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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민주국가 북한’ 기대에 도발 우려 섞인 김정은 유고설

중앙일보 2020.04.30 00:23 종합 20면 지면보기

북한의 권력 이동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독재자의 종말은 비참했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소련군이 독일 베를린에 진입하자 지하벙커에서 “내 시신을 완전히 불태우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는 로마를 탈출했지만, 시민에게 잡혀 처형당했다.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으로 튀니지·이집트·리비아의 독재자가 물러났다. 절대권력자들은 시민의 시위에 힘없이 무너졌다. 지난해에도 알제리와 수단의 독재자가 시민의 저항에 퇴진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장지향 중동센터장은 “폭압 정치와 부패, 빈곤은 독재정권의 약점이지만 몰락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라며 “독재정권은 매우 우발적인 사건으로 여론 장악력을 잃는 순간 위기는 시작된다”고 했다. 그러나 독재정권의 붕괴는 내전과 수많은 난민도 속출했다.
 

전문가 “김정은 탈났다 80~90%”
국방부·통일부 “정상 국정운영”
김여정 승계시 권력장악에 문제
북 내분→대남 도발·핵유출 우려

장 센터장이 말하는 ‘우발적 사건’이 독재국가 북한에서도 일어날까.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유고설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의 유고설을 바라보는 정부와 언론의 시각은 판이하다. 김 위원장이 ‘심혈관 수술을 잘못해 뇌사상태에 빠졌다’와 ‘순시 중에 쓰러져 사망했다’에서부터 ‘건재하다’까지다. 그의 전용열차가 원산에 장기간 정차해 있고,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가 언론에서 사라졌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북한에 특이 동향이 없다”고 지난 28일 밝혔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도 “(김 위원장이) 건재하다”고 했다. 군 정보당국도 어제 김 위원장이 “정상적으로 국정운영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다수의 정보 관계자는 김정은에 관한 정보가 없다고 한다.
 
외신도 엇갈린다. 워싱턴 포스트(WP)는 “김정은 사망설에 북한이 뒤숭숭하고, 사재기가 극성”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평양 주민들이 평소와 같고, 대동강변에선 노래가 흘러나왔다”며 WP와 정반대 기사를 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그제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그(김정은)가 건강하기만 바란다. 괜찮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뉘앙스는 약간 다르다. 그의 “괜찮길 바란다”는 김정은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다급해진 중국은 지난 25일 김 위원장에게 조언을 명분으로 의료진 등 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했다고 한다. 북한 정탐이 목적인 것 같다. 종합하면 김 위원장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의 유고설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
 
이번 북한 상황을 보는 많은 이는 독재체제의 변화 기대와 함께 급변사태의 불안감도 있다. 솔직히 독재를 좋아하는 사람은 독재자와 그 주위 권력자들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든 인간의 기본 목표는 타인으로부터 억압받지 않고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국가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울타리다. 정부는 그 행위자다. 하지만 북한은 3대 세습 독재국가다. 그 3대가 70여 년 동안 북한 주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했다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독재국가는 독재자를 정점으로 한 권력의 먹이사슬 구조다. 독재자의 이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엘리트들이 위를 떠받고, 주민에겐 부당한 압력 행사로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 아닌가. 따라서 이왕 북한의 권력이 바뀔 바엔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되고, 그 기회에 북핵 해결과 함께 평화 정착과 통일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대다수일 게다.
 
그러면 김 위원장의 상태를 어떻게 봐야 하나. 조보근 전 국방정보본부장은 “김정은이 탈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건강 이상설이 80∼90%”라고 추정했다. 오랜 경험자의 직감이다. 그 이유로 먼저 북한의 무대응을 들었다. 북한은 최고 통치자의 신변에 관한 보도가 계속 나오는데도 보름이 넘도록 대응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선전선동을 위해 자신의 영상을 끊임없이 내보낸 행태와 전혀 다르다.
 
둘째는 평소 건강이 좋지 않은 김 위원장이 대북제재에다 코로나19 사태가 겹쳐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셋째는 최근 북한이 김여정 부부장 명의로 청와대를 비난하는 등 그녀가 갑자기 언론에 부각됐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독재국가에선 2인자를 키우지 않는다. 김 부부장의 부상은 후계구도 시나리오라는 추정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총선을 앞두고 두서없이 서둘러 미사일을 쏜 점이다. 김 위원장이 정상일 때 마무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권력 승계에 주민 복종과 협조 필수
 
김정은 유고시 북한 사태 전개 예상 시나리오

김정은 유고시 북한 사태 전개 예상 시나리오

김 위원장의 유고설은 북한의 공식입장이 나와야 정리된다. 하지만 그가 정상이라 해도 태연하게 복귀하진 않을 듯싶다. 세상이 놀랄 무언가(도발?)를 내놓을 것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사망에 가까운 상황이라면 더 심각해진다. 소위 백두혈통으로 권력 승계 1순위인 김여정이 이어받을지, 그가 권력 승계 후에도 계속 집권할 수 있을지, 또는 제3의 인물 급부상 가능성이다. 김 위원장의 권력이 김여정으로 승계돼도 어려움은 있다. 가부장적인 북한에서 여성 통치자를 인정하느냐다. 북한의 이념과 정권의 신화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김 부부장이 독재세습권력을 유지하려면 북한 주민과 엘리트로부터 복종과 협조, 굴복을 받아내야 한다.(진 샤프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그러려면 피바람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피바람은 김정은처럼 고모부를 처형할 정도의 잔혹성을 요구한다. 과연 여성인 김여정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북한에서 새로운 숙청이 전개될 때 엘리트 계층이 과거처럼 당하고만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대북제재에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북한 주민의 가슴속에 저항심이 있는지도 변수다. 중동처럼 독재에 대한 국민 저항심이 일어나면 북한 정권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하지만 그 중간과정엔 대개 내분이 있다. 그래서 김정은 이후 북한은 김여정 체제로 지속될 수도 있지만, 권력 분점과 정변을 거쳐 민주국가로 거듭날 가능성도 있다. 독재정권이 붕괴하면 대체로 (초기엔) 다른 형태의 독재정권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박형중 『독재정권의 성격과 정치변동』) 민주국가까진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한·미 동맹관계부터 다져야
 
북한의 정변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파장으로 올 수 있다. 수도권 포격이나 화학 및 생물무기 테러에 의한 대남도발이다. 화생테러는 큰 인명 피해를 낸다. 북한의 국지도발은 우리 군의 대응과 북한군의 재공격으로 이어져 자칫 전면전으로 확전될 수 있다. 한·미 연합군이 투입되면서 중국의 개입으로 청·일전쟁처럼 국제전으로 번질 우려도 있다. 대량 탈북사태는 상수다.
 
물론 한·미는 북한 급변사태나 전면전에 대비해 ‘개념계획 5029’와 ‘작전계획 5015’를 갖고 있다. 재래식 전쟁에선 한·미 군사력이 압도적이어서 조기 종결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북한 핵무기가 탈취되면 차원이 다르다. 핵무기가 테러집단에 넘어갈 수도 있고, 한·미를 위협하거나 협상에 활용될 수도 있다. 그땐 미국과 중국이 곧바로 개입한다.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
 
사실 김 위원장의 신변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50%만 돼도 중대한 위기다. 그런데 80∼90%란다. 이런 위기지만 정부는 애써 문제가 없다면서 4·27 판문점 선언 2주년을 맞아 우리 주도로 남북사업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서 북한 무정부 상황을 가정해 대비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유사시 북한 도발을 차단하고, 신속한 군사조치를 하려면 긴밀한 한·미 협조가 필수다. 따라서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 동맹관계부터 다지기 바란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 못하면 파국이 온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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