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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실업 공포…노사정 고통분담 없는 85조 투입은 미봉책

중앙선데이 2020.05.02 00:32 684호 3면 지면보기

팬데믹 ‘고용 한파’ 현실로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의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 실업급여 신청 창구. 이곳을 찾은 정영모(47·가명)씨는 대기석에서 다소 빨개진 눈으로 스마트폰을 응시하고 있었다. 며칠 전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그는 “시내 한 모텔에서 일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투숙객이 너무 줄어서 (고용이) 더는 어렵다고 했다”며 “실업급여로 당분간은 버티겠지만 앞으로가 막막해 구인 광고를 뒤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대기석은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20~50대 남녀 수십 명으로 혼잡했다.
 

사업체 종사자 3월 22만 명 감소
상용직보다 임시직이 더 큰 타격
무급휴직자 지원액 800억 불과

공공 일자리 등 일시적 처방 그쳐
그린뉴딜 등 중장기 계획 내놔야

이보다 이틀 전인 27일 오전 서울 강서의 이스타항공 본사 건물 앞.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속 주인공이 저항을 상징하며 썼던 가면을 똑같이 만들어 쓴 노조원 100여 명이 모여 “부당한 정리해고를 중단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영난에 지난해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온 이스타항공은 올 들어 코로나19 여파로 탑승객까지 급감하자 3월 말부터 국내외 모든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이후 비정규직 포함 전 직원의 20%인 340여 명을 구조조정한다고 밝혔다.
 
진기영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항공사들은 수많은 이윤을 남기던 때로 돌아갈 것”이라며 “그때까지 위기를 감내할 텐데 사측은 빠른 구조조정만 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측은 아직 합의점을 못 찾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코로나19가 몰고온 실업대란은 예상대로 심각한 상황이다. 고용부는 지난달 28일 최근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3월 기준 1인 이상 사업체 종사자는 1827만8000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22만5000명(1.2%) 감소했다. 고용부는 2009년 6월부터 관련 통계를 냈는데, 사업체 종사자 수가 줄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용부의 3월 실업급여 지급액은 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증가한 역대 최대치였다. 신규 신청자만 15만6000명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비자발적 이직자 통계다. 3월에만 58만7000명을 기록해 이직 사유 집계를 시작한 2015년 이후 최대치였다. 근로자가 원치 않는 데도 구조조정이나 기업 경영상의 무급휴직 실시 등을 이유로 이직하게 된 경우다.  
 
문제는 ‘코로나 실업’의 고통이 일시적일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코로나19의 직접적 영향에 따른 올해 신규 실업자가 최대 33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박양수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글로벌 수요 위축이 수출에 악영향을 줘서 3월에 크게 나빠진 고용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고용 안정을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달 22일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특별대책을 공개한 데 이어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26일 브리핑에서 “민간 부문의 고용 활력이 떨어진 상태라 공공 부문에서 일정하게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고용 안정에 10조1000억원, 일자리 사수 등을 위한 기업 안정에 75조원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정부의 대책이 일회성 처방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금껏 정부가 내놓은 ▶단기 공공·청년 일자리 55만개 신규 확보(3조6000억원 투입) ▶특수고용직과 무급휴직자 등 지원(월 최대 50만원씩 최장 3개월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같은 대책이 주로 3~6개월 충격 최소화를 목표로 하고 있어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공공 일자리 땜질 처방만 내놓아서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린뉴딜 같은 중·장기 대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정부는 중·장기 대책으로 디지털·비대면 산업을 키워 일자리를 늘린다는 ‘한국판 뉴딜’을 제시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늘릴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무엇보다 임시·일용직 등 기업 입장에선 해고가 쉬워 타격이 큰 비정규직 근로자를 위한 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때라는 분석이다.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는 지난해 700만 명을 넘긴 것으로 추산된다. 비자발적 무급휴직자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관련 1차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한 달간 71.5%(7조1000억원, 지난달 14일 기준) 집행됐지만 무급휴직자에게 배정된 ‘지역고용대응 특별지원사업’ 지원액은 8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달라질 노동시장까지 내다본 고용 안전망 구축과 노사정 공존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재택근무와 비대면 산업 확대로 아웃소싱과 임시직 비중이 커져 생길 사회적 갈등을 줄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임금 인상 등 기득권만 요구하는 노조도, 정리해고 이면에서 정부 지원 확대만 바라는 기업도 현 상황에선 도움이 안 된다”며 “노사정 공동의 고통 분담 노력 없이는 정부의 대규모 재정 투입도 반짝 처방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의 일방적 구조조정을 최소화하는 비정규직 해고총량제 도입, 단체협약의 사업장 내 효력 확장 의무화, 근로조건 유연·자율화 등을 구체적인 공존 방안으로 제시했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용보험을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도 보편 적용받도록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팬데믹 실업 후폭풍, 2021 최저임금 ‘동결’에 무게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 지키기’가 정부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면서 ‘2021년도 최저임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3월 31일 최저임금위원회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해달라고 공문을 보냈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위는 90일 이내(6월 28일)에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 이후 재심의와 이의제기 기간을 거쳐 8월 5일 노동부 장관이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시한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지난해 수준(2.87% 인상)보다 높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달라졌다. 코로나19발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치솟고 있는 만큼 ‘동결’ 쪽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경영계는 일단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삭감’ 얘기도 나오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제시한 ‘대량실업 방지를 위한 10대 정책과제’에도 ‘최저임금 동결’이 들어있다.
 
노동계의 생각은 다르다. 2018년(16.4% 인상)이나 2019년(10.9% 인상) 수준의 인상까진 아니더라도, 특수고용직 등 고용안전망 밖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은 근로자 생계를 위한 마지노선”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소득 충격을 최저임금 인상으로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여당은 한 발 물러섰다. 더불어민주당의 327쪽짜리 ‘21대 총선 정책공약집’에는 최저임금이란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3년 전 19대 대선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2020년 1만원 달성’ 공약을 띄웠던 모습과 대조된다.
 
올해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1988년 이후 32년간 법정시한을 지킨 해는 8번에 불과하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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