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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뉴욕의 비극, 한국의 미래

중앙일보 2020.04.30 00:38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종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종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뉴욕의 봄은 스산하고 공포스럽다. 3월 22일 뉴욕주의 자택 대피와 비필수 사업장의 영업 금지 조치로 맨해튼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다. 구급차 소리가 수시로 적막을 깬다. 마트에는 식료품과 위생용품을 사려는 시민들이 2미터 간격으로 줄을 섰다. 필자가 올해 초부터 초빙교수로 방문한 컬럼비아 대학교는 기숙사를 폐쇄하고 모든 수업을 인터넷으로 진행하고 있다.
 

뉴욕은 세계적 첨단 도시이지만
소득 격차 크고 공공의료 미흡해
취약계층의 코로나19 피해 막대
한국도 미래 위기에 잘 대비해야

뉴욕시는 미국 내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장 심한 피해를 보았다. 공식 확진자가 처음 나온 3월 1일 이후 감염자가 16만 명이 넘었고 1만2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뉴욕시 인구는 840만 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2.5%이지만 미국 전체 코로나19 사망자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인구 만 명당 감염자가 188명, 사망자는 14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무작위 표본으로 항체 검사를 한 결과는 놀랍게도 전체 시민의 21%가 감염됐던 것으로 추정한다.
 
뉴욕시는 미국 사회의 밝고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뉴욕은 세계 금융, 통상의 중심지이고 최첨단 도시이다. 가구 중위소득이 6만4000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불평등이 심한 미국 내에서도 소득 분배가 최악이다. 소득 분배 지표인 지니계수가 0.55(0과 1 사이 값으로 1이 가장 불평등하며 한국은 0.35)로 매우 높다. 빈곤율이 17%이고 쉼터나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자가 8만 명에 달한다. 전체 시민의 절반은 집에서 영어를 쓰지 않고 37%는 외국에서 태어난 이민자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역할을 존중해 빠른 경제발전과 기술 혁신에 기여하지만,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은 미흡하다. 코로나19 대응에서도 공공의료 체계가 미흡해 피해가 컸다. 뉴욕시는 의료 인력과 시설은 부족한데 입원 환자가 갑자기 몰려 의료 시스템이 마비되자 긴급히 임시 병원을 짓고 병상을 늘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의하면 미국은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가 2.8로 영국, 이탈리아와 함께 선진국 중에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반면에 한국은 12.3으로 일본, 독일과 함께 세계 최상위이다.
 
미국은 의료시설 접근성도 매우 낮다. 한국과 같은 국민건강보험이 없고 의료비가 비싸 미국인들은 평소 병원에 가기를 꺼린다. 뉴욕시 조사에 의하면 65세 미만 시민의 10%는 의료보험이 없다. 아파도 병원에 가는 것을 꺼려서 미국 국민이 1년간 의사를 만난 평균 횟수는 4회로 한국의 16.5회와 격차가 크다. 기저질환(당뇨, 고혈압, 암, 심장병, 폐 질환, 비만 등)이 있는 고령층도 평소에 건강을 돌보기가 힘들어 이번 코로나19처럼 감염이 빠르고 치사율이 높은 호흡기 질환에 매우 취약했다. 뉴욕시 코로나19 사망자의 75%가 65세 이상이고 대부분은 기저질환자였다. 저소득 유색인종일수록 의료혜택을 잘 받지 못해 코로나19에 더 심한 피해를 보았다.
 
경제 상황은 최악이다. 사업장의 영업 제한·폐쇄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비, 투자, 생산이 급격히 감소했다. 실업보험을 청구한 신규 실업자가 미국 전역에서 지난 5주간 2600만 명이 넘었다. 경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미국 주 정부들은 자택 대피와 영업 제한을 점차 완화하는 조치에 착수했다. 아직도 신규 환자와 사망자가 나오지만, 이제 최악의 고비는 넘겼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미국이 과연 이른 시일에 감염병 확산을 막고 경제 회복도 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국가 리더십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졌다.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보수와 진보 세력 간, 사회 계층·인종 간 갈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19 대응에 성공했다는 평을 전 세계에서 받고 있다. 공공의료 체계를 다른 나라보다 잘 구축했고 지난 메르스 사태의 경험으로 이번에는 공격적인 감염자 동선 추적과 자가 격리로 초기 방역에 성공했다. 우수한 의료 인력이 헌신적으로 봉사했고 정부 조치에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희생자도 매우 적었다.
 
이번에는 성공했지만, 다음에 다시 큰 외부 충격이 오면 어떨까. 당장 경제 위기가 걱정이다. 세계 경제가 심한 불황을 겪는 상황에서 한국이 재정·금융 정책을 모두 동원해도 당분간 경기 침체와 대량 실업에서 헤어나기 쉽지 않다. 한국은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92로 세계 최하위이고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늘고 있다.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제도를 지금처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노동력 감소와 생산성 증가율 둔화로 잠재 성장률은 계속 하락하는 반면, 비생산적인 정부 지출은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 부채가 계속 많아지면 다음 위기에 재정이 제대로 역할을 하기도 어렵다.
 
예측하기 어려운 국가적 대재난이나 경제 위기는 개인이 대비할 수 없다. 국민은 유능한 정치인, 관료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신뢰한다. 모든 국민은 더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존중받는 삶을 누리길 원한다. 코로나19 이후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다. 뉴욕의 현재 비극이 한국의 미래 모습이 되지 않아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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