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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물리적 거리두기가 앞당긴 언택트 2.0 소비

중앙일보 2020.05.01 00:35 종합 25면 지면보기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내수 소비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요즘 가장 주목받는 트렌드는 단연 ‘언택트(Untact) 소비’다. 『트렌드 코리아 2018』란 책에서 처음 소개된 이 신조어는 원래 ‘타인과 대면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젊은 세대의 심리적 거리 두기’란 뜻이 강했다. 당시 개념이 ‘언택트 1.0’이라면 2020년 코로나 사태에서 주목하는 ‘언택트 2.0’은 타인과의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물리적 거리 두기 정도로 정의될 것이다.
 

편의보다 안전 극대화 수요 늘며
일상이 된 미래형 라이프 스타일

‘언택트 2.0’ 시대에 소비생활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외출이 두려운 사람은 휴지 한 개를 사도 택배 배송을 신청한다. 음식은 배달 플랫폼으로 주문하고, 배달하는 사람과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문 앞에 두고 초인종을 눌러 달라’고 요청한다. 현관문에 걸어둔 옷을 수거했다가 다시 현관문에 걸어두는 세탁 스타트업도 이용률이 늘었다. 편의 극대화를 위해 등장한 각종 서비스가 이제는 안전 극대화 수요에 힘입어 급성장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도 전환기를 맞는다. 네이버 지식인의 유료 버전인 ‘엑스퍼트’는 세무·법률처럼 전문지식이 필요한 영역을 비대면으로 상담받는다. 헬스장에서 받던 개인 트레이닝을 앱을 통해 집안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각종 코칭 서비스도 늘고 있다.
 
전문가를 직접 만나는 대면 상담은 프리미엄 서비스이지만 전화·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상담은 저가라고 여기던 사회적 통념이 코로나 사태를 맞아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미래형 라이프스타일이 생각보다 앞당겨 실현되기도 한다. 일부 기업이 시행하고 있는 재택근무는 미래의 스마트 오피스와 닮았다. 갑작스레 집에서 근무하게 된 사람은 부랴부랴 책상과 노트북을 장만한다. 집이 불편한 사람은 개인 룸이 마련된 스터디 카페에서 업무를 보기도 한다.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처럼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술에 대한 수요도 급증한다.
 
교육 부문의 변화는 한층 더 급진적이다. 개학이 연기된 중·고생들은 태블릿을 이용해 디지털 교과서를 읽으며 새 학기를 준비한다. 보수적인 대학가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온라인 수업 개설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면서 조만간 ‘유튜브 스타 교수’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메가 트렌드의 대가인 존 나이스비트는 10여 년 전부터 미래형 교육을 주장했다. 에듀테크와 온라인 강좌를 기반으로 전 세계 학생이 하나로 연결되고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민주적 교육 환경이 역설적으로 코로나19 덕분에 더 빠르게 현실이 되고 있다.
 
일상 속 사소한 변화도 눈에 띈다. 이동 수단인 개인 자동차는 집 다음으로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일종의 ‘전신 마스크’가 된다. 집 안에만 머무는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경치가 좋은 곳에 차를 세워 놓고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마시며 여가를 즐긴다. 마스크 쓰기가 일상이 되면서 피부를 보정하는 쿠션류나 립스틱은 건너뛰고 대신 눈 화장에 공을 들이는 ‘마스크 화장법’도 등장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변화는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에 집중하기보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된 뒤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많은 부분이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이참에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정착할 영역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코로나로 처음 시도했던 재택근무가 의외로 생산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앞으로는 재택근무를 정식근무 형태로 채택하는 회사가 늘어날 수도 있다. 코로나로 인한 일상 속 변화들은 어쩌면 미래 사회의 모습을 조금 미리 맛보는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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