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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덕에 효자됐다"는 최우식 '사냥의 시간'에 긴장한 이유

중앙일보 2020.04.30 16:42
영화 '사냥의 시간' 주연 배우 최우식을 29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 주연 배우 최우식을 29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사진 넷플릭스]

“말도 안 될 만큼 좋아진 게 많아요. 부모님이 1년 내내 행복해하셨고 진짜 남부럽지 않은 효자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영화 ‘기생충’(2019)으로 지난 1년간 전 세계에서 사랑 받은 배우 최우식(30)이 29일 화상 인터뷰에서 들려준 벅찬 소감이다. 그는 봉준호 감독과 ‘옥자’(2017)에 이어 두 번째 만나 주연을 맡은 이 영화로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올해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의 기쁨을 현장에서 함께했다. 좀비 액션 ‘부산행’(2016), 히어로물 ‘마녀’(2018)로 장르 팬을 사로잡은 데 더해서다.

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 주연
경제 파탄 근미래 한탕 노린 청년
"'기생충' 다음이라 더 긴장…
카리스마 있는 역할도 욕심나"

 

가장 어깨가 무거웠던 상은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기생충’ 출연진 전원이 올해 미국배우조합(SAG) 앙상블상을 받은 것을 꼽았다. 배우로서 “절대 게을러지지 못 하게 만든 경험”이라고 했다.  
 
‘기생충’은 지난 1월 미국영화배우조합(SAG) 시상식에서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바이 캐스트(앙상블) 인 모션픽처’ 부문을 수상했다. [AFP=연합뉴스]

‘기생충’은 지난 1월 미국영화배우조합(SAG) 시상식에서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바이 캐스트(앙상블) 인 모션픽처’ 부문을 수상했다. [AFP=연합뉴스]

“여태 받아본 상 중 제일 어깨가 무거웠어요. 배우가 배우한테 주는 진짜 자랑스러운 상인데 당근이지만 채찍이기도 했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 어떤 영화를 해야 좋지? 계속 고민하게 됐거든요.“
 

'기생충' 다음이라 더 긴장됐죠 

새 영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을 선보이는 게 그래서 더 긴장됐다. 총제작비 100억 원대의 이 영화는, 경제가 파탄난 근미래 한국을 무대로 한탕 범죄에 뛰어든 네 청년이 정체불명 킬러에게 쫓기며 겪는 지옥도를 그렸다. 올 초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돼 주목받은 데 이어 지난 23일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됐다. 당초 2월로 예정했던 극장 개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워지면서다.  
 
최우식은 “‘사냥의 시간’이 ‘기생충’ 바로 다음 작품인데, 저한테 관심 주신 분들한테 전 세계로 한번에 빨리 인사드릴 수 있어 좋았지만 한편으로 긴장도 됐다”면서 “다행히 해외에서 좋게 봐주셔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담배 피우고 욕하고…처음 보는 얼굴

그가 맡은 기훈은 주인공 네 친구 중 가장 “현실적인 아이”다. 가족에 대한 결핍이 있는 친구들과 달리 바닷가 마을의 가난하지만 화목한 집안 출신. “친구들과 잘 지내는 ‘쿨가이’지만, 친구와 가족 중에 가족을 택하는 현실적인 판단을 한다”면서 “자유로운 가풍 덕에 꽉 막히지 않고 여유롭다”고 그는 설명했다. 기훈 역이 욕심 난 이유는 이렇게 말했다. “여태까지 이런 모습 많이 보여주지 못한 게 컸어요. 원래 짠하고 도움 필요하고 약하고 이런 모습을 많이 해서요.”
'사냥의 시간'에서 기훈 등 친구들은 산탄총을 거침없이 쏜다. 줄담배를 피우는 골초이기도 하다. 최우식은 배우들끼리 느와르 영화를 찾아보며 담배 피우는 모습을 연구했다고 귀띔했다. [사진 넷플릭스]

'사냥의 시간'에서 기훈 등 친구들은 산탄총을 거침없이 쏜다. 줄담배를 피우는 골초이기도 하다. 최우식은 배우들끼리 느와르 영화를 찾아보며 담배 피우는 모습을 연구했다고 귀띔했다. [사진 넷플릭스]

 
돌이켜보면 첫 단독 주연한 독립영화 ‘거인’(2014)에서 그는 무능한 아버지를 원망하며 위탁가정에 더부살이하는 고등학생을 연기했다. 이 영화로 그를 눈여겨본 봉 감독의 ‘옥자’에서는 슈퍼돼지 옥자를 운반하는 말단 트럭 운전수였다. ‘기생충’의 기태는 가난한 반지하 가족의 장남이었다.  
 
이번 영화의 기훈은 달랐다. “담배 피고 코트 입고 친구들한테 ‘쌍욕’하고. 기훈 역이 너무 욕심나면서도 겁도 났어요. 처음 보는 내 얼굴인데 사람들이 ‘최우식은 이 얼굴은 별로다, 안 어울린다’는 평이 있을까 봐요. 감독님이 뭘 보고 이런 역할을 주시지? 저도 궁금했으니까요.”
 

디캐프리오 리즈 시절 참고했죠 

윤성현 감독이 그를 ‘찜’한 건 9년 전 단편 ‘에튀드, 솔로’(감독 유대얼)였다. 어느 피아노 조율사가 우연히 학창시절 첫사랑과 재회하면서 돌이키는 고등학생 때 모습을 연기했다. 한쪽 손에 붕대를 감고 피아노를 마주한 소년의 예민한 눈빛이 스크랴빈의 에튀드 선율에 애잔하게 어울렸다.
'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이 배우 최우식을 발견한 단편 '에튀드, 솔로'(2011). 최우식은 어릴 적 첫사랑과 우연히 재회한 피아노 조율사의 학창시절을 연기했다. [사진 유대얼]

'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이 배우 최우식을 발견한 단편 '에튀드, 솔로'(2011). 최우식은 어릴 적 첫사랑과 우연히 재회한 피아노 조율사의 학창시절을 연기했다. [사진 유대얼]

 
윤 감독이 기훈 역에 요구했던 스타일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리즈’ 시절이었단다. 최우식은 “감독님은 디캐프리오 리즈 시절 머리 스타일에 멋있게 문신하고 장신구 하고 그런 모습을 원하셨는데 제가 캐스팅되는 바람에 무너졌다. 디캐프리오 아니고 그냥 양아치로…”라며 웃었다.  
 
다만, 희망 없는 세상에서 강도짓에 뛰어든 청춘들치곤 찌든 구석이 없어 보인다는 얘기에는 “저희가 떨고 긴장하는 모습을 연기했고 땀 분장도 엄청 많이 했다. 머리도 헝클어뜨리고 했는데 생긴 걸 바꿀 수가 없더라”고 농담 섞어 설명했다. “아무래도 (주인공들이) 예쁘게 나와야 사람들이 더 좋아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단다.  
 

시나리오 읽으며 고담시티 상상 

'사냥의 시간' 속 근미래 한국은 금융위기로 대규모 실직과 범죄가 횡행한다. 기훈(사진)이 시위대 사이를 지나오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사냥의 시간' 속 근미래 한국은 금융위기로 대규모 실직과 범죄가 횡행한다. 기훈(사진)이 시위대 사이를 지나오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시나리오에서 감독님이 만들어낸 가상현실을 읽으면서 약간 배트맨 만화의 ‘고담시티’를 생각했어요. 이 친구들이 지옥 같은 곳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남으려고 하는 행동이 범죄잖아요.”

 
근미래 배경 대부분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작업하다 보니 현장에선 완성될 장면을 상상하며 연기할 때가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윤 감독이 제시한 ‘체험적 영화’란 개념을 떠올렸다고 했다. “감독님이 제일 먼저 한 얘기가 체험적 영화였어요. ‘그래비티’처럼 보는 사람이 같이 그 공간에 있는 듯이 체험하는 영화요. 해외에선 인기 많은 장르지만 한국에선 잘 못 봤잖아요.”
 

'부산행' K좀비 도전, '사냥의 시간'은…

영화에서 왼쪽부터 기훈(최우식)과 단짝 장호(안재홍). 망가진 도시에는 그래피티와 무국적의 차량이 즐비하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에서 왼쪽부터 기훈(최우식)과 단짝 장호(안재홍). 망가진 도시에는 그래피티와 무국적의 차량이 즐비하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 공개 후엔 신선하다는 호평과 이야기가 부실하단 비판이 엇갈린다. 그는 ”보지 못한 앵글이 많고 배우들 얼굴이 새롭다는 반응도 있더라“면서 “‘부산행’이 한국에서 좀비를 처음 시도했다면 요런 장르적 체험할 수 있는 영화는 ‘사냥의 시간’이 시도한 것 아닐까? 좋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본능적으로 몰입해서 동물적인 연기를 한다”는 윤 감독의 평가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이 영화가 긴장감과 극도의 공포를 느낀 척 연기하기 쉬운 장르”라면서 “그런데 감독님은 제가 조금만 집중 못 해도 딱 아셨다. 그래서 진짜 느껴야, 진심이 돼야만 대사를 할 수 있었다. 배우로선 제일 좋은 환경이었다”고 돌이켰다. 
 

"엄마, '사냥의 시간 2'는 없어" 

영화 '사냥의 시간' 주연 배우 최우식을 29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 주연 배우 최우식을 29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사진 넷플릭스]

“기훈의 불확실한 결말에 대해선 부모님이 제일 속상해하세요. ‘2편 나오는 거냐 안 나오는 거냐’고요. ‘엄마, ‘사냥의 시간 2’는 없어’ 그랬죠.”(웃음)  
그의 국적은 캐나다다. 어릴 적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가 대학까지 다니다 배우를 꿈꾸며 한국에 왔다. 단란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한국에서 데뷔 후 유독 기구한 역할을 도맡았다.
 

'해외 진출'이란 말 없어질 듯 

“봉 감독님이 저더러 그냥 있어도 짠한 이미지가 있다고 하셨죠. 나잇대도 그렇고 저도 제일 자신 있는 영역이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려는 와중에 그 대가를 받게 되는 청년 캐릭터 같아요. 그 모습을 좋아해 주셔서 감사한 한편으로 나는 한(‘사냥의 시간’ 킬러) 같은 카리스마 있고 포스 있는 연기를 언제 해보나, 싶기도 하죠.”
 
‘기생충’ 이후 해외 작품도 타진 중이라는 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으로 전 세계 관객을 동시에 만난 것도 ‘옥자’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사냥의 시간’은 영화관 상영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여서 영화관에서 봤다면 사운드의 긴장감이 더 살아났을 것”이라 안타까워하면서도 온라인 스트리밍(OTT)의 장점을 이렇게 말했다. “한 번의 서비스를 통해서 세계로 나가잖아요. 이제 진짜 해외 진출이란 말은 조금 있으면 없어질 것 같아요.”
'기생충'이 처음 선보인지 1년 만에 국내 개봉한 흑백판에서 최우식. 지난 29일 극장가에서 선보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이 처음 선보인지 1년 만에 국내 개봉한 흑백판에서 최우식. 지난 29일 극장가에서 선보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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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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