얻는 쾌복의 기쁨, 산막은 그런 곳이다

중앙일보 2020.05.03 09:00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54)

 
산막에선 심심할 틈이 없다. 참 바쁘게 왔다갔다 많이해야 한다. 다 끝났나 싶어도 아차 닭장 문을 안 잠갔네, 분수대를 안 잠갔네, 스피커 커버를 안 씌웠네, 하루에도 대여섯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뿐인가. 장작도 모자라고 재 버리는 일도 다반사다. 찌개나 곰국 얹어놓고 맥 놓고 있다가 앗 이게 무슨 냄새냐 하고 황급히 달려가기를 또 몇 번이던지. 거기에 오는 전화, 답을 필요로 하는 메시지, 톡 응대, 페북과 유튜브 댓글, 방 청소와 주변 청소, 독서, 음악감상, 글쓰기, 유튜브까지 하루가 그냥 훌쩍 가버린다. 덕분에 밥맛 좋고 잠도 잘 온다. 함께 걷는 월든 숲길은 산막 생활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충분히 그리고 필요한 만큼 바쁘다.

 
 
곡우는 목공을 배우고 싶어한다. 배움에 끝이 없고, 산막만큼 목공 하기 좋은 곳도 없고, 몸 움직여 얻는 행복을 너무 잘 알기에 무조건 배우라 했다. 목공 하는 곡우의 모습이 상상이 간다. 손재주 없는 나는 그저 장비 갖춰주고 공부하게 도와주고 목공 하다 남은 나뭇조각 태울 궁리에 즐겁다. 오늘은 치즈에 낫또에 토스트에 삶은 계란에 아침 잘 먹으며 한옥과 목공 이야기를 나누었다.  밥그릇이며 물잔이며 꽃병이며 무어든 나무로 뚝딱일 산막의 모습이 기대된다.
 
머리 아프고 몸 찌뿌드드할 때는 노동이 최고. 단풍나무 가지가 자두나무 가지에 치여 자라질 못하니 곡우가 어떻게 해보라 성화인지라 강풍이 부는 날임에도 팔 걷어붙이고 사다리 놓고 전기톱으로 가뿐히 정리했다. 사다리 잡는 곡우에게 똑바로 잡으라 호통치는 재미도 있어 그랬나(ㅎㅎ) 씻은 듯 사라지는 이 두통과 찌뿌둥함이여. 몸과 마음이 따로 아니고 몸 움직이는 쾌복을 또 느낀다. 행복은 거창하지 않다.
 
산막스쿨 지킴이로 키우면 좋을 것 같아 골든 리트리버를 분양받고 싶다는 글을 올리자 금세 흔쾌히 분양을 해주겠다는 지인이 나타났다. 이름은 모카. 산막 한 달째, 좋은 일이 자꾸 생긴다. 오래전 잃어버렸던 티도 찾았고, 통신사에서 인터넷을 제대로 보완한다고 한다. 앞으로 영상 올리러 산 아래까지 가는 불편은 없겠다.
 
지는해 바라보며 석양바라기 하는 모카의 모습이 애처롭다. [사진 권대욱]

지는해 바라보며 석양바라기 하는 모카의 모습이 애처롭다. [사진 권대욱]

 
산막이라 늘 천착하지는 않는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부르는 데 있으면 가고 없으면 머문다. 그렇게 보니 간만의 서울도 좋다. 근데 모카가 걱정이다. 생물이란 예외 없이 애물이다. 묶고 가두면 내가 묶이고 풀면 내가 놓이지만, 그 또한 항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고보다 기쁨이 크기 때문 아니겠나? 모카, 벌써 보고 싶다.
 
이 세상 모든 현상은 다 의미가 있다. 강풍, 소나기, 천둥·번개, 이 모든 것이 자연의 리밸런싱 과정이라 해석한다. 꼬이고 뒤틀려 왜곡된 모든 것들을 일시에 정상화하는 과정.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일거에 봇물 터지듯 토해내는 카타르시스. 우리네 삶에도 이런 과정이 필요할 듯하다. 강풍이 분다. 겨울 같은 봄이다. 4월 하순에 이런 풍광을 볼 줄이야. 모카는 완전히 풀어버렸다. 내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 다닌다. 지금은 이 세상 가장 편안한 자세로 잠든 모카. 전생에 나와는 어떤 인연이었나.
 
대자연의 폭풍 같은 시간을 견디고 청명한 하늘이 떴다.

대자연의 폭풍 같은 시간을 견디고 청명한 하늘이 떴다.

 
잠 일찍 깨는 새벽 내가 어김없이 행하는 일 하나 있으니, 페북 '과거의 오늘' 살펴보는 일이다. 멀게는 9년, 가까이는 작년의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행했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가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참으로 다양한 글을 보며, 그 일은 아직도 못했구나, 그땐 생각이 짧았어, 아 그때 저런 생각을? 기뻐하고 반성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또 기록한다. 
 
과거의 오늘을 보면 현재의 내가 보이고 미래의 나도 보인다. 저 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때 저런 생각을 했었구나 돌아보며 지금도 변함없나 살펴본다. 좋은 생각, 멋진 예지와 통찰 앞엔 저 때만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옹졸한 생각 편협한 마음 앞엔 그래도 그때보단 낫구나 안도도 한다. 그때 있었던 사람 지금은 없으니 왜일까도 살피게 되고, 그땐 없었던 사람들 예나 지금이나 같은 사람들에 고맙게도 되는 것이다. 
 
과거는 나의 거울이요, 글 속에 오롯이 살아있다. 7년 전, 5년 전, 1년 전의 나의 모습을 보며 오늘도 열심히 기록한다. 내년이면 그 또한 과거의 오늘이 되어 나를 비출 것이니, 그러니 어김없으려면 진실하고 또 진실해야 하지 않겠나.
 
(주)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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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욱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필진

[권대욱의 산막일기] 45년 차 직장인이자 32년 차 사장이니 직업이 사장인 셈이다. 일밖에 모르던 치열한 워커홀릭의 시간을 보내다 '이건 아니지' 싶어 일과 삶의 조화도 추구해 봤지만 결국 일과 삶은 그렇게 확실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애써 구분할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삶 속에 일이 있고 일속에 삶이 있는 무경계의 삶을 지향하며 쓰고 말하고 노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강원도 문막 산골에 산막을 지어 전원생활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60이 넘어서야 깨닫게 된 귀중한 삶과 행복의 교훈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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