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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도망자

중앙일보 2020.04.30 00:11 종합 29면 지면보기
한애란 금융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지난해 11월, 이종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이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도주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만 해도 아무도 예상 못 했다. 그의 도주극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며칠 안에 국내 어딘가에서 붙잡혀서 이송돼 오는 모습을 보게 될 줄로 알았다.
 
이후 그가 모습을 드러내기는커녕 아예 흔적조차 봤다는 사람이 없자 여의도 금융투자업계 관심이 이종필의 행방에 집중됐다. 출입국 기록도 없이 어떻게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필리핀으로 이미 도망쳤다는 해외 밀항설부터, 드럼통에 담겨 서해바다에 가라앉아있을 거라는 피살설까지. 각종 설이 난무했다. 심지어 한 언론매체는 이종필 아버지가 호주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근거로 ‘호주 도피설’을 기사화했다. 동시에 아직 해외로 나가지 못한 채 부산에서 밀항을 꾀하고 있을 거란 소문도 돌았다.
 
그래서 지난 23일 여의도에서 멀지 않은 곳, 서울 성북구 빌라에서 그가 잡혀 놀랐다. 게다가 라임 사기극의 또 다른 주범들과 함께 있을 줄이야.
 
초대형 사기극의 하이라이트가 주범의 도주와 체포인 건 새롭지 않다. 수십만명의 피해자를 남긴 저축은행 사태 땐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중국 밀항을 시도하다 체포됐다. 그는 당시 경기도 화성 궁평항에서 작은 어선을 타고 공해 상으로 나가 중국 화물선으로 갈아타려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첩보를 입수한 해경에 붙잡혔다. 회삿돈 200억원을 빼내 달아난 그는 밀항을 주선한 중국 조직폭력배들에게 3억원을 건넸다고 한다.
 
도주·밀항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범죄자는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이다. 그는 2008년 태안에서 밀항해 중국으로 넘어가는 데 성공했다. 당시 해경은 제보를 받고도 마약 밀수범으로 오인해 작전을 펴다 조희팔 검거에 실패했다. 이후 조희팔이 2011년 중국에서 죽었다며 검찰이 그의 사망을 공식화했지만 꽤 오랫동안 목격담이 나돌기도 했다.
 
이종필 도주극이란 흥미진진했던 영화는 막을 내렸다. ‘이종필이 어디 있는가’라는 궁금증은 풀렸지만 ‘왜 사모펀드 1위 운용사 라임이 이렇게까지 몰락했나’라는 질문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본격적인 수사는 이제 시작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때다.
 
한애란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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