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 '십만 양병' 반대한 류성룡, 임진왜란 터지자…

중앙일보 2020.04.30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73)

십만 양병(養兵).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그의 대표 업적이다. 율곡이 나라의 안위를 위해 상비군 10만을 기르자는 것이었다. 논란이 있어 십만양병설로 불린다. 정부는 국방 강화 정책을 그 정신을 이어받아 ‘율곡사업’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국방은 율곡의 경세(經世, 세상을 다스림) 사상 중 핵심이다.
 
율곡은 47세에 병조판서로 임명된다. 그는 문무 중임(重任)을 한 사람이 겸할 수 없고, 또 병이 심하다며 사양한다. 하지만 선조 임금은 허락하지 않고 양병 계획을 세워 오라고 명한다. 이듬해 2월 ‘육조계(六條啓)’를 올린다. 임금의 하교에 따른 상소문이다.
 
율곡 이이 초상화. 율곡은 임진왜란 발발 9년 전 십만 양병을 주장했다. [사진 파주문화원]

율곡 이이 초상화. 율곡은 임진왜란 발발 9년 전 십만 양병을 주장했다. [사진 파주문화원]

 
“우리나라가 오래도록 승평을 누려 태만함이 날로 더해 안팎이 텅 비고 군대와 식량이 모두 부족하여…. 신은 원래 썩어빠진 선비로서 외람되이 병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밤낮으로 애태우며 생각한 나머지 감히 계책을 올립니다. 첫째 현능(賢能)을 임용할 것, 둘째 군민(軍民)을 양성할 것, 셋째 재용(財用)을 풍족하게 만들 것, 넷째 변방을 튼튼하게 할 것, 다섯째 전마(戰馬)를 갖출 것, 여섯째 교화(敎化)를 밝힐 것 등입니다.”
 
여기에 군민 10만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율곡은 4월 다시 ‘진시사소(陳時事疏)’ 상소에서 “서얼과 공천(公賤, 관노)‧사천(私賤) 중 무재(武才)가 있는 자를 모집하여…” 등의 양병 방안을 제시한다.
 
공식 문서인 상소문과 달리 김장생‧박세채 등 후학이 정리한 율곡의 연보에는 양병의 구체적인 숫자가 나온다. 1583년 4월 연보의 내용은 이렇다.
 
“선생이 경연에서 아뢰기를 ‘10년을 못 가 토붕(土崩)의 화가 있을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미리 십만의 군사를 길러 도성(都城)에 2만, 각 도에 1만을 배치하여 그들의 조세를 덜고 무재를 훈련해 6개월로 나누어 교대로 도성을 지키게 하다가 변란이 있을 때는 십만을 합쳐 파수하게 하여 위급할 때 방비를 삼으소서. 이처럼 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변이 날 경우 시민(市民)을 몰아 전투하게 됨을 면치 못해 결국 대사가 끝나고 말 것입니다’ 했다.
 
류성룡(柳成龍) 공이 불가하다고 말하면서 아뢰기를 ‘아무 일이 없는데도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곧 화근을 기르는 것입니다’ 했다. 이에 경연 신하들이 모두 선생의 말을 지나친 염려라고 해 끝내 시행하지 못했다. 선생은 물러나와 류공에게 말하기를 ‘속유(俗儒)들이야 진실로 시의(時宜)를 알지 못하거니와 공도 또한 그런 말을 하는가’ 하고 오랫동안 수심에 잠겨 있었다. 임진년 왜란이 일어나자 류공이 조당(朝堂)에서 탄식하기를 ‘이문성(李文成, 율곡)은 참으로 성인(聖人)이다’ 하였다."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에 소재한 율곡 이이 묘소. 능선 아래쪽에 어머니 신사임당 묘소도 있다. [사진 백종하]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에 소재한 율곡 이이 묘소. 능선 아래쪽에 어머니 신사임당 묘소도 있다. [사진 백종하]

 
율곡 십만양병설이 등장하는 출처다. 그리고 9년 뒤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조선은 건국 이래 200년 동안 이렇다 할 전쟁이 없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은 ‘설마’에 뒷전으로 밀려난 것일까. 인터넷 나무위키에 따르면 현재 한국군 상비군은 57만9000여 명. 지금은 남북한이 대치한 상황이다.
 
지난 2월 경기도 파주시의 율곡 선생 묘소에 들렀다가 떠오른 생각이다. 묘소는 휴전선과 제3땅굴이 지척인 곳에 있었다. 선생이 강조한 유비무환은 지금도 국가 안위의 첫 번째 방책일 것이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