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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아이는 나날이 커가는데 입양은 멈춰섰다

중앙일보 2020.05.01 00:33 종합 20면 지면보기

‘코로나 비극’까지 덮친 입양 현실을 보다

해외 입양을 앞두고 있는 민수(가명)가 위탁모 이금선씨와 놀이를 하고 있다. 생후 18개월의 민수는 코로나19 사태로 입양이 미뤄져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해외 입양을 앞두고 있는 민수(가명)가 위탁모 이금선씨와 놀이를 하고 있다. 생후 18개월의 민수는 코로나19 사태로 입양이 미뤄져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생후 18개월의 민수(가명)는 경기도 수원시의 위탁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미 북미 국가의 양부모 곁에 있을 터인데, 지금으로선 이 아이가 언제 비행기에 오르게 될지 알 수 없다. 민수는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이미 위탁 가정의 보호자를 엄마·아빠로 부르며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간단한 언어로 의사 표시를 한다. 위탁 가정의 자녀를 형·누나로 알고 애착을 드러내기도 한다. 입양 기관에 따르면 통상 15~16개월이 지난 입양아들은 새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전에 입양된 아이들의 양상과는 크게 다르다고 한다. 민수도 양부모를 더 낯설어하고 그동안 길러준 위탁 가정에 대한 기억을 오래 간직할 가능성이 있다.
 

출입국 제한에 양부모 법원 못 가
입양 절차 중단 사례 곳곳서 속출
법 개정으로 줄어든 입양 더 위축
긴급대책과 근원적 제도 개선 필요

2018년 10월에 태어난 민수는 친모의 양육 포기로 대한사회복지회에 맡겨졌다. 이 기관은 5개월 동안 민수가 국내에서 입양되도록 노력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5개월 국내 입양 시도는 법으로 강제돼 있다). 그 뒤 해외의 부부에게 민수를 ‘매칭’해줬다. 지난해 7월 수속이 시작됐다. 입양 특례법 개정(2012년 시행)에 따라 법원의 허가가 있어야 입양이 가능하다. 법원에서 판결을 받는 데 최소 4∼5개월이 소요된다.
 
대한사회복지회는 한국 법원이 3월에 민수 예비 양부모를 불러 심리하고 4월 중순께 입양 허가를 내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예비 양부모 출석일이 지난 4월 10일로 잡혔다. 코로나 사태로 법원 업무가 중단되거나 지연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비 양부모가 4월에 한국에 오지 못했다. 한국 방문이 금지돼서였다. 법원은 6월 중순으로 다시 날을 잡았다. 다음달 무사히 그 부부가 한국에 오고 법원이 입양 허가를 해주면 민수는 7월에 출국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아 예비 양부모의 한국 방문이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다.
 
민수를 돌봐온 위탁모 이금선(50)씨는 “이러다 두 번째 생일까지 함께 맞게 될까 봐 걱정이다. 여기에서의 기억을 잊고 새 부모에게 하루라도 빨리 적응을 해야 하는데 큰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15개월만 돼도 양부모에게 갈 때 울면서 내게 매달린다. 20개월이 넘어서 가면 아이가 정말 힘들 것 같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씨는 지난 9년간 입양 전 아동 여덟 명을 맡아 키워왔다.
  
입양기관도 고사 위기
 
김진숙

김진숙

민수의 사례처럼 코로나 사태로 해외 입양 절차가 지연된 경우는 대한사회복지회에서만 약 30건이다. 이곳과 더불어 국내 3대 입양기관에 속하는 홀트아동복지회와 동방사회복지에 물어보니 그곳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국내 입양 수속도 한동안 중단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법원이 예비 양부모 가정 조사를 할 수 없었던 게 원인이다.
 
입양 연기는 아이들에게 정서적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입양기관 운영도 어렵게 한다. 이 기관들은 인건비·사업비의 상당 부분을 입양 수수료(국내 입양은 정부가, 해외 입양은 양부모가 지급)로 충당한다. 김진숙 동방사회복지회 회장은 “지금까지 근근이 버텨왔는데 이런 일까지 생겼다. 직원들 무급 휴직도 고려하고 있다.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입양기관들은 정부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으나 소용없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법인의 재산을 사업비로 쓸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수 상황임을 참작해 법원이 조사·심리의 방법과 기간에 유연성을 발휘해주면 좋겠는데 행정부가 사법부 일에 관여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참에 입양 정책 손질해야”
 
줄어든 입양

줄어든 입양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전에도 입양이 크게 줄었다. 따라서 입양기관 사정이 나빠졌다. 2012년에는 1880건(국내 1125건, 국외 755건)이었는데 2018년에는 681건(국내 378건, 국외 303건)으로 약 3분의 1로 감소했다. 부모의 양육 포기가 그 정도 비율로 줄어서 생긴 현상은 아니다. 주로 법률과 정책 때문이다. 개정 입양 특례법은 생모가 출생신고를 한 아동만 입양이 가능하도록 했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이는 입양기관에 맡길 수 없게 됐다.
 
유기 아동 비율은 증가

유기 아동 비율은 증가

그 뒤 이른바 ‘베이비 박스’에 신생아를 놓고 가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정부는 해외 입양을 줄이고 국내 입양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입양기관들에게 해외 입양 건수 상한선을 제시했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 입양이 늘지는 않았다. 오히려 줄었다. 아이 낳기를 꺼리는 저출산 현상이 지속하는데, 입양해 기르려는 가정이 많아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법원 허가가 필수화되면서 입양이 훨씬 까다로워지기도 했다.
 
김미애

김미애

오창화 전국입양가족연대 대표는 “특례법 개정 뒤 양육이 포기된 아동이 입양 가정이 아니라 보육시설에서 자라게 되는 비율이 커졌다. 이것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법이고 제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창현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은 “입양 조건을 엄격하게 하는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한부모 가정 지원, 입양에 대한 국민 인식 개선 등으로 문제를 타개하는 게 맞는 방향이다”고 주장했다. 입양 특례법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김미애 변호사(21대 국회의원 당선자)는 “현실을 모르는 이들이 막연한 이상론에 치우쳐 책상에서 법과 제도를 만들어 입양이 더욱 어렵게 됐다. 21대 국회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딸을 입양해 키웠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고, 입양인의 날(11일)도 있다. 코로나 사태로 생긴 당장의 입양 관련 비극과 법률·제도가 만든 입양 정책의 허점에 시민들이 잠시라도 관심을 가지길 기대한다.
 
"입양 가로막는 특례법 조항 고쳐야"
김석현 대한사회복지회장 인터뷰
"입양은 규제가 아닌 지원의 대상
정부·입양기관 역할 분담 바람직"
 
김석현

김석현

입양되는 아이들이 줄면서 ‘요(要)보호’ 아동 중 보육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비율이 커진 현실에 대해 김석현(사진) 대한사회복지회 회장에게 물었다. 대한사회복지회는 한국의 대표적 아동복지기관이다.
 
2012년 개정 입양 특례법 시행 이후 입양이 계속 줄고 있다.
“특례법의 골자는 입양 아동의 권익 보호를 위해 국가가 입양 업무를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의미 있는 변화이다. 하지만 입양 조건과 절차를 까다롭게 해 입양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바뀐 법에 따라 미혼모가 아기를 입양 보내려면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미혼 여성이 아이를 낳았음을 기록에 남기는 걸 꺼리지 않을 수 있겠나.”
 
보육시설로 보내지는 아이들의 비율이 늘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입양이 줄어든다는 건 아동 인권 측면에서 빨간 신호이다. 시설로 보내져 고아로 외롭게 성장하거나, 심지어 버려지는 아이들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시설의 아이들은 18세가 넘으면 사회에 홀로 나와 험한 세파와 마주해야 한다. 처절한 운명이 이어지는 것이다. 특례법의 어느 조항 하나가 누군가의 인생을 그렇게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입양을 어렵게 하는 조항들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 입양은 지원 대상이다. 규제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입양을 까다롭게 해 그 수를 줄이는 것보다 친부모가 양육을 포기하지 않고 기를 수 있는 여건을 갖춰주는 일이 먼저일 것 같은데.
“친부모 양육이 최선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대한사회복지회 역시 미혼모 가정의 자립 지원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만나는 미혼모의 대다수는 아기를 키울 경제적·환경적 여건이 안 되고, 사회적 시선에도 큰 부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차선으로 양육 여건을 잘 갖추고 입양 의사를 가진 새 부모를 찾아 입양을 주선한다.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건전한 인성을 키우며 자라는 것이 아이에게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입양 업무를 국가가 관장하고 민간 기관들에 업무의 일부를 위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하는데.
“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입양은 절차도 길고 복잡하지만 각 단계마다 섬세한 노력과 인내와 정성이 필요하기도 하다. 수십년간 그 일을 해온 민간 전문기관과 정책을 세우고 추진하는 정부가 역할을 분담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런 방향에는 입양 기관들이 입양 수수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관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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