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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맞고서야 개혁"…정부 뒤늦은 10대 산업 규제 혁신

중앙일보 2020.04.29 12:05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변화된 경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데이터, 인공지능(AI), 미래차 등 총 10개 분야 65개 규제를 혁신하기로 했다. 그간 기준이 불명확해 무용론이 제기됐던 데이터3법(개인정보 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활용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금지됐던 인체 폐지방을 재활용한 의약품 개발도 허용한다. 그러나 이미 과거에 내놨다가 이익단체 반발로 무산된 정책이거나 코로나19 이후 산업 흐름이 바뀌고 있어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포스트 코로나, 기존 규제는 걸림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 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 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정부는 지난 1월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한 데이터3법의 활용 기준을 명확히 하기로 했다.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한 가명정보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됐지만, 막상 가명정보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다른 가명정보와 결합해 개인을 식별할 수 있을 경우 외부 반출이 가능한지 등 기준이 모호했다. 정부는 이에 민감정보(정치적 견해·건강·사상·신념 등)는 가명정보에 포함하는 등 가이드라인을 오는 8월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정신과·산부인과 등 민감성이 높은 진료 기록 등 의료데이터에 대한 활용 가이드라인은 별도로 마련하기로 했다. 환자 기록이 가명 처리된 이후에는 의료법 21조(의료인·의료기관 종사자가 아닌 사람이 환자 기록을 열람하는 등을 금지한 것)에 저촉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 외에도 AI 우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금지됐던 국립·사립대학 교원의 AI 기업 겸직도 허용하기로 했다.
  

"폐지방 의약품 개발 허용, 주식은 소수점 거래"

10대 산업분야 규제혁신 방안.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10대 산업분야 규제혁신 방안.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동안 금지됐던 인체 폐지방을 활용한 의약품 개발도 추진된다. 기존에는 태반만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를 확대해 줄기세포 등을 추출, 산업적 목적으로 재활용하거나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도심지역 내국인에게는 금지됐던 공유 숙박제공도 허용하도록 법을 개정해 나가기로 했다. 핀테크 분야에서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소수점 단위의 주식매매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국회에 계류중인 원격의료법 개정과 관련해서도 “많은 사람이 필요성을 절감하며 논의의 차원이 달라졌기에 21대 국회에서 속도감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 자율주행차 분야도 정부는 사고조사체계를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
 

재작년 발표한 정책,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도 

 
그러나 이번 발표된 규제혁신안에는 정부가 과거 추진하기로 했다가 무산됐거나 이미 규제개혁 타이밍을 놓친 분야도 상당수 있다. 폐지방 의약품 개발의 경우, 정부는 재작년에도 연말까지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해놓고 구체적 실행계획은 세우지도 못했다. 올해 1월 중순 혁신성장전략회의에서도 같은 내용을 발표했지만 3개월 넘게 관련법인 생명윤리법·약사법 개정에 대해 이렇다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환경부는 올해도 1분기 내 개정안을 마련하고, 4분기가 돼서야 법률 개정을 마칠 계획이다.
 
내국인에게도 도심 공유숙박을 허용한다는 방침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산하며 공유경제 모델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앤비는 현재 모든 마케팅을 중단한 상황이다. 정부는 이미 재작년 10월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규제개혁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공유숙박을 외국인에게만 허용하는 도시민박법을 바꾸지 못했다. 데이터3법 역시 1월 국회 통과 이후 꾸준히 관련법의 모호성이 지적됐다.
 

전문가, "이익단체와 갈등 조율 못하면 또 실패"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규제개혁을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가 없이는 앞으로도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시도됐어야 하는 규제개혁인데 코로나19를 맞고서야 시작되는 등 정책 타이밍이 아쉽다”며 “특히 그간 정부가 이익단체와의 갈등 조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등 개혁에 미진한 모습을 보인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필요성을 역설한 원격의료 역시 '의료사고 위험'과 '대형병원 쏠림' 등을 이유로 대한의사협회 중심의 반대가 여전하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가 진정세로 돌아서면 비대면 서비스가 활성화하고, 공유서비스가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도 있어 필요한 정책"이라면서도 "정부가 이익집단과의 규제혁신과의 갈등을 충분히 조율할 수 있도록 면책특권 등 법적 인프라를 마련하지 않으면 또 다시 다음 정부로 혁신이 미뤄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 교수는 "이 기회에 관련 법률·정책이 있어야만 사업을 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에서 법률상으로 금지한 사업이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기조 전환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오는 5월부터 규제검증위원회를 가동해 방침이 결정된 과제는 세부내용을 확정하고, 신규과제는 심층심사를 하기로 했다.
 
홍 부총리는 "최대한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한다는 원칙 하에 앞으로 비대면 산업에 대해 각별히 역점을 두고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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