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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이긴 자들의 아전인수

중앙일보 2020.05.01 00:27 종합 24면 지면보기
서승욱 도쿄총국장

서승욱 도쿄총국장

“당이 하나가 돼 노력했기 때문에 승리했다. 감염증 대책을 이해하고 협력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아베 신조 총리) “정부의 감염증 대책, 자민당의 노력이 평가를 받았다.”(세코 히로시게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
 
지난달 26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시즈오카(靜岡)현 제4선거구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뒤 자민당 주요 간부들이 간부회의에서 쏟아낸 말이다.
 
선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갈팡질팡 우왕좌왕 대응이 도마에 오른 상황에서 실시됐다. 자민당 후보와 4개 야당(입헌민주당·국민민주당· 공산당·사민당)이 공동 지원한 무소속 의원과의 맞대결이었다. 결과는 의외로 싱거웠다. 6만6881표와 3만8566표,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자민당의 승리였다.
 
예상을 뒤엎은 대승에 고무된 것일까. 아베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지도부는 느닷없이 “코로나19에 정부가 대응을 잘했기 때문에 이겼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이는 터무니없는 아전인수다. 무소속 후보를 지원한 4개 야당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자민당 지지율(30% 안팎)의 3분의 1에 불과한 게 일본 야당의 현실이다. 기울어진 일본의 정치 지형 덕분에 이겨놓고도 자민당은 엉뚱하게 코로나 대응 문제를 승리와 결부시켰다.
 
글로벌 아이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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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전인수는 지난해에도 있었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총리는 “개헌에 대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우겼다. 개헌은 애초부터 중요한 선거 이슈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틈만 나면 “개헌 논의를 제대로 해달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진보 진영의 완승’으로 끝났다는 한국 총선 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며 표정관리에 나섰다. 하지만 당에선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꾸고, 책임총리제를 도입하자”는 개헌론이 분출한다. 또 여당의 위성정당은 윤석열 검찰총장 흔들기에 나섰다. 야당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개헌을 추진하라고, 그들에게 눈엣가시인 윤 총장을 몰아내라고 국민들이 표를 준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솔직히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이렇게 일방적인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한심한 나라 경제, 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린 조국 스캔들, 정권의 노골적인 검찰 압박이 모두 묻혔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당선이 어려웠을 상당수의 여당 후보가 경합지에서 배지를 챙겼다. 한국 정치는 자민당 1강의 일본 정치 풍토와는 다르다. 아전인수와 오만은 언제든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물줄기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서승욱 도쿄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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