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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아버지는 계획이 다 있었다

중앙일보 2020.04.29 15:00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19)

 
화장실에 걸린 달력에 붉은색 동그라미가 쳐 있다. 분명 내가 표시한 것은 아니다. 주요 행사나 병원 일정은 아버지가 보시는 탁상달력에 표시해 놓는다. 그런데, 날짜가 낯익다.
 
중년이 된 나에게 팔순 아버지가 챙겨주는 생일이라니, 신기하고도 의아했다. [사진 푸르미]

중년이 된 나에게 팔순 아버지가 챙겨주는 생일이라니, 신기하고도 의아했다. [사진 푸르미]

 
‘설마, 내 생일?’
놀란 이유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아버지가 우리들 생일을 챙겨주신 적 없기 때문이다. 딸이 넷이나 되고, 어린 시절 또래 사촌들과 한집에 산 탓에 우리 가족은 생일에 특별한 무게를 두지 않아 왔다. 게다가 부모님 결혼기념일이 크리스마스이브라 부모님으로부터 선물을 받기보다는 네 자매가 함께 정성을 모으고 편지를 써서 부모님을 축하해 드리곤 했다. 1년 중 어린이날이 유일하게 우리 자매가 대접받는 날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선물은 우리 가족 모두 외출한 사이 몰래 배송되어 온 ‘피아노’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마치 그림처럼 방 안에 놓여 있는 피아노를 보고 환성을 지른 그 순간뿐, 연습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 한 채 서로 차례를 미루고 도망 다니기 바빴다.
 
그렇게 자라 중년이 된 나에게 팔순 아버지가 챙겨주는 생일이라니, 신기하고도 의아했다. 도대체 왜, 지금, 갑자기? 나는 서른 살 이후론 생일이 그리 반갑지 않아졌다. 나이 먹는 것을 축하하는 것도 그렇고, 어머니 떠나신 뒤론 생일이 다가오면 우울해졌다. 친구와 언니들로부터 축하인사 받는 것도 쑥스럽고 어색할 정도로 특별한 계획 없이 무심하게 넘겨 왔다.
 
언니1이 만들어 보낸 생일축하쿠키. 나는 이런 소소한 선물과 함께 담담하게 생일을 넘기는 것에 익숙하다.

언니1이 만들어 보낸 생일축하쿠키. 나는 이런 소소한 선물과 함께 담담하게 생일을 넘기는 것에 익숙하다.

 
달력을 뒤적여보니 내 생일만이 아니었다. 언니들 생일에도 비슷한 동그라미가 있었다. 그중 두 사람은 음력 생일을 양력 날짜에 표시해 놓아 조심스럽게 수정해 놓았다.
 
‘설마, 올해부터 네 딸 생일을 모두?’
그러고 보니 3월에 태어난 언니3에게도 축하 전화를 하셨던 것 같다. 전날 출근하는 나에게 “부산 언니 생일이다” 먼저 이야기하셔서, 케이크를 보낸 것도 기억났다.
 
‘그럼 나한텐 선물을 주시려나?’
설마 하면서도 살짝 궁금해졌다. 의심 반 기대 반 속에 시간이 흘러 생일 당일 아침이 밝았다.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동그라미가 무색하게 선물도, 축하 인사도 없었다. 나 역시 별 내색하지 않고 집을 나서는데, 아버지가 무심히 한 말씀 던지시는 거다.
 
“오늘 저녁 외식하는 게 어때?”
생일 맞은 내가 직접 미역국 끓이는 게 안쓰러워 그러신가보다 싶어 마음만 쓸쓸했다.
 
낮에 지방에 있어야 할 언니2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조카들 데리고 서울에 오는데, 아버지랑 다 같이 외식하는 것이 어떠냐 한다. 그제야 눈앞에 아버지의 큰 그림이 그려졌다. 생일인데 평소와 다름없이 둘이 밥 먹는 게 불편하셨던 걸까? 아버지 배려에 감사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생일이 뭐라고 바쁜 언니네 가족까지 굳이 불러올려 귀찮게 하시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축하한다!’ 한 말씀이면 충분한데, 나로선 그 모든 것이 번거롭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 날 저녁은 유난히 바람이 차가웠다. 퇴근 후 지하철역에서 만나 함께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아버지 발걸음이 유난히 느리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나오신 탓인지 힘겨워하시는 게 느껴질 만큼 걸음이 위태로웠다. 짜증이 훅 올라왔다. 그냥 집에서 둘이 먹으면 될 것을, 다리도 안 좋으신데 이 궂은 날, 이 코로나19 정국 속에, 언니네 가족까지 동원할 건 뭐람!
 
그때였다, 시야에 조카들이 들어온 것은. 찬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할아버지!”하고 외치며, 우리를 향해 전력 질주해 오고 있었다. 순간 아버지 표정이 보고도 믿기 어려울 만큼 밝아졌다.
“예쁜 놈들 왔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내 생일은 핑계고 실은 손주들이 보고 싶으셨던 게다. 평상시 전화하실 땐 “복잡한데 오지 마라”, “바쁜데 오지 마라”, “위험한데 오지 마라”하시면서도 실은 기다리고 계셨던 게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디를 가는 것도,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죄스런 일이 된 때, 내 생일이 좋은 핑곗거리가 된 셈이다.
 
함께 식당으로 들어간 우리는 여느 생일처럼 촛불도 불고 케이크도 자르면서 다소 시끄럽지만 화기애애하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쉴 새 없이 조잘대는 손주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하시지만, 그저 활기차고 해맑은 아이들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신 듯했다.
 
식당을 나온 아버지는 언니가 잡은 택시에 거의 몸을 던지다시피 올라타셨다. 늘 아껴야 한다고 지하철을 고집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피곤하다며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
 
다음 날 언니1이 들려준 작전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며칠 전 아버지가 언니1에게 전화하셔서 언니2에게 내 생일을 알리되, 함께 저녁 식사하라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도 스스로 “내가 서울 가서 함께 할게”라는 이야기가 나오도록 하라는 다소 난해한 미션을 주셨다 한다. 결국 아버지 계획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고, 아버지는 “모든 것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둘째와 막내는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며 지령을 완수한 언니1에게 칭찬을 듬뿍 하사하셨다 한다.
 
생일 당사자인 나로선 기대했던 선물도 받지 못하고 이용당한(?)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고뇌가 담긴 일기장을 보고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너그러이(?) 넘어가기로 했다. 로또를 사면 일주일이 행복하듯 미리 발견한 붉은 동그라미 덕분에 우울할 겨를 없이 생일을 잘 넘긴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또 엉성한 007작전을 써서라도 손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아버지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일기장 中 한 대목.

아버지의 일기장 中 한 대목.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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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미 푸르미 공무원 필진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 아버지와 10년째 동거 중인 20년 차 공무원. 26년간 암 투병 끝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와 동거를 시작했다. 팔순을 넘어서며 체력과 인지능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아버지를 보며 ‘이 평화로운 동거가 언젠가 깨지겠지’ 하는 불안을 느낀다. 그 마음은 감춘 채 “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아버지에게 얹혀살고 있다”고 주변에 이야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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