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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말고개입’ 그후 1년, 할리우드 심야 성폭력 80% 줄어

중앙선데이 2020.05.02 00:20 684호 14면 지면보기

세상을 바꾸는 캠페인 이야기 〈7〉 성폭력 예방 운동 ‘노모어’

“성폭력은 예방할 수 있다. 모두가 성폭력이 사라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방을 위한 개입이다. 이는 매우 작지만 의미 있는 조치가 될 수 있다.”
 

성범죄 위험에 노출된 사람 보면
업주나 종업원이 나서 귀가 돕기
침묵하지 말고 적극 대화 장려도

코로나 사태 속 폭력 바이러스 기승
‘n번방’처럼 디지털 조직·지능화
동참·연대 늘리는 ‘범죄 방역’ 필요

미국에서 성폭력 예방을 위한 인식개선 캠페인을 하는 노모어(No More)라는 공공 자선 단체의 주장이다. 이 단체는 2013년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기치로 내걸고 정부, 기업, 대학, 지역사회 그리고 개인 등 민관이 참여하는 통합 캠페인을 이끌기 위해 만들어졌다. 통합 캠페인을 구상하면서 내건 첫 번째 원칙은 강력한 문제 해결 의지를 상징화하는 것이었다. 마치 유방암 인식을 위한 핑크리본, 에이즈 예방을 위한 빨간색 리본 등과 같이 성폭력을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마침표를 상징하는 푸른색 원형의 캠페인 심볼을 만들었다. 또한 기존에 다양한 형식으로 전개되던 유관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확대했다. 수많은 기관이나 단체들을 보면 본질적인 문제 해결보다 오히려 그들끼리 캠페인 경쟁에만 몰두할 때도 잦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과도한 음주 권유 땐 개입
 
1 노모어와 우버 공동 캠페인 ‘가만히 있지 말고 일어서자(stand up, don’t stand by)’포스터. 2 대학 캠퍼스 내 성폭력 예방을 위한 ‘우리에게 맡겨달라(It’s on US)’ 캠페인 참여자들. 3 매스 키즈의 ‘충분한 학대(the enough abuse)’ 캠페인 참여자들. [사진 노모어, 매스 키즈 홈페이지]

1 노모어와 우버 공동 캠페인 ‘가만히 있지 말고 일어서자(stand up, don’t stand by)’포스터. 2 대학 캠퍼스 내 성폭력 예방을 위한 ‘우리에게 맡겨달라(It’s on US)’ 캠페인 참여자들. 3 매스 키즈의 ‘충분한 학대(the enough abuse)’ 캠페인 참여자들. [사진 노모어, 매스 키즈 홈페이지]

노모어라는 통합 캠페인 브랜드 내에서 전개되는 활동은 매우 다양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절반 이상이 경험했다는 언어 학대 문제에서부터 성폭력 사전 예방 캠페인, 유명인들이 동참하는 공익 광고 등이 그것이다. 특히 공익 광고를 통해 피해자들이 말하지 못했던 성폭력 피해 경험을 사적인 문제에서 공동체 문제로 전환을 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결과 2020년 현재 1200개 조직과 7만5000명의 회원이 이 단체에 가입했다. 세계 주요 도시를 포함해 미국 30여 개 주가 동참하고 있다. 또 수백여 곳의 학교에 노모어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성폭력 예방 교육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다.
 
2017년에는 승차 공유기업 우버와 협력하여 ‘가만히 있지 말고 일어서자(stand up, don’t stand by)’라는 현장형 실천 캠페인도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LAPD)과 함께 클럽 등 음주 장소에서 업주나 종업원이 성범죄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자는 캠페인이다. 업소 내에서 위험에 노출될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들의 안전한 귀가를 돕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했다.
 
한 예로 두 명 이상의 남성이 특정 여성에게 과도하게 음주를 권하는 행위를 목격했다면 사전 예방 차원의 안전한 귀가를 돕기 위해 개입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바텐더부터 보안요원에 이르기까지 클럽 직원 교육을 위한 업주 대상의 포럼도 개최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에 따르면 이 캠페인 결과 2017년 대비 2018년도 할리우드 지역 심야 시간대 성폭력 사건이 약 80% 감소했다. 이러한 시범 캠페인의 성과로 우버와 노모어는 2019년에 워싱턴DC로도 캠페인을 확대했다. 이 캠페인 특징은 지역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현장에서 소통 방식을 고민하고 구체적인 행동 개선과 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노모어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여성 3명 중 1명, 남성 6명 중 1명 정도가 성희롱이나 성폭력 등을 경험했다고 한다. 또한, 18세 이하 여성 청소년 4명 중 1명이 성적 학대를 당할 정도로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증대되고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성폭력 피해를 볼 가능성은 4배 이상 높지만 성학대와 폭력의 대상은 이제 양성 모두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모두가 관심을 두고 일상 속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노모어는 교육 캠페인의 하나로 방관자 훈련(bystander training)프로그램도 전개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65% 이상이 주변인들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기획된 활동이다. 성폭력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피해자를 비롯한 모든 이해관계자의 침묵과 그로 인해 느끼는 고립이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주변의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하도록 장려하는 캠페인을 활성화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새로운 접근 법이 될 수 있다.
 
노모어의 공동 창립자 제인 랜델도 “코로나19의 위기 상황 속에서 가장 부각되고 있는 문제가 가정 폭력과 성폭력 문제”라고 하면서 “이제 이 문제들에 대해 이전보다 더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분당 24명의 미국인이 친한 사람에 의한 강간, 신체적 폭력 또는 스토킹에 고통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침묵과 지식 부족은 성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따라서 가정 폭력, 성폭행 및 학대에 대한 경고 신호 또는 위험 신호를 이해하는 것은 범죄를 해결하고 예방하는 데 있어 중요한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대학 캠퍼스 내 성폭력 예방을 위한 ‘우리에게 맡겨달라(It’s on US)’ 캠페인 참여자들.

대학 캠퍼스 내 성폭력 예방을 위한 ‘우리에게 맡겨달라(It’s on US)’ 캠페인 참여자들.

성폭력과 관련한 캠페인은 그 대상을 세분화해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 2014년 오바마 정부 주도로 추진되었던 ‘우리에게 맡겨달라(It’s on US)’는 대학교 캠퍼스 내 성폭력 예방을 위해 시작된 캠페인이다. 미국 내에서 550개 이상의 대학 캠퍼스가 이 캠페인에 동참했고 5500회 이상의 교육 세미나가 개최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실제로 대학생 성폭행 피해자의 경우 10명 중 9명이 가해자를 알고 있음에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11.2%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성희롱 이상의 피해 경험을 갖고 있다는 현실은 왜 대학이라는 공간을 특정해 캠페인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다. 성폭력에 가장 취약한 대상인 아동 청소년에 집중한 캠페인 중 대표적인 활동은 1959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설립된 주립 아동 옹호 단체 매스 키즈(mass kids)가 주도하는 ‘충분한 학대(the enough abuse)’ 캠페인이다.
 
아동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관심을 두자는 이 캠페인은 아동 성 학대에 그동안 우리가 보여주었던 무관심이 충분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동 피해자의 평균 연령이 8세라는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특정한 기관이 주도하는 계도성 캠페인이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가 동참할 수 있는 캠페인을 채택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희롱, 능욕, 품평, 폭력 등 성범죄의 대상과 장소가 일상 속으로 깊게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또 한 사회가 가진 성에 관한 왜곡된 의식과 통제 불가능한 미디어 이용 증가 속 불법 콘텐츠 유통은 가해자를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다. 따라서 모두가 참여하는 범국민적 통합 캠페인이 사회 곳곳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공감에 초점, 피해자에게 힘 실어줘야
 
최근 n번방 사건에서 나타나듯 성희롱, 성폭력 그리고 디지털 성범죄는 날로 조직화, 지능화하고 있다. 사회 지도층, 유명인에서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의식과 개선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 성폭력 저항 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2006년 소셜미디어에서 제안했던 미투(me too)라는 문구가 2017년 해시태그를 달고 전 세계로 퍼진 바 있다. 성폭력과 관련한 의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연대를 통한 공감에 초점을 맞춰 피해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형식으로 전개돼야 한다. 통합적이고 지속적인 캠페인이 필요한 이유다. 흥미와 재미로 시선만 끌기 위한 캠페인은 지양되어야 한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사람들이 집에 머무르자 ‘폭력 바이러스’ 전파가 증가했다. 이런 소식을 접하고 보니 모두가 동참하고 관심을 두는 캠페인을 통한 방역도 필요한 때 같다. 그래야만 ‘침묵 속에서 퍼져나가는 폭력적 전염병’인 성폭력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이종혁 광운대 교수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이며 공공소통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2015~16년 중앙SUNDAY 및 중앙일보와 진행했던 공공프로젝트 ‘작은 외침 LOUD’를 현재까지 추진하고 있다. 디자인 씽킹 기반의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 가치 찾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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