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교활하고 잔인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중앙일보 2020.04.30 00:30 종합 24면 지면보기

국내외 감염병 전문가들의 한 목소리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씨젠은 두 달 만에 진단키트 생산을 수작업에서 대량 자동생산 체제로 바꾸었다. 타깃 유전자와 효소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한 튜브에 넣던 방식을 완전 자동화한 것이다. 그 덕분에 생산능력은 100배나 늘어 매주 300만 테스트에 이른다. 진단키트의 95%는 수출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는 분위기다. 스위스의 로슈와 미국의 써모피셔 등 글로벌 대형 업체들이 진단키트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바이러스는 하루가 다르게 변이를 거듭하고 있다. 머지않아 정확도와 가격 경쟁력에 따라 업체들의 운명이 엇갈릴 게 분명하다.
 

“정체를 알면 알수록 더 무섭다”
“다루거나 대응하기 까다롭다”
“추워지면 또 유행해 ‘나쁜겨울’”
“밀집·밀폐에선 언제든 집단 감염”

이들은 진단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WHO(세계보건기구) 사이트에 들어가 매일 전 세계에서 업데이트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이를 관찰한다. 가장 눈여겨보는 대목은 검출 대상인 세 가지 유전자(E 유전자, RdRp 유전자, N 유전자) 가운데 N 유전자다. 현재 코로나19의 음성·양성 판정 오류도 RdRp에선 음성이지만 훨씬 민감한 N 유전자에서 양성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N 유전자는  RdRp 유전자보다 민감도가 7~43배 정도 높다. 하지만 코로나와 같은 RNA 바이러스는 변이가 잦다. 특히 바이러스의 몸통 부분이라 할 수 있는 N 유전자에서 굉장히 빠른 변이가 일어나고 있다.
 
권계철 진단검사학회장은 “코로나19가 두려운 것은 아직 아무도 그 바이러스 특성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며 “최근 조금씩 드러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정체는 알면 알수록 더 무섭다”고 말했다. 이 바이러스는 변이가 많은 데다 교묘히 스스로를 은폐하는 특성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매우 교활하고 악랄한 바이러스”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앤서니 파우치 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도 “내 생각으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다”며 “올가을에 다시 대유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증상 전염과 교묘한 은폐
 
퍼스펙티브 4/30

퍼스펙티브 4/30

코로나19는 사스보다 3배나 많은 바이러스를 생산해 무시무시한 전파력을 갖고 있다. 계절이나 온도에 관계없이 대구의 신천지교회나 서울 구로구 콜센터 같은 밀집·밀폐된 환경에서는 언제든지 무차별 집단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다 증상이 없거나 증상이 발현되기도 전에 전파력을 갖고 있어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다루기 까다로운 바이러스”라고 걱정했다.
 
중국의 인민일보는 우한 사태 초기부터 “코로나19는 감염성과 은폐성이 매우 강하다. 감염자의 60~80%는 무증상자이거나 경증이다. 따라서 바이러스가 군중들 속에서 발견됐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고 경고했다. 권준욱 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도 그제 미국 국립보건원(NIH)을 인용해 “코로나19는 증상 발현 평균 2.3일 전부터 전파력을 가지며, 전파의 44%를 아프기 전에 일으킨다”고 소개했다. 숨어있는 환자로 인해 언제든 집단 감염이 발생할 수 있는 ‘스텔스 바이러스’라는 것이다.
 
 
두 얼굴의 바이러스
 
코로나19는 강한 숙주에겐 얌전히 있다가도 기저 질환자나 면역력이 약한 숙주를 만나면 잔인하게 공격한다. 두 얼굴을 가진 셈이다. 일부는 인체 내 면역 세포까지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선 코로나19에 감염된 고령자나 중환자에게서 T세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임상보고서가 적지 않다. T세포는 인체에 침투한 병원균이나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면역세포의 일종이다. 손상된 장기 형태도 에이즈와 비슷한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에 대해 “사스 바이러스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합성한 대량 살상무기 같다”는 음모론이 퍼진 것도 이 때문이다. 2003년 사스 바이러스는 T세포에 침투해 인체의 면역체계를 공격하는 능력이 없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구조

코로나19 바이러스 구조

여기에다 코로나19 항체검사에서도 3~5%만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의 60%가 항체를 가지면 저항력을 가질 것이라는 집단면역(herd immunity)에 대한 기대는 물거품이 된 것이다. 여기에다 완치 뒤 다시 양성 판정을 받은 사례도 세계적으로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다. WHO는 “항체가 생겼더라도 변종 바이러스에는 무력할 수 있고 항체의 면역력이 얼마나 지속할지도 알 수 없다”고 경고했다. 현재로선 재양성·감염경로 미확인·치사율이 높아 신속한 검사와 엄격한 격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치료제·백신도 한계 오나?
 
미국의 빌 게이츠는 “앞으로 18개월 안에 코로나19 백신이 나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RNA 바이러스는 자기복제가 완벽하게 되지 않아 변이가 많이 생기고, 변종에는 백신이 안 듣는 경우가 적지 않다. 권계철 회장은 “홍역이나 B형 간염은 한번 항체가 생기면 평생 면역이 되지만 코로나19의 항체는 면역 지속기간을 종잡기 어렵다”고 했다. 대규모 집단을 상대로 정밀 실험을 해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지난 22일의 질본 발표도 섣부른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들을 조사해 보니 중화 항체가 형성되었음에도 절반가량이 체내에 바이러스가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다. 만약 검출된 것이 증식 활동을 못 하는 바이러스 조각이거나 사체일 경우에는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완치자에게 검출된 바이러스가 배양이 된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사실상 백신이나 치료제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백신을 맞아 중화 항체가 생긴다 해도 몸에 면역력이 약화되면 언제든 재발하고 전파 가능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 “코로나19는 알면 알수록 무서운 바이러스”라는 한숨이 터져 나오는 배경이다.
 
최근 봄 연휴를 앞두고 전 세계적으로 방역을 완화하는 추세가 완연하다. 그동안 한 달 넘게 이어진 강력한 격리조치에 대한 피로감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섬뜩한 경고를 잊지 않고 있다. 미국의 파우치 소장은 “남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며 “각 주별로 사회적 방역을 소홀히 할 경우 ‘나쁜 가을’과 ‘나쁜 겨울’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은경 본부장도 “환기가 잘 되는 여름에는 다소 주춤하겠지만 겨울철이 되면 코로나19가 다시 대유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성공적 방역에 도취된 안이한 인식은 금물
 
우리 사회도 그동안의 신화에 도취돼 안이한 인식은 금물이다.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과를 거둔 배경으로는 성숙한 시민의식, 의사·간호사 등 전문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꼽힌다. 민간기업들의 민첩한 진단키트 개발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비결이다. 하지만 그 밑에는 보이지 않는 행운도 숨어있었다. 우선 한국은 메르스 사태로 미리 예방주사를 단단히 맞았다. 온 국민이 메르스를 경험하고 학습해서 새 감염병에 경각심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다 봄철 미세먼지와 황사로 kf94 마스크를 쓰는 관행이 자리 잡은 것도 사회적 거리두기에 큰 역할을 했다. 이에 비해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마스크=테러분자’라는 오인 때문에 마스크를 안 쓰는 게 관행이었다. 일본도 봄철에는 꽃가루 방지용 면 마스크가 대부분이어서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경제에 치명적인 코로나19
지난 두 달여 간 주요국 정부는 극약처방 카드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제로 금리·양적 완화는 물론 초대형 경기부양책을 총동원했다. 다행히 금융시장의 발작은 가라앉히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앞으로 밀려올 실물경제 쓰나미가 문제다.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 제조업의 공급망이 붕괴된데다 대량 실직과 공장 폐쇄, 자가 격리, 지역 봉쇄 등으로 전 세계 수요도 급감했기 때문이다.
 
세계통화기금(IMF)은 지난 15일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 ‘The Great Lockdown(대 봉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경제활동이 두 달 가까이 멈추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IMF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수정 전망치를 -3.0%로 확 끌어내렸다. 세계 대공황 이후 최저치다.
 
IMF는 세계 각국 정부에 비상한 조치도 주문했다. IMF는 “지금은 전쟁이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평소 경제 지식을 바탕으로 평범한 경제정책만 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특히 재정 여력이 부족한 신흥국의 경우 중앙은행이 회사채 인수 같은 비전통적인 정책을 동원해서라도 일자리를 보호하고 주요 산업과 중소기업을 직접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물경제 경색→대량 실업→기업 대량 파산→채무불이행→금융시스템 붕괴의 악순환을 사전에 차단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 위기가 얼마나 장기화할지에 달려있다.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위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분기부터 실물·고용에 큰 충격이 몰려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사실상의 실업자가 336만명(일시 휴직자 160만명+실업자 118만명+구직 단념자 58만명)에 이르고, 미국·유럽의 셧다운으로 수출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돈을 푼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돈 푸는 것 말고는 당장 뾰쪽한 대책이 없는 게 현실이다. 상당 기간 전례 없는 금융 완화 및 공격적인 확장 재정 정책이 뉴노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