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난지원금 시행착오 다신 없게 ‘오답노트’ 제대로 만들자

중앙일보 2020.05.01 00:02 종합 3면 지면보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경안 제안 설명을 마친 뒤 정세균 국무총리 앞을 지나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경안 제안 설명을 마친 뒤 정세균 국무총리 앞을 지나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최대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이 전 가구에 뿌려진다. 초유의 일이다. 여당과 정부는 생색을, 야당은 협치 명분을 얻었다. 주머니에 돈 들어오는 데 싫어할 국민도 별로 없다. 얼핏 만점에 가까운 결말이다. 그러나 되짚어 보면 오답투성이다.
 

총선에 밀려 대상자 졸속 확대
긴급하다면서 발표~집행 38일
재정 부담 늘자 ‘관제 기부’까지
실패 연구·기억해야 반복 안 해

국회는 30일 12조2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정부 내, 당정 간, 여야 간, 국회와 정부 간 이견을 조정해 낸 소통과 협치의 대표적 사례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① 표가 개입하자 정책이 뒤틀렸다
 
긴급재난지원금 논의는 초반부터 뒤틀렸다. ‘표’가 정책에 개입되면서부터다. 이번 지원금은 취약계층 구휼 목적에서 설계됐다. 재산·근로 유무에 관계없이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이 아니었다. 그래서 애초 정부 안은 소득 하위 50% 지급이었다.

관련기사

 
그런데 시점이 묘했다. 총선이 코앞이었다. 3월 29일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여당은 “답답한 말씀만 하고 계신다”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압박했다. 70% 지급으로 대상이 넓혀졌다. 총선 압승 후 여당은 100%로 한발 더 나갔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100% 지급을 할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기본소득’으로 접근했어야 한다”며 “표를 의식하다 보니 취지는 사라지고 지급 범위만 논란이 된 꼴”이라고 지적했다.
  
② 역량 부족은 속도 저하를 불렀다
 
이름에 ‘긴급’이 붙을 만큼 핵심은 속도였다. 정부가 50% 지급안을 당·청에 처음 밝힌 것은 3월 27일. 최초 지급 예정일은 5월 4일이다. 발표에서 지급까지 38일이 걸렸다. 50%든, 70%든 처음부터 기준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잣대를 소득으로만 할지, 재산까지 포함할지, 포함한다면 어떻게 할지를 놓고 기재부와 보건복지부는 엇박자를 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제각각 행보도 혼란을 부추겼다.
 
③ 나랏돈을 더 쓰니 재정 부담은 어쩌나
 
전 가구 지급으로 나랏돈이 더 들어가게 됐다. 100% 지급되면서 추경 규모는 12조2000억원으로 불었다. 지방비를 합하면 14조3000억원이다. 이 바람에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89조원을 넘어섰고, 나랏빚은 819조원이 됐다. 30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 3차 추경까지 하면 경제 규모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중은 외환위기 때보다 많아질 수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3차 추경 이전에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 계층을 최대한 줄여 앞으로의 재정 부담을 미리 덜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④ ‘재난 지원’ 퇴색 ‘관제 기부’로 변질
 
재난지원금이 자발적 기부를 전제로 한 지원이라는 점도 걸림돌로 남아 있다. 국회는 지난달 29일 ‘긴급재난지원금 기부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특별법’도 통과시켰다. 홍 부총리는 스스로 “지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관가와 재계에선 “자발적이라지만 기부를 안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사정이 어렵거나 신청을 못하는 사람은 찾아서라도 줘야 하는데, 신청을 안 했다고 기부금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입법이 아니다”며 “기부라는 좋은 제도의 취지를 훼손한 행정편의주의”라고 지적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실패를 연구하고 ‘오답 노트’에 적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난지원금을 또 줘야 할 때가 오면 예산을 남용하지 않도록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게 숙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기존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가 드러났다”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미봉책을 넘어 ‘디지털 원샷’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등 제도 개혁을 근본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