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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까지 해?” 강박적 피부 관리가 K뷰티 만들었다

중앙일보 2020.05.01 11:02

“한국에 있을 때도 해외에서 주목받는 K-뷰티에 관해 알고 있었지만 다소 과장 됐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에서 살아보니 TV에서 한국식 미용법을 소개하고 마트와 백화점에 한국 화장품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더군요.”

하버드의대 방문교수로 초청돼 현재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정혜신 피부과 전문의가 미국에서 K-뷰티를 다룬 영문 책 'K-뷰티: 더 팩트'를 펴냈다. 사진 정혜신

하버드의대 방문교수로 초청돼 현재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정혜신 피부과 전문의가 미국에서 K-뷰티를 다룬 영문 책 'K-뷰티: 더 팩트'를 펴냈다. 사진 정혜신

 
지난 2000년대 후반 SBS 교양 프로그램 ‘잘 먹고 잘사는 법’의 고정 패널로 활약했던 피부과 전문의 정혜신(52)씨가 최근 미국에서 K-뷰티에 관한 책, 『K-Beauty:The Facts』를 냈다. 영문으로 된 책으로, 한국 사람들이 아닌 K-뷰티에 관심 많은 외국 사람들을 위해 지은 책이다. 2018년 5월, 하버드 의대 방문 교수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떠난 뒤 약 3년 만의 일이다. 현재 그는 하버드의대 부속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에서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다음은 이메일로 주고 받은 서면 인터뷰 내용이다.  

미국서 책 『K-Beauty:The Facts』 펴낸
피부과 전문의 정혜신 인터뷰

 
“한국서 피부 미용과 시술을 20년이나 해온 경력이 있다 보니 K-뷰티를 주제로 몇 번이나 발표했어요. 미국 피부과 학계에서 K-뷰티의 피부과 시술에 많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죠.  그 과정에서 동료들에게 책을 써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어요.”
 
책에서 K-뷰티에 대해 과학적, 역사적, 문화적 분석을 시도했다.

책에서 K-뷰티에 대해 과학적, 역사적, 문화적 분석을 시도했다.

책의 부제는 ‘한국의 피부과 전문의가 한국 스킨케어의 진실을 밝히다’이다. 진실을 밝힌다니, 한국의 스킨케어 방법이 해외에선 신기하게 느껴지나 싶다. 정혜신 교수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피부 관리도 여기 사람들의 시선으로 볼 때는 ‘뭘 그렇게까지 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유난스러운 편”이라고 했다. 일례로 미국은 심각한 피부 질환이 아니면 피부과에 가는 일이 거의 없고, 미용 시술은 특정 부류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인들의 평소 피부 관리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단순하다. 
 
덕분에 K-뷰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현지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정 교수는 “미국 패션 잡지에서 한국의 피부 관리 방식과 한국 화장품 브랜드의 신제품을 소개하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라며 “한국 화장품 기업들이 늘 소비자의 필요를 빠르게 읽고 재미있고 신기한 제품을 내놓기 때문에 미국 화장품 기업들도 그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고무적인 건 미국 현지의 밀레니얼 세대들이 한국 화장품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만큼 과장된 면도 있다. ‘10단계 스킨케어’가 대표적이다. 실제 한국 여성들이 매일같이 한 번에 10개의 화장품을 바르고 있지 않은 데도, 해외선 K-뷰티 스킨케어 하면 10단계를 떠올린다. 정 교수는 “처음에는 10단계 스킨케어를 문자 그대로 10단계로 오해하는 외국인들이 많았다”며 “최근에는 한국 여성들이 실제 매일 10개의 화장품을 바르는 것이 아니라, 각 단계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이중 세안, 보습, 자외선 차단 등의 원칙을 열심히 지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책에서 정 교수는 서구에서 온갖 환상과 과장으로 포장된 K-뷰티에 대해 과학적, 역사적, 문화적 분석을 시도했다. 한국인만의 독특한 스킨케어 방식으로 알려진 ‘10단계 스킨케어’에 대한 진실부터 왜 한국인에게 이중 세안 문화가 자리 잡았는지, 왜 각질 제거를 중시하는지, 자외선 차단제를 열심히 바르는지 등 문화적 차이의 원인을 파고들었다.  
 

K-뷰티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보습제를 여러 번 덧바르는 것이나, 시트 마스크를 과하게 사용하는 것이 사실은 아주 큰 효과는 없다는 점 등이다. 각질 관리를 지나치게 하는 점이나, 반드시 이중 세안을 고집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결국 모두 과하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K-뷰티에는 받아들일 만한 좋은 점이 있지만 한편으론 비상식적이고 심지어 강박적이고 소모적인 면이 있다”며 비판했다.  
 
동시에 이런 지나친 면이 K-뷰티의 저력임도 인정했다. 정 교수는 “지금 일하고 있는 MGH에도 항노화 시술 등 미용 시술을 하지만 서울에서 했던 시술이 더 정교하고 구체적이었다”며 “한국은 항노화 미용 시술에 수요가 많은 만큼 이 분야가 고도로 발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확실하게 효과를 내면서도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이중적 목적을 동시에 달성시켜야 하는 과제까지 생겼다”고 했다.  
정혜신 교수는 한국에서 약 20여년간 피부 미용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많은 노하우를 쌓았다. K-뷰티의 진실을 누구보다 전문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진 정혜신

정혜신 교수는 한국에서 약 20여년간 피부 미용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많은 노하우를 쌓았다. K-뷰티의 진실을 누구보다 전문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진 정혜신

 
정 교수는 K-뷰티 산업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BB크림과 쿠션 팩트 등 세상에 K-뷰티를 알린 히트 상품이 있었다”며 “새로운 품목을 개발하는 노력은 물론, 기존의 품목을 재해석하고 새롭게 제안하는 시도도 필요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K-뷰티만의 최고의 장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정 교수는 “피부에 결점이 있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 일상의 모든 선택에서 피부 건강을 최우선으로 두는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반대로 “화장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성분에 대한 집착, 외모에 대한 강박” 등은 추천하지 않는 부분으로 꼽았다.  
 
정혜신 교수는 앞으로도 당분간 미국에서 머물 예정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연구가 모두 중단되어 일정이 길어지고 있지만, ‘인종별 미백 치료의 차이’를 공동 연구하는 중이다. 현지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선 “매사추세츠주에만 확진자가 5만8000명이 넘어가면서 일상이 거의 멈추었다”며 “코로나19를 퍼트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호의적이지 않은 미국 현지 분위기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정혜신 교수가 현재 일하고 있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본관 건물. 사진 정혜신

정혜신 교수가 현재 일하고 있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본관 건물. 사진 정혜신

 
한국의 방역 성공 소식이 K-뷰티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진 않을까 물었더니, “한국의 방역 성공이 보도되고는 있지만, 현재 코로나19 한가운데에 있는 미국의 대중들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원망이 더 크다”며 “다행히 미디어에서 계속 한국을 긍정적으로 언급하고 있어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지 않을까 희망을 갖고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책도 준비 중이다. 이번 책의 기획과 편집을 담당했던 화장품 비평가 최지현과 함께 올 10월 출간을 목표로 작업 중이다. 마데카나 한방 성분, 천연 허브 성분, 기능성 성분을 담은 한국 화장품들을 다룬다. 한국의 피부과 미용 시술을 전문으로 다룰 세 번째 책도 기획해두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지나친 강박은 삶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이 육체와 정신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자신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피부의 결점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속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는 K-뷰티 철학의 핵심입니다. K-뷰티가 반짝 유행으로만 그치지 않길 바랍니다.”

  
유지연기자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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