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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실시간 강의하다 워킹맘은 빨래를 돌렸다

중앙일보 2020.04.30 00:17 종합 29면 지면보기
정하늬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강사

정하늬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강사

‘난리블루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함께한 지난 100일을 압축하자면 이 단어가 가장 적당할 듯싶다. 나는 시간강사이자 만 11세 아이의 엄마이자 한 가정의 주부다. 이 시대 많은 이들이 그렇듯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일가족 3명 동시 코로나 재택체험
월급은 안 오르고 씀씀이 확 늘어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신문과 뉴스를 보았고,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손을 닦아댔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내 공부를 한다. 출퇴근 시간을 정해놓고 일하는 여느 워킹맘이다. 그런 내 생활은 코로나19로 무너졌다.
 
지난 2월 어쩔 수 없는 재택근무에 돌입했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연구실에서 책과 노트북을 싸 들고 와서 식탁 한쪽에 쌓아뒀다. 집에서 공부라니? 집은 쉬는 곳이지 공부하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한 마디로 ‘멘붕’이었다. 그리고 대학과 초등학교는 등교개학을 연기했다.
 
“개학을 연기한다”는 말에 아이는 기뻐 소리를 질렀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미래와’ 달리 그걸 만끽하는 아이는 즐거워 보였다. 아이는 TV 리모컨을 쥐고 소파에 늘어진 ‘액괴(아이들의 장난감)’ 상태다. 아이는 늘어난 방학을 즐겼으나 난 아니다.
 
집에 있으니 집안일이 너무 잘 보여서 평소보다 열심히 집안일을 했다. 공간 분리가 안 되니 내 정체성은 한데 섞여버렸다. 이제는 실시간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빨래를 돌리고 아이 잡도리까지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잔소리가 늘었다. 공부하겠다고 가져온 책은 그 자리에 붙박이가 됐다.
 
눈앞에 보이는 일들을 건사하기도 벅찬데 대학은 온라인 수업을 결정했다. 아무 글도 쓰지 못한 채 방학은 끝나버렸다. 미리 짜놓은 수업 계획을 어떻게 바꾸나? 이 신문물에 언제 적응해서 그럴싸하게 수업을 하나? 이런 생각에 2차 멘붕이 시작됐다.
 
손오공처럼 머리털을 뽑아 여러 분신을 만들어 일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내 마음이 소금밭이어서 그런가, 반찬 투정하는 아이가 서운해서 야멸차게 말하고는 오후 내내 속이 시끄러운 날도 부지기수다.
 
남편도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남편은 방, 아이는 거실 TV 앞, 나는 아이 책상, 셋이 한 칸씩 차지했다. 일가족 3인의 전원 재택은 경제적으로는 매우 좋지 않다. 셋이 쓰는 전기량이 만만치 않다. 노트북 두 대, TV가 돌아가고, 세탁기와 청소기도 더 자주 돌린다. 매 끼니 해 먹으니 인덕션도 ‘열일’했다.
 
원활한 온라인 강의를 위해 오래된 노트북 대신 큰맘 먹고 노트북도 새로 샀다. 도서관에 갈 수 없으니 참고자료들을 사며 갑자기 책으로 ‘플렉스(돈 쓴 자랑)’하고 있다. 하수도 비용인가가 올라 수도요금도 예상보다 많이 나갔다. 시절이 이런데 공공요금엔 자비 따위는 없구나.
 
그뿐인가. 삼시 세끼가 또 문제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점심값을 주는 것도 아닌데, 식재료비는 확확 늘었다. 월급만 안 오른 채 모든 씀씀이가 의도치 않게 확확 늘었다. 초등 고학년도 돌봐야 하는데 만 11세라는 이유로 돌봄 쿠폰도 못 받고 계산해 보니 정부의 다른 지원금도 못 받을 듯하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지만, 모든 것이 이전의 일상이나 계획과는 다르게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칩거, 마스크, 급속 노화, 다크서클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이런 것들과는 안 친해도 되는데 말이다. 개학 연기를 반기던 아이도 이제는 “제발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신학기 새로운 반 친구들이 누군지 궁금하다고, 새 실내화를 신고 체육 하고 싶다고 한다.
 
나도 컴퓨터 모니터로만, 출석부 이름으로만 말고 실물로 학생들을 봤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꽃이 피었던데, 지갑도 펴고 쭈그리고 있느라 굽은 등도 좀 펴졌으면 좋겠다.
 
정하늬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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